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는 이유는 다양하다. 바쁜 일상에 여유를 누리기 위해서, 새로운 풍경을 구경하고 싶어서, 혹은 가족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쌓기 위해서 등등. 하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식도락이 아닐까 싶다.
국어사전 정의에 따르면 식도락이란 '여러 가지 음식을 두루 맛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일'을 의미한다. '여행'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설레는데 맛있는 음식까지 곁들여진다면 정말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많은 이들이 그 즐거움을 극대화하고자 여행 일정에 맛집 방문을 포함한다.
사람들은 맛집을 찾기 위해 여행지에 다녀온 지인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OO여행 갈 예정인데요, 맛집 좀 추천해 주세요' 라고 온라인 상에 질문 글을 남기기도 한다. 곧 식당들의 이름이 댓글로 달린다. '여기 생선구이가 정말 맛있어요, 거기 김치찜 맛을 따라갈 곳이 없어요, 이곳은 맛도 있지만 메뉴도 다양해서 남녀노소 호불호가 없답니다…'.
댓글들을 살펴보며 많은 이들이 또 다른 고민에 빠진다. 어디가 정말 맛집일까, 어디가 더 맛있을까. 나 또한 그 맛집 목록들을 본다. 하지만 고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반대로 그런 맛집들을 피해서 여행을 다니기 때문이다.
소문난 맛집은 아니어도... 기억날 음식
나도 한때 맛집만 골라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음식은 나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기왕이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소문난 식당을 찾아가면 사람들이 식당 입구부터 빼곡하게 줄지어 서 있었다. 기다림에 한숨이 나올 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기대가 되기도 했다. 얼마나 맛있는 음식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첫째 아이가 좀 컸을 무렵, 남편과 나, 아이 셋이서 국내 여행을 떠났다. 점심은 유명한 갈빗집에서 먹기로 했다. 그런데 식당에 도착하니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한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기다릴 수 있었지만 아이는 배고픔을 참기 힘들어했다. 결국 황급히 다른 식당을 찾았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은 관광지로 진입하는 차들로 도로가 가득 차서 식당 근처조차 가지 못했다. 주변 식당들도 주차된 차로 꽉꽉 차 있었다. 우리는 외곽으로 빠져나와 허름해 보이는 한 식당 앞에 차를 세웠다. 이미 점심 때가 한참 지나 있었다.
식당 안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생선구이 백반을 주문했다. 별 기대 없이 배나 채우자는 생각뿐이었다. 이윽고 밥상이 차려졌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는 윤기가 돌았으며, 통통한 조기는 노르스름하게 잘 구워져 있었다. 함께 나온 된장찌개와 시래깃국은 남편과 아이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우리는 신나게 숟가락질했다. 평소에 생선을 즐겨 먹지 않던 아이였는데, 그날은 손가락에 붙은 생선 살까지 쪽쪽 야무지게 찾아 먹고 있었다. 어느새 밥과 반찬 그릇이 깔끔하게 비워졌다. 숟가락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 가족 얼굴에는 웃음이 피어났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맛집에 너무 연연해하지 않게 된 게. 맛집을 피해, 사람이 없는 식당들 위주로 다니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을까 봐 미리부터 식당으로 달려갈 필요가 없었다. 밀려들어 오는 사람들을 보며 급하게 먹을 필요도 없었다. 전과 달리 여유롭고 한적하게 식사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식당에서도 엄청난 맛을 발견할 때가 있었다. 국물을 한 술 입에 넣는 순간 남편과 이 맛이라며 눈빛을 교환할 때, 어릴 적 할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국수를 만난 기분이 들었을 때, 고소한 나물 반찬이 자꾸 젓가락을 잡아당길 때가 바로 그런 순간들이었다.
때로는 식당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여행지에서의 식사를 즐기기도 했다. 근처 시장에서 이런저런 음식들을 다양하게 사 와서 맛보기도 했고, 간단하게 장을 봐와서 요리해 먹기도 했다. 집에서 자주 해 먹는 메뉴라도 여행지에서 먹는 음식은 사뭇 다른 맛으로 느껴졌다.
날이 너무 춥던 어느 날에는 포장마차 앞에 서서 꼬치 어묵을 하나씩 사 먹기도 했다. 다양한 음식들을 먹었음에도, 아이들은 2박 3일 여행 동안 가장 맛있었던 음식으로 그 꼬치 어묵을 꼽았다.
때론 계획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맛집을 가지 말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맛집을 좋아하고,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맛집에는 오랜 시간 동안 변치 않는 맛,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진귀한 재료, 정갈하고 깔끔하게 차려진 밥상 등 손님들을 사로잡는 매력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너무 맛집만 고집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여행지에서 맛집을 찾느라, 맛집만 고수하느라 힘을 빼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배고프다고 울먹이는 아이에게 '너 사주려고 그런 거잖아!' 하며 화내는 부모도, '몇 시간 기다렸는데 겨우 이 정도 맛이라니' 하며 한탄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나도 예전엔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여행은 새롭고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여행의 매력이다. 그러니 가끔은 누군가의 추천 대신에, 꼭 가보라는 맛집 리스트 대신에, 우연에 맡겨보는 방법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혹시 아는가. 그렇게 우연히 만나는 식당 중에서 자신만의 인생 맛집이 나타날지도. 기대 없이 한 입 먹은 음식에서 여행의 행복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