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들이 노조에 거부감을 갖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들에게 시간은 곧 돈이기 때문이다. 쿠팡, CJ대한통운 등은 하도급 형태로 대리점주에게 택배를 위탁하고 있다. 월급이 아니라 물건을 나른 만큼 돈을 받는다. 택배 한 건에 800~1200원이 돌아온다.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움직이는 상황에서 노조 활동을 할 여유도, 이유도 없다는 게 현장 기사들의 설명이다. 윤씨는 "지난달 20일 근무하고 1100만원을 벌었다"며 "현재 근무 시스템에 만족하는데 굳이 노조가 필요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최근 쿠팡 택배를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한국경제>는 지난 5월 24일 <"20일 일하고 1100만원 벌었는데"… 쿠팡 기사 '민노총 공포'>란 기사를 통해 쿠팡로지스틱스(CLS)가 위탁한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 사이에서 '노조 포비아'가 생기고 있다는 기사를 내놓았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꼽는 첫 번째 근거는 '현재 근무 조건에 만족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에 담긴 것들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지 확인해보기에 앞서 최근 쿠팡을 바라보는 시선을 두 가지로 분류해보면, 이렇다. 한 편에서는 '한 달에 20일 일하는 억대 연봉의 꿈의 직장'이라며 '팡'비어천가를 부르고, 다른 한 편에서는 쉬운 해고가 난무하는 죽음의 일터를 바꾸자며 '사즉생'의 결기를 보여주고 있다. 두 입장 사이 간극이 너무 커 현기증이 난다. 진실은 무엇일까.
쿠팡 택배 기사를 바라보는 두 시선
일단, 쿠팡 택배 기사들이 주5일 근무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계약서상으로는 말이다. 그러나 쿠팡에서 택배 일을 하면서 주 5일을 근무하는 것은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다. 기사가 쉬는 날에는 직영 기사(내지는 대리점 백업기사)들이 투입되는 데다, 집배점장(대리점 소장)은 본사인 쿠팡과 갑을관계에 놓여있으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주6일, 주7일 근무에 대한 무언의 압박감은 고스란히 택배기사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공휴일에도 일하는 쿠팡 택배 기사들의 모습에는 그런 남모를 속사정이 있는 것이다.
어렵사리 주5일 근무를 한다 하더라도, 영광의(?) 억대 연봉을 달성하려면, 산술적*으로 부부가 함께 일을 하거나, 혼자서 중노동을 각오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쿠팡 택배기사들이 받는 배달 수수료는 1건당 주간은 750~900원, 야간은 1000~1200원 정도로 형성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가정해 봤을 때, 쿠팡 택배 기사가 한달(주 5일, 20일 근무 기준)에 1100만 원의 세전 수입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건당 1100원의 수수료를 받는다고 쳐도 하루 약 500개를 배송해야 한다.
CJ 대한통운 기사들의 통상적인 일일 배송 개수는 250개~300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쿠팡의 경우, 한 집에서 여러 개를 주문하는 경우가 타 택배에 비해 많지만, 이 정도 수익을 올리는 게 보편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이제 위 기사에 등장한 '주장'들에 대해 따져보자. 우선, 1만 5000여 명의 쿠팡 택배 기사들 중에서 현재 근무 조건에 만족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일까? 적어도 내 주변의 쿠팡 택배 기사들은 'O팡'(O같은 쿠팡의 준말), '탈팡'(빨리 그만두고 나가고 싶다, 는 의미) 같은 말들을 입에 달고 다닌다. 견디기 힘든 현실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극사실주의적 표현이 있을까? 필자도 모든 쿠팡 기사들을 만나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모두 만족스러워하지는 않는 게 현실이란 이야기다.
다음으로, 불법 행위 논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노동조합이 현행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해당 기사는 '포비아'라는 단어까지 붙여가며 마치 모두가 노조 활동이 부적절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듯이 서술했다. 정제되지 않은 무분별한 2차 가해와 근거 없는 의혹 제기는 상대방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행태가 남긴 상흔을 최근 건설노동자의 죽음을 통해 목격했다.
'현재 근무 환경이 만족스럽다'는 말의 다른 의미
사실 노동조합이 현장에 끼친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려면, 있었을 때와 없었을 때를 비교하면 되지 않을까. 10년 전, 택배기사는 모두가 기피하는 대표적인 3D 직종이었다(이제는 택배기사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제작되는 정도이니 이런 상전벽해가 또 있겠는가). 노동조합이 택배 산업에 뿌리를 내린 지 10여 년 만에, 만연하던 현장 갑질은 (적어도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있는 터미널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이고, 근무 환경은 개선되었으며, 그에 따라 이직률 또한 현저히 낮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택배 노동자들은 계약서 상 100% 건당 수수료 체계를 적용받고 있다. 건당 수수료 제도의 본질은 최저임금 무력화에 있다. 아파서 일을 못해도, 한 푼도 못 버는 현실이 당연시된다. 사용자의 입맛에 맞게 노동자를 길들이는 유효한 수단이 다름 아닌 수수료 제도의 핵심이며 그 결과 생겨난 문제가 다름 아닌 쿠팡의 클렌징(일방 해고)인 것이다.
다수의 집배점장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여전히 노동조합이 없는 현장에는 대리점의 갑질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또한 앞서 언급된 '건당 수수료 체계'라는 구조적 원인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수수료제는 최저임금을 무력화시키는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갑을 계약 관계에서 사용자의 재량과 편의를 극대화하고, 노동자의 자유를 최소화한다.
택배계에선 노동의 강도와 질의 차이는 동일한 '1건'으로 치환된 후, 미분되어 노동자들의 자발적 경쟁을 유발시킨다. 여기에 더해 집배점장이 어떤 구역을 배정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현실에서, 집배점장이 택배 기사들에 대한 선의를 거두는 순간 '갑질의 유혹'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위약금'이라는 계약서 상 문구로 드러난 갑질이 족쇄가 되어 지난 2020년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던 로젠 택배 노동자의 사례는 아직도 가슴 속에 생생하다(관련 기사 :
'택배노동자 사망' 로젠택배 계약서 보니... "위약금 천만원").
만약 쿠팡 택배 기사들이 "시간이 돈이기 때문에, 노동조합 활동을 할 이유도, 여유도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을 '현재 근무 환경이 만족스럽다'고 해석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과로사 직전의 한계 상황에 봉착해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자본의 이윤 추구는 자연스럽게 원가 절감으로, 무한 단가 경쟁으로, 택배 기사의 수수료 하락으로, 노동시간의 증가로 이어지고, 26명의 사망(택배노조 등이 집계한 과로사 추정치)으로 귀결되었던 것이 지난 '택배노동자 과로사 국면'이었다.
쿠팡과 현대 글로비스 등 이미 택배 산업에 진출해있는 재벌 대기업들은, 아직도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즉, 택배 기사들은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말이다.
'자살공화국'과 '과로 사회'는 대한민국의 서글픈 초상이다. 2023년의 우리는, 노동 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수입은 점점 줄어들고, 빚은 점점 늘어나고, 생활은 점점 팍팍해져만 간다. 적어도,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 이후에는 자살도, 과로도 개인의 문제일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택배노조 우체국본부 본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