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내 1등 KB국민은행이 지난 2015~2017 신입·인턴 채용 때 저지른 비리의 피해자는 수백명에 이르지만, 올 1월 대법원의 유죄 확정 뒤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 구제는커녕 '청탁 메모'에 이름을 올린 입사자들은 여전히 은행에 재직중이다. 금융정의연대 연속기고를 통해 이 문제를 살펴봤다. [편집자말]
 KB국민은행 본점 로비.
KB국민은행 본점 로비. ⓒ 연합뉴스
 
[기사 보강 : 30일 오후 3시 40분] 

지난 2020년, 금융정의연대로 우리은행 채용비리 피해자가 찾아왔다. 오랜 시간 이야기하며 그 청년이 취업을 준비한 몇 년 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그 청년은 예비합격자라는 문자를 받아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어느 날 채용비리 뉴스를 보았고, 우리은행 측에 연락했다. 적어도 자신이 몇 등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우리은행은 알려주지 않았다.

이야기를 털어놓던 그 청년은 "사회 부조리의 피해자가 된 것 같아 화가 나기도 하고 억울한 마음이 많이 들었는데, 어디 호소할 곳도 없었다"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때 나는 같은 청년으로서 '사회가 청년들을 이토록 하찮게 대하고 있는 현실'에 화가 났고, '채용비리는 끝장을 봐야할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은행은 완전한 사기업이 아니고, 국민들의 예금을 관리할 권리를 부여받았기 때문에 '공공성'을 지닌다. 때문에 국민들과의 신뢰를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한 기관이다. 그러나 지난 3년 간 채용비리로 인해 은행에 대한 신뢰는 추락했다. 설령 사기업이라고 할지라도 공개채용은 일종의 사회계약이며, 채용비리는 공정성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훼손한 중대한 범죄다. 희망대신 좌절과 무기력함에 빠진 청년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사회의 공정성을 회복하는 것은 미뤄서는 안 될 시급한 문제다.  

국민은행 채용비리에 분노했던 이유 
 
 지난 22일 시민단체와 노조 등이 금융감독원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KB 은행 채용비리 부정입사자 채용 취소 및 피해구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22일 시민단체와 노조 등이 금융감독원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KB 은행 채용비리 부정입사자 채용 취소 및 피해구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금융정의연대
 
2018년 은행권 채용비리 사태가 터진 후, KB국민은행(이하 국민은행)에 붙은 수식어는 '금수저은행, 성차별은행'이다. 청년들은 고스펙마저 뛰어넘는 좋은 부모와 좋은 성별을 타고나야 국민은행에 입사할 수 있었던 셈이다. 이는 국민은행의 채용비리에 청년들이 더욱 분노했던 이유다. 청년들은 든든한 배경을 가진 부모님이 없어도, 남성으로 태어나지 않았어도 사회가 마련한 기준에 성실하게 맞춰 가다보면 기회는 모두에게 공정하게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청년들이 현실에서 마주한 것은 노력으로 되지 않는 거대한 불공정이었다.

전 국민은행 사외이사 자제의 경우 '회장님 각별히 신경'이라는 메모가 전달됐는데, 이 지원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국민은행은 서류전형 합격자를 늘리고 2차 면접 평가등급이 'B, C'로 불합격권에 있었지만 합격권인 'A, A' 등급으로 임의 변경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회장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채용비리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국민은행 사외이사 자제들이 국민은행에 부정 입사한 의혹까지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국민은행을 '금수저은행'이라고 규정지었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국민은행이 신입행원 남녀 비율을 6 대 4 또는 5 대 3으로 정하여 채용한 것이 드러나면서 '성차별은행'이라는 수식어가 추가되었다.

지난 1월 14일 대법원은 국민은행 채용비리와 관련하여 기소된 채용팀장 등 임직원들에 대한 유죄를 확정하고,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국민은행 법인에 대해서는 벌금 500만원을 확정하였다. 결론적으로 '국민은행은 유죄'였지만, 처벌은 솜방망이에 불과했다.

특히 채용팀장에 대하여 1심 재판부는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고 볼 사정이 없고, 잘못된 관행을 답습하다 범행에 이르게 됐다"며 징역 1년을 선고하였다. 채용 과정에서 서류전형과 면접전형에서 수백 명의 점수를 조작한 것은 물론 남성지원자 합격비율을 높일 목적으로 여성지원자의 점수를 고의적으로 낮추는 등 사회의 공정성과 신뢰를 훼손하였음에도 지극히 관대한 형량이었다. 국민은행의 임직원들이 잘못된 관행을 답습하였을 수는 있으나, 이 관행이 고의적이고 악질적인 채용비리 범죄에 대한 면죄부로 적용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더군다나 남녀합격비율을 조작하거나 금수저를 채용하는 것은 직원 개인의 일탈로 보기 어렵다.

솜방망이 처벌이긴 하나 국민은행은 유죄가 확정되었다. 대법원의 유죄 판결이 확정된 지 5개월이 흘렀지만, 현재 국민은행은 "부정입사자의 채용 취소를 할 수 없다"라면서 대법원 판결을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행의 주장은 법률적으로 따져 봐도 근거가 부족하다. 현행법상 부정입사자에 대하여 '근로계약 취소의 방법으로 사후 근로계약관계를 종료'할 수 있다. 법률행위의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는데, 채용청탁으로 부당하게 입사한 경우 그와 같은 착오가 없었더라면 부정입사자를 채용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국민은행은 착오를 이유로 부정입사자와의 근로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내부 규정에 따른 면직 등의 해고 방법도 있으나, 부정입사자와의 법률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착오에 따른 근로계약 취소의 방법으로 정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결국 국민은행의 주장은 책임회피를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부정입사자를 그대로 재직시킬 이유가 단 하나도 없는데도, 국민은행이 다른 은행들과 달리 지금까지 버티는 것은 상당히 납득하기 어렵다. 때문에 부정입사 의혹이 있는 KB금융지주회사 회장의 종손녀와 일부 사외이사 자제들이 '채용 취소' 대상에 포함될까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의심만 커지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국민은행은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면 판결에 따르겠다"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채용비리 유죄 확정 판결이 났음에도 국민은행은 이를 철저히 외면하며 청년들을 기만하고 있다. 채용비리 문제가 가장 먼저 불거졌던 우리은행은 지난해 3월 법률검토 후 부정입사자를 퇴사 조치하고 특별채용을 실시하였다.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대구은행, 부산은행, 광주은행도 모두 부정입사자를 퇴사 조치한 상태다. 이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은행 중에 국민은행만 남았다.

진정으로 국민은행이 공익성을 먼저 생각한다면 핑계를 접고 즉각 부정입사자의 채용을 취소하여야 한다. 더불어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은행처럼 특별채용이라도 실시하는 것이 맞다. 국민은행의 뻔뻔한 침묵이 계속된다면 더 큰 비난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새로운 정부도 '공정'을 주요 가치로 들고 나온 지금, 더 늦기 전에 국민의 은행으로서 청년들에 대한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

한편 2015~2017년 채용비리사건 유죄 확정에 따른 부정입사자 처리, 피해자 구제 계획이 없느냐는 <오마이뉴스> 질의에 23일 국민은행 측은 "2015년 채용 당시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한 채용 후 90일 이내 개인정보 삭제 조치 의무에 따라 불합격 지원자에 대한 정보 부재로 구제대상자를 특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공정한 경쟁 여건 조성으로 은행의 신뢰도를 제고하는 동시에, 장애인, 특성화고 및 다문화가족 자녀 등 다양한 계층의 채용 실현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아래는 판결문에 적시된 국민은행의 주요 혐의 내용이다  

[판결문에 적시된 2015~2017년 국민은행 채용비리 주요 혐의 내용] 

▲ 2015년 상반기 신입행원 120명 채용
- 서류전형 합격권 지원자 840명 중 여성 지원자의 비율이 남성 지원자의 비율보다 높아 청탁받은 지원자 15명 포함 117명(남성은 113명)의 자기소개서 평가등급을 임의로 상향하여 합격시키고 지원자 119명(여성은 112명)의 자기소개서 평가등급은 임의로 하향하여 불합격시킴.
- 서류전형 결과 '회장님 각별히 신경' 메모가 기재된 청탁지원자는 공동 840등, '서류전형 합격 부탁' 메모 기재된 청탁지원자는 853등이어서 불합격될 것을 우려, 서류전형 합격자는 당초 840명에서 870명으로 늘려서 합격시킴
- 2차 면접 평가등급이 불합격권에 있는 청탁지원자 등 지원자 28명의 평가등급을 임의로 상향해 합격시킴.

▲ 2015년 하계 인턴 150명 채용
- 청탁받은 지원자 18명 포함 32명의 자기소개서 평가 등급 임의로 상향해 서류전형 합격시킴

▲ 2015년 하반기 신입행원 300명 채용
- 청탁받은 지원자 28명 포함 서류전형 불합격권 33명에 대해 자기소개서 평가등급 상향해 합격시킴.
- 이름·생년월일 동일인으로 부행장의 자녀로 오인한 지원자와 청탁받은 지원자 등 20명의 필기전형 논술 평가등급을 임의로 상향해 합격시킴.
- 청탁받은 지원자를 포함한 114명의 2차 면접전형 평가등급을 임의로 상향해 합격시킴.

▲ 2016년 하계 인턴 150명 채용 
- 청탁받은 지원자 28명 포함 91명의 자기소개서 평가 등급 임의로 상향해 서류전형 합격시킴.
- 청탁받은 지원자 13명 포함 22명의 면접 평가등급 임의로 상향해 면접전형 합격시킴.

▲ 2016년 하반기 신입행원 235명 채용 
- 청탁받은 지원자 포함 56명의 서류전형 자기소개서 평가등급 임의로 상향해 합격시킴.
- 청탁받은 지원자 포함 135명의 1차 면접전형 평가등급 임의로 상향해 합격시킴.
- 청탁받은 지원자 포함 48명의 2차 면접전형 평가등급 임의로 상향해 합격시킴.

▲ 2017년 동계 인턴 150명 채용
- 청탁받은 지원자 14명 포함 40명의 자기소개서 평가 등급 임의로 상향해 서류전형 합격시킴.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금융정의연대 사무국장입니다.


#채용비리#KB#성적조작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금융정의연대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