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토지>,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 몇 질을 읽으며 책읽기의 기쁨에 빠진 언니는 독서하다 보니 독서와 관련한 한 가지 답답함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토지>를 읽고도 눈물이 나고 <아리랑>을 읽고도 눈물이 났는데 그 심정을 말로는 잘 표현할 수가 없어. 말로 표현하는 게 너무 어렵다. 이렇게 저렇게 내 느낌을 줄줄 확실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그게 안 돼 답답하다, 체한 것처럼."
"아 그래, 그렇지? 그런데 책을 자꾸 읽다 보면 저절로 그 감상을 표현하는 것도 늘지 싶다. 보고, 듣고, 읽고, 느낀 것을 잘 표현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것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막막함이야. 일단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 것 자체에 점수를 주고 싶습니데이~ㅎㅎ"
언니에게 천자문을 추천했다
나는 언니의 '표현이 어렵다'는 말에 꽂혀 어떻게 하면 표현을 잘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천자문이 번쩍 떠올랐다.
"언니 어휘력도 어휘력이지만 겸사겸사 일단 천자문을 배워보는 게 어떨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들에는 대부분 한자가 있고 그 한자가 이렇게 저렇게 생겼다는 걸 알면 재미있지 않을까. 중·고등 검정고시 같은 걸 도전해 볼 수도 있지만 이미 독서의 감을 알았으니 차라리 언니의 경우는 한자 공부를 겸하는 게 더 좋을 듯해."
"그래?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끈기 하나는 있거든. 회사 다닐 때도 늘 지각 한 번 안 했다. 그래도 한자라니.... 한자 써본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봤다."
"사실 나도 천자문 다 몰라. 천자, 아니 500자도 모르지 싶다. 나는 천자문 배워보려고 시도하다가 늘 중도에 그만 두었는데 언니는 되지 싶다. 혹시 아나? 언니가 하는 걸 보면 나도 후끈 달아오를지?ㅎㅎ 한번 도전해볼래? 요샌 뭐든 유튜브에 다 있어. 꼭 천자문이 아니더라도 한자라고 생긴 것을 공책에 쓰다 보면 뭔가 배움의 기쁨이란 게 느껴지지 않을까?"
나는 생각난 김에 스마트폰을 열고 천자문을 검색했다. 유튜브 세상에는 천자문쯤이야 매일 꾸준히 한다면 몇 달 만에 뚝딱하는 일도 어렵지 않을 듯한, 상세한 안내들이 즐비했다. 언니에게 천자문 독송과 풀이 및 획순을 가르쳐주는 채널 하나를 알려주었다.
언니에게 권하면서 나도 견물생심 호기심이 당겼다. 이번에야말로 나도 천자문을 뗄 수 있을까. 아닌 게 아니라 30~40대엔 한자보다 다른 외국어들이 당겼다. 늘 작심 며칠 혹은 몇 달로 이 나라 말, 저 나라 말을 홀로 배웠는데 지나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었다.
결혼 초기 30대를 지날 때는 유교문화가 주는 압박이 싫어 공자님도 싫어했다. 그런데 이제 아이들이 성년을 넘기고 여러모로 해방되니 다시 고전적인 유산들이 좋아졌다. 나도 죽기 전에 사서삼경 원문으로 한번 읽어보자. 읽지 못하면 쓰기라도 한번 해보자 하는 갈망이 일었다. <열하일기>며 <북학의> 혹은 퇴계며 다산의 책들도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점점 생겨났다(그러나 아직 어디까지나 마음만이다).
언니에게 천자문을 권하고 한 일주일쯤 후였나. 언니는 한자를 쓴 공책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나 한자 공부 시작했다!"
"와아~ 벌써?"
사진 속에는 언니가 꾹꾹 눌러쓴 한자들이 빼곡했다. 언니의 독서 입문 뚝심을 보았기에 한자 공부 또한 꾸준할 것이란 기대감이 들었다.
힘들었던 삶도 이제는 추억
언니는 나이 오십 초반에 이불 누비는 일을 배웠다. '오십'을 확실히 기억하는 이유는 어느 명절엔가 친정에서 만났을 때 언니가 신세 한탄을 하면서 읊조렸기 때문이었다.
"내 나이 오십에 이불 기술이 무슨 말이고? 나이 오십에 먹고 살려고 기술을 배워야 되는 신세라니..."
"언니 배운다고 다 되나? 미용사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듯 미싱도 그 분야에 소질이 있어야 되는 거 아이가?"
"일단 해봐야지 뭐. 내가 엄마 바느질 솜씨 닮았으면 될 것도 같다."
그렇게 언니는 이불 누비는 기술을 계속 배워 나갔다. 어느 명절에 만나면 '어려워 죽겠다.' 또 어느 날 만나면 '내 인제 기술 많이 늘었데이~' 하면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한 3년 지났을 때는 자신 있게 말하였다.
"나 이제 웬만한 것은 다 할 수 있다. 무슨 이불이든 갖다주면 입맛대로 박아낼 수 있다."
"무엇이 제일 어렵노?"
"침대 커버 한 번에 매끈하게 좌르르 박아 내는 게 어려웠다. 침대 커버는 이불처럼 평면이 아니고 입체적이잖아? 그 네 모서리 깔끔하게 박아 내는 게 보통 일이 아니야. 이제는 그것도 문제없어."
"언니 대단하다. 확실히 엄마 손끝이 언니에게 유전되었네~"
언니는 그렇게 배운 기술을 65세 무렵까지 잘 써먹었다. 이불 누비는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언니의 아이들이 직장을 잡기 전이었고 형부마저 별 도움을 주지 못할 시기였다. 혼자 벌어서 세 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실질적 가장이었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묵묵히 앞만 보고 달려서인지 지금은 자식들도 안정을 찾았고 무엇보다 형부와는 뒤늦게 잉꼬부부가 되었다. 일이 힘들어도 산을 포기할 수 없었던 언니는 주말마다 등산 가는 것을 즐겼다. 등산은 언니가 65세쯤 어깨에 무리가 와서 일을 놓을 때 더 이상 미련이 남지 않게 해준 인생의 취미였다.
부지런하고 평생 일을 하던 사람들은 쉬고 싶네 하다가도 막상 일을 놓으면 심심해서라도 다시 일을 찾게 되는데 언니는 백수생활을 일인 듯 열심히 하였다. 무엇보다 산을 좋아했기에 혼자서도 가고 여럿이도 가며 즐겁게 지냈다. 언젠가 '이산 저산 다 가 봐도 팔공산이 제일이다'고 해서 물어보았다.
"언니 팔공산 일 년에 몇 번 가노?"
"글쎄, 일 년에 한 40번은 넘지 싶다. 일주일에 한 번만 가도 일 년이면 52번이잖아? 못 갈 때도 있지만 처음 놀 때는 일주일에 한두 번꼴로 자주 갔거든."
그랬던 언니가 코로나 시국을 보내면서 예전처럼 등산을 많이 못 가고 자중하는 일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그 미처 소비하지 못했던 응축된 열정이 곱게 풀려 독서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한자 공부마저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이 들어서 배움에 빠져드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지 싶다. 갈수록 좁아지는 인간관계와 육체적 쇠락 속에서 소외된 마음으로 말년을 보내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그럴 때야말로 공부하기 가장 좋은 시간인 것 같다. 낮아진 체력으로 오롯이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인생에 대한 회고와 사색, 독서 그리고 공부가 제일인 거 같다. 공부하며 늙어간다면 노년은 다시금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천자문은 사자성어가 250구, 합이 천자이다. 250구의 사자성어들이 다 각각 저마다 하나의 문장을 이루기에 글씨 공부이면서 동시에 독서의 느낌도 있다. 나도 언니 덕에 이참에 천자문을 떼어 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알라딘 서재에도 실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