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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드라마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시대에 10권짜리 초 장편 소설을 집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도 웹툰, 웹소설, 게임 등 이미 많은 경쟁자가 있는 판타지 장르라면?

이 어려운 대장정을 시작한 작가 허교범은 서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첫 장편 <스무고개 탐정과 마술사>로 데뷔했다. 2022년 <대장장이 왕> 시리즈 첫 책을 내고 최근 2권을 출간한 허교범 작가를 지난 17일 합정에서 만났다.


- 한국에선 팔리기 어려운 장르라고 소문난 정통 하이 판타지 장르로 돌아왔다. 그 어려운 일을 시작한 소감은?   
"그 사실을 딱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출판사에서 계약하기 어렵다는 통보를 받고 나서야 처음 느꼈다. 하지만 팔리기 어렵다고 쓰기가 더 어려운 것은 아니다. 나는 잘 팔리는 것보다 내가 쓰고 싶은 걸 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니까 장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훌륭한 작품은 어쨌든 사람들이 즐겨 읽는 법이고 그렇게 되지 못하면 장르보다는 내 역량을 탓해야 맞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스무고개' 탐정 시리즈를 낼 때도 사람들은 내게 어린이 추리 소설은 한국에서 잘 팔리는 장르가 아니라고 했다."
 
 허교범 작가
허교범 작가 ⓒ 김신

- 일반 독자에게 대장장이라는 직업은 익숙하지 않다. 왜 하필 대장장이 '왕'인가?
"대장장이 왕을 쓰면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이었는데 주인공이 주변 인물보다 월등하게 강해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을 피하고 싶었다. 판타지 소설에서 주로 해법으로 제시되는 게 무력이지만 대장장이 왕에서는 주인공의 힘이 보통 사람보다 조금도 강하지 않게 하겠다고. 그래서 주인공의 능력은 파괴와 반대가 되는 방향으로 주어졌고, 마침 '대장장이'는 '만들어 내는 사람'을 대표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인공도 대장장이 왕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그의 능력이 대장장이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 데뷔작  '스무고개 탐정' 시리즈는 12권으로 마무리했다. <대장장이 왕>은 몇 권으로 예상하는가?   
"스무고개 탐정 시리즈를 쓸 때는 열 권 이상이 되면 나름대로 이정표를 남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거기까지 썼다. 이제는 권수가 중요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 5권을 거의 완성한 상황에서 보면 딱 열 권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5권의 끝이 딱 반환점이라고 보기 적절한 순간에 끝나기 때문이다."
 
 대장장이 왕 2권 표지
대장장이 왕 2권 표지 ⓒ 위즈덤하우스
 
- 분량 때문이겠지만 엄청나게 많은 수의 다양한 인물 등이 등장한다. 전체 시리즈의 이야기 전개를 이미 다 구성한 것인지?   
"등장인물은 원래 구상보다 많이 줄였다. 이야기에서 비중이 작은 인물은 이름도 붙여 주지 않았다. 읽는 사람이 정보의 홍수에 빠지지 않고 사뿐히 건넜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스토리라인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미 대장장이 왕이 사는 세상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다. 그건 바꿀 수 없게 처음부터 확정된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저항하는 등장인물 중에는 아직 운명을 알 수 없는 이들도 있다. 생사가 불확실한 사람도 있고."

- 하이 판타지 특유의 웅장하고 진중한 스케일의 읽는 재미도 있지만, 독특한 캐릭터들이 만드는 시트콤다운 익살도 넘쳐난다. 영향을 받은 작품이나, 작가가 있는지?   
"나는 엄숙하고 진지한 것을 아주 싫어한다. 평소에도 실없는 농담을 많이 한다. 시트콤을 드라마보다 좋아할 정도. 그러다 보니 무거운 내용을 쓰다가도 옆으로 새는 일이 자주 나온다. 책에 웃음을 더 많이 넣어야겠다는 의욕은 언제나 강렬한데 입으로는 잘만 나오는 농담이 글을 쓸 때는 바닥까지 말라 버려서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취향을 따른다면 이야기의 절반이 장난과 농담으로 뒤덮이게 될 거다. 영향을 준 작품이나 작가는 하나를 꼬집어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하지만 책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돈키호테'라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보다 좋은 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 책을 설명하는 자료를 보면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대서사시'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이 문구에는 내가 기여한 바가 전혀 없다. 일단 나는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더 중요한 건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가 지금까지 만들어 낸 이야기들은 대장장이 왕을 포함해서 언제나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규모였지 대서사시였던 적이 없다.

그래서 처음 봤을 때 내가 이런 표현에 합당한 이야기를 썼나 싶어서 놀라기는 했다, 하하. 그런데 책을 나 혼자 만드는 게 아니잖은가. 나와 함께 책을 만드는 분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나는 그 의미를 설명할 수 없다."

- 대학교 재학 시절에 데뷔하여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다른 인터뷰에서 영화 시나리오나 성인 소설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앞으로 계획은?   
"당연한 말이지만 10년은 어떤 일의 진수를 파악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어떻게 써야 제대로 쓰는 건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매일 꾸준히 써서 책으로 엮으면서 답을 모색할 뿐. 그러니까 기회가 닿는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은 소망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지만, 일단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잘 마무리하는 게 우선이다. 청소년이 되기 직전의 어린이를 위한 소설과 청소년을 위한 소설, 둘을 병행하는 방식을 앞으로도 10년 정도는 지속할 생각이다. 물론 이걸 거창하게 계획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하던 대로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대장장이 왕>은 어떤 내용?
제국을 꿈꾸는 한 나라와 독립을 꿈꾸는 주변의 작은 나라들은 10년 유효의 평화 조약을 맺어 평화의 시대를 맞이한다. 하지만 조약 체결 8년 후 황제는 당시 조약을 주도했던 대장장이 왕이 신의 은총을 잃었으니 새 조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작은 나라들을 장악하려 한다. 제국의 음모에 맞서 대장장이 신의 사제들은 새로운 왕을 찾아 길을 나서고, 마법사 나라, 몰락한 숲의 나라 스타인, 젤레즈니 나라의 여왕 등은 각각 제국의 음모에 맞서 칼을 뽑는데...

대장장이 왕 1 - 젤레즈니 여왕 데네브가 한 곳에서 새로운 별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허교범 (지은이), 위즈덤하우스(2022)


[세트] 스무고개 탐정 1~12 세트 - 전12권

허교범 (지은이), 고상미 (그림), 비룡소(2013)


대장장이 왕 2 - 에이어리가 깨달음을 얻어 디하우트의 유산에 접근한다

허교범 (지은이), 위즈덤하우스(2023)


#하이판타지#허교범#대장장이왕#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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