지난 23일 길고양이 밥그릇에 부동액을 뿌린 20대 남성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연달아 나오는 길고양이 학대 뉴스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고양이처럼 '밥'이 논쟁이 되는 동물이 또 있을까. 누군가는 길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밥을 주고, 다른 누군가는 그 밥에 독을 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제목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고양이를 혐오하는 이들도,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들도 관심이 가는 제목이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라는 제목만 보고 누군가는 "밥도 주지 말라는 거냐"고 탄식하고, 다른 누군가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영화인 줄 알았더니 캣맘을 옹호하는 프로파간다 영화"라며 맥락 없는 혐오를 표출한다(영화를 본 사람은 알 수 있겠지만 이 영화는 프로파간다와 무관한 휴먼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길고양이 동반자로 활동하고 있는 권나영씨와 그가 돌보는 고양이들을 화면에 담는다. 나영씨는 선천적인 뇌병변 장애를 갖고 태어났으며 신장 질환으로 인해 일주일에 세 차례 병원에 가서 투석을 받는다.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그는 밤낮으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동네 고양이들의 끼니를 챙긴다.
어떻게 이런 일들을 해낼 수 있을까. 영화를 만든 감독은 이런 이를 어떻게 찾아냈을까. 영화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의 김희주(아래 김), 정주희(아래 정) 두 감독을 지난 5일 오후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밥이라는 단어는 생존과 직결된 말"
- 제목이 확 눈에 띄어요. 역설적이기도 하고요. 일종의 반어법인가요?
김 : "처음에 제목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나영님이 고양이를 '애기야', '아가야'라고 부르시거든요. 그래서 처음 아이디어 낼 때 '권나영과 아기들'이라는 제목도 떠올렸고요.(웃음) 사실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라는 말은 저희가 촬영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예요."
정 : "우리나라에서 밥이라는 게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잖아요. 인사말로 밥 먹었냐, 헤어질 때도 나중에 밥 한 번 먹자 등. 또 밥이라는 단어가 생존과 직결된 말이기도 하고요. 어떤 존재에 대해 함부로 밥을 주지 말라고 하는 게 그 존재를 지워버리는 언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제목을 선택했죠."
- 어떻게 영화의 주인공인 권나영씨와 인연이 닿았는지 궁금해요.
정 : "제가 유기묘 입양을 위해 페이스북 '길고양이 친구들' 페이지에 가입했어요. 거기서 활동하는 분들 가운데 권나영이라는 분이 글을 많이 올리시더라고요. 그분이 올리는 글이 정돈된 문장이 아니었어요. 맞춤법도 틀리고 나영님 특유의 문체가 있어요. 근데 그분의 게시물이 계속 눈에 아른거린다고 할까요. 궁금하더라고요. 이렇게까지 고양이를 돌보는 이유가 뭘까. 왜 이 분은 고양이와 함께 하셔야 하는 걸까? 이런 의문에서 출발해서 다큐멘터리 출연을 요청드렸는데 나영님이 너무나 흔쾌하게 응해주셨죠."
권나영씨는 단순히 고양이들의 밥만 챙기지 않는다.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는 발정기가 되면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아픈 고양이를 발견하면 구조와 치료, 입양을 진행한다. 자신보다 어려운 캣맘을 돕거나 동물권 관련 활동에도 동참한다. 두 감독은 나영씨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일 너머의 약자 혐오, 장애, 이동권과 같은 다양한 차원의 이야기들을 발견해나갔다.
정 : "촬영하며 저 혼자 안절부절 못할 때가 많았어요. 나영님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시는데 불법 주차된 차들이나 길가의 유리병 때문에 아슬아슬하더라고요. 또 이동하시는 걸 촬영할 때 어려움이 많았어요. 장애인 택시도 피크타임에는 두 시간씩 대기를 해야 하더라고요.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같이 타고 이동하는 일도 있었는데, 충무로역이 목적지였어요. 그런데 그 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리프트를 타고 전동휠체어를 옮겨야 해요. 거기에서만 20~30분은 걸렸던 것 같아요. 역무원 호출하면 세팅해주시고 내려가는 데도 오래 걸리고 다시 올라오고. 이런 과정을 보면서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됐죠."
장애와 아픔, 길 위의 생명을 다룬 영화는 그저 묵직하고 먹먹하기만 할까?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 속 권나영씨는 눈물만큼이나 웃음도 많은 사람이다. 그가 가는 곳마다 웃음소리가 음표처럼 따라붙는다.
김 : "나영님을 따라 병원의 투석실에 갔을 때 굉장히 조심스러웠어요. 아침 일찍 치료하러 오시는 분들인데 촬영을 가는 게 죄송하더라고요. 막상 가보니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라 다들 밝고 에너제틱하신 거예요. 그래서 저희도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정 : "나영님과 함께 투석을 받는 분들이 모여서 아침에 도시락을 나눠 드셨어요. 거기서 저희가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까 뭐 찍는 거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러다 한 분이 '멀쩡한 사람을 찍어야지 왜 아픈 사람들을 찍어~' 이렇게 웃으며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는 별생각 없이 넘어갔는데 편집하며 보니 그 말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저 같은 사람은 감히 할 수 없는 말이기도 하잖아요. 주류와 주류가 아닌 존재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고요."
누군가를 살리려는 마음으로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는 캣맘을 다룬다는 이유로 혐오의 표적이 됐다. 집계된 관객 수보다 1점짜리 '별점 테러'를 한 사람의 수가 더 많다. 영화를 보지도 않고 무조건적인 비난을 한 이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의 배급사인 목영필름은 2021년 11월 "영화와 관련 없이 무분별한 혐오감으로 시작된 악플과 평점 테러를 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주인공 나영씨는 건강이 악화되어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십니다. 작품에 대한 비평은 좋으나 무분별한 평점 테러는 지양해주셨으면 합니다"라며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 일부 누리꾼들이 영화를 보지도 않고 별점을 주었죠.
정 : "가장 당황스러웠던 말 중 하나가 저희 영화가 프로파간다 영화라는 거였어요. 캣맘을 옹호하는 프로파간다 영화라니."
- 좀 멋있는데요? (웃음)
정 : "그런 투사로 세워주시면 감사하긴 한데. (웃음) 저희가 영화를 찍을 때 가장 고민하고 집중했던 건 나영님이에요. 세상의 많은 사람 중 권나영이라는 사람이 동물과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담은 거죠. 그게 좋고 싫고는 관객 분들이 판단하실 몫이라고 봐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영화를 보지 않고 제목만으로 호도하는 이야기들, 영화를 보지 않고 남긴 사이버불링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커요. 저희는 괜찮지만 얼굴을 공개하고 영화에 출연해주신 나영님에게 너무 죄송하죠."
두 감독이 지켜본 바, 권나영씨는 혐오에 당당히 맞설 근거가 차고도 넘치는 사람이다. "고양이가 발정 나서 시끄럽게 우니 밥을 주면 안 된다"는 말에는 다신 발정기가 오지 못하도록 중성화 수술을 하고 방사하는 행동으로, "그렇게 불쌍하면 너나 데려다 키우라"는 사람에겐 그간 입양 보낸 길고양이의 사진들로, "당신 같은 캣맘 때문에 길고양이 혐오가 조장된다"는 이에겐 밥 주는 공간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줍는 모습으로.
하지만 그는 맞서는 대신 혐오에 '답장'을 보내는 방법을 택했다. 영화 말미,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메모에 권나영씨가 붙인 답 메모가 가로등의 노란빛을 받아 펄럭인다.
"고양이 밥 줘서 미안합니다. 저도 얼마 못 산다는 말에 동물도 사람 같이 한 번 태어나고 죽는 것 같아서 줍니다. 저도 안 좋은 병에 걸려서 죽기 전에 한 번 좋은 일 하려고 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나는 이보다 '공존'에 가까운 말을 본 일이 없다. 그러니까 결국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는 혐오에 답장을 보내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살리려는 마음으로 매일 전동휠체어에 오르는 사람의 뒷모습을 담아낸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세요>는 현재 왓챠와 웨이브, 티빙 등에서 관람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gracefulll)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