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0일에 탈핵에너지학회에서는 에너지전환포럼의 석광훈 전문위원을 초청하여 "미아가 된 유럽 원전과 택소노미"라는 주제로 (화상) 강연회 겸 토크쇼를 열었다.
택소노미란 EU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적응에 기여하는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일정한 요건에 따라서 지정하고, 귬융계의 친환경적인 투자자들에게 그 정보를 제공하여 투자할 곳의 선택을 도와주고,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적응에 도움이 되는 산업활동이 확장될 수 있도록 자금조달 시장을 유도하기 위해 만든 분류체계라고 할 수 있다.
석 위원은 EU 택소노미에서 애초에는 원전이 들어가 있지 않다가 차후에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활용한 발전에 대한 검토와 보완입법을 통해 원전이 포함되게 된 경위를 소개했으며, 원자력 발전이라는 경제활동이 택소노미에 포함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적 선별기준(technical screening criteria)의 골자를 설명했다. 크게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 전제된다는 것이다.
첫째는 2025년까지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개발하여 적용하여야 한다는 것, 둘째는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최종처분장의 운영계획을 제시하여야 한다는 것, 셋째는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문제와 관련하여 최적가용기술(best available technology)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특히 9.11 사건 이후 항공기 충돌 테러에 대한 대비책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특히 세 번째 조건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들이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석 위원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과 한국의 원전에 대한 안전 보강 공사비 지출 규모를 소개해 주었다.
일본에서는 기존의 원전에 대한 안전문제를 보강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5.7조엔(55조 원) 정도가 지출되었는데 한국에서는 같은 기간 동안 총 5000억 원 정도가 지출되었다고 한다. 전체적인 가동 중에 있는 시설 규모는 차이가 있지만 일본의 25기 원전이 보강이 되었고, 한국에서는 가동 중인 원전이 24기가 있으므로 비슷하다고 보면 안전 보강 지출의 수준이 100 대 1의 비율 정도가 되어 한국의 원전 안전대응 수준은 유럽이나 일본의 수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핵폐기물 최종저분장의 운영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건도 한국의 면적에 비한 높은 인구밀도와 인구 수준에 비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원전 밀도, 그리고 지금까지 있었던 핵폐기장에 관련하여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반발과 극심한 진통을 감안할 때 이는 충족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조건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부장관은 지난 7월 18일 원자력 발전을 한국형 녹색분류 체계에 포함시키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녹색분류체계 포함 시 원전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유럽연합(EU)이 부여한 안전기준을 토대로 국내 실정에 맞게 적용한다"고 했다고 한다.
녹색분류체계 원전 포함은 7월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8월 초안을 발표하고 9월 확정할 예정이라는 것이지만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산업정책의 관점에서 진작부터 원자력 진흥정책을 펼쳐온 부처이고 환경과 건강, 안전문제를 다루어야 할 환경부장관이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러한 적극적인 원자력 진흥 정책의 입장을 밝혔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럽연합(EU)의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할지를 두고 원전의 전과정에 대한 기술적 영향을 평가한 보고서가 나오고 이 보고서 내용에 대한 복수의 전문가 위원회의 검토가 행해지고 그 결과를 반영하여 기술적 선별기준이 마련되어 이런 입법이 유럽의회에서 통과되기까지 많은 어려운 과정들이 있었음에도 아직도 이 과정에 동의하지 못하고 유럽사법재판소에 고소를 준비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환경부장관이 7월에 녹색분류체계 포함 방침을 밝히고 8월에 초안을 발표하고 9월에 이를 확정한다는 것은 그 사이에 원전의 환경/건강/안전에 대한 국내조건에서의 어떤 기술적 연구를 하거나 이에 대한 실질적인 전문가 검토를 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여겨진다.
사실, EU 택소노미에 원자력을 포함시킬지에 대한 검토의 출발점이 된 공동연구센터(JRC)의 두꺼운 기술평가보고서(technical assessment report)는 기존의 학계와 공인된 기관의 여러 연구 자료들을 참조한 종합적인 평가보고서라고 할 수 있으나 주의 깊게 살펴보면 긍정적인 결론에 끼워 맞추기 위해 근거자료에서부터 무리한 논리적 추론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이며, 근거자료의 신뢰성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검토와 평가가 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자력 발전의 전과정에 대한 여러 환경영향 항목별로 편차가 있는 복수의 전과정평가 보고서들이 인용되고 있는데, 비방사능 부문의 인체독성(human-toxicity) 항목에서 원자력 발전은 다른 에너지원에 의한 발전에 비하여 더 불리하다는 연구보고가 포함되었고 이에 따라 원자력 발전이 다른 에너지원에 비하여 환경영향이 더 적다고 결론적으로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는 원자력 발전의 전단계인 우라늄 원광의 채굴과 분쇄가공 과정에서 대부분 발생하는 것으로 설명이 된다.
그런데도 해당 부분의 소결론에서 "다양한 발전 기술들의 정상적 운용에 따른 건강 영향이 비교될 경우, 원자력은 (예를 들어 대기오염으로 초래되는) 조사 사망확률과 사고사망확률(예를 들어 산업재해) 면에서 가장 낮은 값을 가진다"고 서술하였고 이는 명백히 참조하도록 한 출처 자료와 상충된다. "정상적 운용(normal oper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전력생산 단계만을 계산에 집어넣는 것을 합리화시키고 있지만, 건강영향은 전과정(life-cycle)의 정상적 가동을 계산하는 것이 상식이며, 이 경우 정 반대의 결론에 도출하는 것을 은폐하고 있다.
당연히 이 기술평가보고서에 대한 전문가 위원회의 평가에서 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결과적으로 EU집행위의 위임입법에 의한 기술적 선별기준에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주로 유럽 바깥에서 일어나는) 연료 광물의 채굴과 분쇄가공(mining and milling)은 입법의 범위에서 제외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원자력 발전이 EU 택소노미에 포함된다면 사람들은 원자력 발전의 연료 채취에서부터 최종폐기까지 전체 과정에 대한 평가가 된 것으로 당연히 생각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대단한 편법이고 EU 집행위원회의 신뢰성을 의심케 하는 조치라고 하겠다.
또한 이 기술평가보고서는 중대사고 발생시의 방사능오염으로 인한 건강영향 부문에서 원자방사선에 관한 유엔 과학위원회(UNSCEAR)의 후쿠시마지역의 방사능 영향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참조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보고서는 유엔이라는 공식적인 기구의 권위를 싣고 있으나 "지난 10년간 어린이들 사이에서의 갑상선암 증가는 높아진 방사능과 관련이 없고 철저하고 정교화된 검사가 증가한 탓"이라고 주장했던 보고서로서 일본 전문가들과 현지의 당사자들이 전혀 수용하지 않는 원자력 발전을 하는 국가들에서 파견한 대표 전문가들이 작성한 보고서인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들이 여러 군데 있는 기술적 평가보고에 근거하고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검토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위임 입법을 한 EU 집행위원회의 행태에 대하여 사법재판소에 앞으로 제소하고 심리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남아 있다.
이번 강연회 겸 토크쇼에서는 그 외에도 금년 3월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야기한 러시아와 유럽 간의 에너지 거래의 제한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왔다. 원자력 발전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러시아 판도에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60% 정도가 채굴되고 있고, 채굴한 우라늄을 가공하고 농축하는 과정도 러시아가 전세계 수요량의 43% 정도를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핵연료에 대한 수출 제재가 세계원자력업계의 강력한 탄원으로 제외되었지만 이 문제는 언제든 다시 나올 수 있는 상태로 수면 밑에 잠복하고 있다는 것이 지적되었다.
특히 요즘 차세대 원전 대안으로 떠오르는 소형원전(SMR)의 경우 필요한 원료인 고순도저농축우라늄(HALEU)은 100% 러시아에서만 공급된다고 한다. 한미동맹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현재도 필요한 우라늄의 1/3을 러시아로부터의 도입에 의존하고 있으면서 향후 에너지 패권 시대의 안보를 위한 대안으로서 원전에 의존한다는 것이 전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기후변화 대응과 생태환경의 보호에 많은 노력을 해온 모델로 우리가 생각해 온 유럽은 현재 NATO라는 군사동맹의 족쇄 때문에 심각한 에너지 조달의 위기에 빠져 있을 뿐 아니라 EU 택소노미에 원자력을 포함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그동안 얻어온 신뢰를 잃게 만드는 원칙에서 벗어난 석연치 않은 정치적 의사결정으로 유럽 민주주의 자체가 위기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한미동맹으로 미국 편에 서야 하는 우리나라는 신임대통령이 미국의 요청으로 NATO 회의장에까지 기웃거리면서 미래가 안 보이는 원자력 진흥에 올-인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정부는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