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 운영을 합치는 '유보통합'이 추진 중입니다. 이를 두고 각 교육 주체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송대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자문위원이 글을 보내와 이를 게재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유보통합' 정책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
지난 12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유보통합(유치원-어린이집 통합) 반대' 집회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교조는 "현장 교사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이고 졸속적인 정책 추진을 거듭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저는 좀 놀랐습니다.
전교조가 내어놓은 문건을 읽어봤습니다. 문건의 내용 하나 하나를 짚어가면서 논박을 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것은 나중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13일엔 MBC에서 "어린이집 줄 폐원"에 대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3분 정도의 긴 영상 기사였습니다. 영유아인구 격감으로 원아모집이 안 되는 민간어린이집들이 문을 닫고 있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어린이집이 없어지면서 갈 곳을 찾아 헤매는 영유아와 학부모의 소식이 있고, 어떤 학부모는 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해서 결국 휴직을 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앞의 MBC 보도는 제가 <대한민국 교육트렌드 2022>(에듀니티)라는 책에서 지적했던 문제입니다. 올해 만 5세 유아수는 36만 명, 만 0세 유아수는 24만 명입니다. 6년 만에 33%가 감소한 것입니다. 인구절벽을 실감합니다.
산술적으로 전체 1/3개의 시설이 폐원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폐원을 하면 그 시설에 다니던 영유아들은 다른 시설을 찾아가야 하는데, 폐원이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어서 거주지 인근의 시설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언론보도에 나오는 것처럼 엄마나 아빠가 긴급하게 휴직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오래된 문제, 유보통합
저는 1994년 전교조 상근을 하면서 병설유치원 교사와 사립유치원 교사들을 만났고, 1995년 만 5세 '국민학교' 입학 반대운동, 1996년 만5세 무상교육운동, 1997년부터 유아교육법 제정운동을 전교조의 이름으로 참여하고 이끌어왔습니다.
30년 동안 그 일을 해오면서 모든 문제가 '유보 이원화'에서 기인한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이 생각은 2015년부터 2021년 12월까지 세종시교육청에서 근무하면서 더욱 확신으로 다가왔습니다. 세종시 영유아의 교육과 보육을 시청과 교육청이 나눠 관리하면서 통합적인 정책도, 통합적 수급관리도, 초보적인 영유아통계의 통합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시청의 보육시설 관리권한을 교육청으로 넘겨주면, 교육청의 책상 위에 해당 지역의 영유아 전체와 해당 지역의 모든 시설을 펼쳐놓고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교육청에서 근무할 때, 교육감실로 아이의 손을 잡고 와서 '아이 맡길 시설이 없다'며 눈물을 흘리던 엄마가 있던 그 순간에도 세종시 어린이집 중 가정어린이집을 중심으로 50개의 시설이 폐원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그 어떤 관청도 영유아의 현황과 영유아 교육-보육시설의 수급을 관할하거나 통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치원-어린이집 학급당 학생수 줄이지 못 하는 이유
전교조는 앞선 결의문에서 "학급당 14명 이하"를 주장했습니다. 2022년 상황으로는 만 5세 유아들 학급당 학생수는 23명에서 25명입니다. 초등 학급당 학생수 20명 주장에 비하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앞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해당 지역의 영유아수와 시설수용능력 등에 대한 통합된 통계도 없고, 통합된 관리가 없기 때문에 학생수를 줄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육청은 교육청대로, 시청은 시청대로 부모의 민원이 심각하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사립유치원이나 민간어린이집은 사립중고등학교처럼 재정결함보조금이 아닌 개인의 원비를 바우처로 받기 때문입니다.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게 되면 사립유치원 등 민간시설의 운영이 불가능합니다. 한유총은 지원방식 변화 없는 학급당 학생수 감소 반대가 공식 입장입니다.
따라서 전교조가 주장하는 "학급당 14명 이하"는 유보통합관리를 하면서 수급조절을 하고, 사립유치원 등 민간시설에 대한 지원방식을 바꿔야 가능한 일입니다.
'만 5세 의무교육'이라는 말
한 가지만 더 살펴보도록 하지요. 전교조는 "유치원을 유아학교로 명칭 변경하고 유아 만 5세 의무교육을 실시하라"라고 했습니다.
"만 5세 의무교육"이라는 말은 '만 5세 유치원 전담'이라는 말입니다. 아울러 만 5세의 어린이집 입학은 '허용되지 않는다'를 의미합니다. 2021년 통계를 보겠습니다. 21년 영유아학령아동 194만 명 중 178만 명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만 2세 이하 영아 67만4000명이 어린이집에, 3세~5세 유아 중 50만7000명이 어린이집에, 61만2000명이 유치원에 수용돼 있습니다. 이중에서 공립어린이집에 수용중인 유아는 17만8000명, 사립유치원에는 43만3000명입니다.
한편, 2021년 만 5세 유아수는 41만2000명입니다. 의무교육은 원칙적으로 공립이 수용해야 합니다. 공립이 수용하지 못할 경우, 사립에 위탁하도록 돼 있습니다.
이러한 법규정을 그대로 따르자면, 41만 명 중 18만 명 정도를 공립유치원에 수용을 하고, 나머지를 사립으로 위탁교육시키게 됩니다(현재 정원을 모두 채운다고 해도 20만 명쯤 되겠지요). 공립유치원이 만 5세 20만 명, 사립이 20만 명을 수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 그동안 공립유치원에 다니던 만 3세와 4세는 어린이집으로 가야 합니다. 사립의 경우에도 만 3세와 4세 상당수가 어린이집으로 가야 합니다.
어린이집에 다니다가 유치원으로 옮겨야 하는 만 5세 유아, 유치원에 다니다가 어린이집으로 옮겨야 하는 만 3세와 4세 유아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공립유치원과 사립유치원이 각 지역에 골고루 분포돼 있으면 몰라도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집 근처의 어린이집에 다니던 유아를 집에서 먼 유치원으로 보내야 하는 유아의 부모가 가만히 있을까요?
만 5세 아동 의무교육을 하게 될 경우, 유치원의 180일의 수업일수가 문제가 될 것입니다. 유아들 수용시간도 지금보다 길어져야 하겠지요. 학부모들이 어린이집에 영유아를 입학시킨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의무교육을 위탁받는 사립유치원에 사립중고 수준의 재정결함보조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운영비용 전액을 국가가 부담해야 합니다. 그런데 전교조는 12일 결의문에서 "퍼주기식 지원을 멈추고 사립 유치원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라"고 합니다.
위원장님 그리고 전교조 선생님들께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영유아문제의 복잡성 때문입니다. '의무교육'이 진보적인 정책으로 보이지만, 현재 영유아 교육-보육의 상황에서는 공공성을 해치는 정책이 될 수 있습니다.
영유아 교육-보육에는 40~50년 묵은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학령인구격감까지 겹쳤습니다. 유보통합 토론회에서 "이러다 우리 다 죽어"라는 <오징어게임> 속 대사가 나왔고, 참석자 모두 공감했습니다. 그래서 체계적인 연착륙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교육부도, 보건복지부도 책임지지 않는 체계부터 무너트려야
일단 흩어진 문제들을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교육부도 보건복지부도 책임지지 않는 체계는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영유아시설 관할을 교육부와 교육청으로 모으자고 하는 것입니다. 현 상태 그대로 관할권을 모으는 일이 첫 단계입니다. 어린이집은 어린이집의 상태 그대로 유치원은 유치원 상태 그대로 교육청, 교육부가 관할권을 갖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유보통합 그러면 시설도 통합하고, 교사도 통합하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그건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단계의 유보통합은 관할권의 통합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의 테이블 위로 모든 영유아정책을 올려놓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모자란 부분들을 채워가는 것입니다. 수급을 통합하면 학급당 학생수 감소가 가능해집니다. 유치원에 모자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지원하고, 어린이집에 모자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는 것이 두 번째 단계입니다.
세종시의 경우 유치원 수용 유아들은 무상급식을 하는데, 어린이집 수용 유아들은 유상급식을 합니다. 이런 경우 어린이집 수용 유아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문재인 정부가 내세웠으나 하지 못했던 "격차해소"가 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런 작업을 하는 데에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2025년에 관할권을 통합한 후 문제상황을 살피고, 정리하는 것만해도 큰일입니다.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님, 이제 우리 앞에 초등 6년, 중등 6년에 버금가는 영유아 6년의 커다란 학제가 놓여 있습니다. 수용된 170만 영유아, 1만9000 공립유치원교사, 3만4500 사립유치원 교사 그리고 32만 보육교사를 전교조가 포괄해야 합니다. 전교조의 정책은 이제 이들 전체를 끌어안아야 합니다.
영유아는 물론이고 교사들의 상황이 너무 열악합니다. 일반 노동자의 최저임금이 보수의 기준이 되는 선생님이 수십만 명이란 것을 외면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이 문제를 오래전부터 공론의 장에 올리고자 했으나, '교육운동가'들은 이 부분에 관심이 적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한민국 교육트렌드 2022>와 <대한민국 교육트렌드 2023>에 연속으로 영유아 문제를 담았습니다.
이번 유보통합은 '윤석열의 유보통합'이 아닙니다. 지난 30년간 토론하고 싸워왔던 유보통합입니다. 제가 교육청을 나와서 이재명 캠프 유보통합 정책단장으로 내놨던 유보통합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이번에 기회를 놓치면 영유아 교육-보육체계는 '통제되지 않은 붕괴'가 필연입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영유아들과 현직교사들에게 돌아갑니다.
전희영 위원장님. 전교조가 유보통합을 추진하는 진보적 학부모들과 만나야 합니다. 저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의 중심에 우리 아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 우선 필요합니다. 한 번 더 생각해주십시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송대헌씨는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자문위원으로 전 세종시교육감 비서실장을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