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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문학인,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이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앞에서 기자회견을 벌였습니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 가담 혐의가 있는 오정희 소설가가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가 된 것에 대해 항의했습니다. 소설집 <저주토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도 이 기자회견에 참석해 목소리를 보탰습니다. 그가 <오마이뉴스>에 보내온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동문 앞에서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이 2023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에 위촉된 오정희 소설가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동문 앞에서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이 2023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에 위촉된 오정희 소설가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6월 14일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날 문화연대, 한국작가회의, 영화계 블랙리스트 문제해결을 모색하는 모임, 우리만화연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한국민예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8개 단체가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리는 코엑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후 참가자들은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 참여하려 했으나 까닭도 듣지 못한 채 대통령 경호실 요원들에 의해 끌려나왔다. 개막식은 상당히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협회가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로 위촉한 작가 6인 중에 오정희 작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 작가는 2015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당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이자 위원장 직무대행으로서 사회참여 성향(이라 쓰고 반정부 성향이라 읽는다) 작가들을 여러 지원사업 선정에서 배제하는 등 "블랙리스트 실행자"의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블랙리스트 사건이 은밀하게 실행되고 있을 때 나는 전혀 팔리지 않는 무명 작가였으며 생업은 대학 강사였고 소설을 쓰기보다는 세월호 농성장에서 서명받고 미수습자 수색을 재개하라고 행진하고 노란리본 나눠주고 뭐 그런 일을 더 많이 했다. 그러니까 나는 블랙리스트에 오를 만한 명성도 작품도 없었으므로 나하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직접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리스트 이후(준)' 등 문화예술계에서 낸 보도자료를 받고 기자회견에 참가한 이유는 일단은 현재 내가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대표이기 때문이다.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가 설립된 목적은 SF작가들의 창작의 자유와 권리 보장, SF작가들의 활동지원, 그리고 단체 내외의 인권문제 연대이다. 그러므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와 그 후폭풍은 전반적인 인권문제와 작가들의 창작의 자유와 권리보호에 관련된 문제라 판단하여 급히 회원 작가들 사이에 투표를 진행하여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라는 단체 이름을 걸고 기자회견에 참가하기로 했다.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는 SF작가들의 직역단체이지만 사람이 글을 쓰다 보면 여러 가지를 쓰게 마련이라 과학소설만, 혹은 장르문학만이 아니라 순문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회원 작가도 있다. 순문학 작가로 정식 등단한 뒤에 장르문학에 진출한 작가도 있다. 그리고 회원 중에 지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직접 피해를 입었던 당사자도 있다. 그래서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는 대표 한 명이라도 당일 기자회견에 참가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나는 소련문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고 주로 스탈린 시대에 박해받았던 작가들을 20년쯤 연구했다. 1934년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소비에트 연방의 공식 문화예술사조로 선포된 이후 소련 공산당 노선을 찬양하고 홍보하지 않는 작가들은 모두 퇴출당했다. 작가 본인이 출판금지당하는 것은 물론, 작가의 자녀나 배우자 등 가족이 인질 격으로 수용소에 끌려가서 고초를 당했다.

내가 괴로움을 겪으면 화가 나지만 가족이 잡혀가면 겁이 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많은 작가들이 절필하거나 몰래 글을 쓰고 원고를 숨겨두었고 정부의 낙인 때문에 사회활동을 할 수 없어 가난과 굶주림 속에 비참한 삶을 살다 죽었다.

내가 입을 다물면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한 관람객이 홍보대사 포토월을 촬영하고 있다. 포토월 속 왼쪽에서 세 번째가 오정희 작가.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한 관람객이 홍보대사 포토월을 촬영하고 있다. 포토월 속 왼쪽에서 세 번째가 오정희 작가. ⓒ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 시기 때 자행된 것으로 밝혀진 한국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때, 오정희 작가는 블랙리스트 실행의 총체적 온상이었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핵심위원으로 헌법에 보장된 양심과 표현의 자유, 출판, 집회결사의 자유를 위법하게 침해하면서 백서 등을 통해 밝혀진 것으로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우수문예지발간사업, 주목할 만한 작가사업 등에 참여한 작가들이 사회참여적 블랙리스트란 이름으로 사찰, 검열, 배제되는 데 앞장섰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진상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런 블랙리스트로 지목당했던 문화예술인은 8931명에 이르고, 피해 문화예술단체는 총 332곳에 달했다. 지원사업에서 탈락한 문화예술인들과 단체들은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포함한 집필활동의 실질적인 피해를 당했다. 오정희 작가 본인은 이에 대해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1930년대 엄혹했던 공포정치의 시대에 스탈린 곁에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아버지라 불리는 작가 막심 고리키가 있었다. 고리키는 본인이 노동계급 출신으로 노동자와 빈곤층을 주인공으로 하여 걸작 <어머니>(1906) 등 러시아제국의 사회부조리를 폭로하는 혁명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그러나 공산혁명 이후 스탈린의 오른팔이 되어 수많은 작가와 작가의 가족들을 수용소와 감옥으로 보내고 굶겨 죽였다.

정치권력자 밑에서 문화예술계의 권력자가 된다는 것은 아주 달콤한 일인 모양이다.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글을 통하여 작가는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는다(따옴표로 묶은 이유는 이 표현이 저작권법 제 2조 1항에 따른 저작물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창작물은 저작권법을 통하여 보호된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은 헌법에 의해 보호된다. 다음은 대한민국 헌법 조문이다.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20조 종교의 자유 생략)
제21조 ①모든 국민은 언론ㆍ출판의 자유와 집회ㆍ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ㆍ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ㆍ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21조 3항과 4항은 생략)
제22조 ①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②저작자ㆍ발명가ㆍ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가 8년이 지난 지금까지 항의하는 이유는 내가 보기에 크게 두 가지다. 원칙적으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는 그 발상 자체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다는 예술의 기본적인 존재 이유이자 정의를 어그러뜨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저작물에 대한 검열은 위의 조문에 보듯이 헌법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문화예술에 대한 검열과 사찰은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가지는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며 작가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인간으로서 가지는 양심의 자유와 언론출판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업이자 소명으로 삼는 사람이다. 우리는 밥줄 끊는다고 입 다물지 않는다.

내가 입을 다물면, 내 동료 작가들, 나의 동시대 문화예술인들, 그리고 앞으로 5년 뒤, 10년 뒤에 한국 문화예술계를 이끌 미래의 예술인들이 또 다시 피해를 입을 것이다. 표현을 조심하고 자기 사상과 감정을 정치권력에 맞춰 검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문학과 예술은 죽는다. 역사가 증명한다.

그 문학은 예술이 아니다

2022년 <저주토끼>가 부커상 국제부문 후보로 오른 뒤에 해외 문학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많이 있었다. 그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한국 문학의 특징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 중 한 명인 최은영 작가, 그리고 <잘 자요 엄마> 등의 스릴러로 이미 몇 년 전부터 유럽에 한국문학 열풍을 일으킨 서미애 작가 등 국문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을 나보다 더 깊이 잘 아는 작가님들과 함께 한국 문학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들이 있었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해외에서 인정받는 이런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님들이 말씀하신 한국 문학의 특징은 장르문학이든 순문학이든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었다. 한국 작가들은 언제나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를 날카롭게 돌아보고, 한국인과 한국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때로는 서슴없이 스스로 조롱하고 풍자하고, 거침없이 현실의 어둠을 드러내고, 깊은 숙고와 반성을 이끌어 낸다. 이것이 한국 문학을 세계문학의 반열에 끌어올린 건강한 힘이다.

한국 문학계의 어른이라면, 윗세대 작가이고 선배라면, 마땅히 더 깊은 반성과 더 거침없는 비판을 격려할 일이다. 현실을 비판하지 않고 권력에 아부하는 문학은 예술이 아니다. 그런 문학은 썩는다. 권력에 아부하기 위해 썩은 문학을 강요하며 동료 작가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것은 작가로서 할 일이 아니다. 헌법 앞에 모든 국민이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받는 대한민국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의 주요 특징, 내용, 줄거리, 주제와 소재는 몇 가지 공식으로 정리된다. 소련은 이미 망했지만 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공산주의 독재국가 예술사조의 모델로서 꽤나 넓고도 깊은 해악을 끼쳤는데 그 좋은 예시가 북한이다. 국립중앙도서관 북한실에 가면 선별된 북한 문학 작품들을 읽을 수 있다.

북한 문학 작품들은 대단히 재미가 없다. 정말 지독하게 재미가 없다. 권력이 시키는 대로 글을 쓰기 때문이다. 줄거리와 표현방식은 이미 정해져 있고 결론은 요즘 말로 '답정너'다. 주제와 소재부터 1년에 출간해야 하는 작품 개수까지 매년 초에 당 중앙에서 정해서 지역별로 작가들에게 공장 제품 만들듯이 그 해의 작업량을 할당 해준다. 작가는 권력자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고 검열과 통제에 순종하여,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허락된 적절한 단어를 나열하는 작업에 종사한다.

그런 작업의 끝에는 <82년생 김지영>도 <채식주의자>도, <기생충>도 <오징어 게임>도 있을 수 없다. 그저 자기 권력에 취한 한두 사람이 기뻐하고 나머지 모든 사람이 외면하는, 재미없는 글자를 시키는 대로 인쇄한 종이뭉치가 있을 뿐이다.

그것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미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역사가 증명한다.

그러므로 나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할 자유를 위해,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보장한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나의 동지들과 연대하여 함께 항거할 것이다.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송경동 시인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논란이 있는 오정희 소설가의 2023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 임명에 항의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송경동 시인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논란이 있는 오정희 소설가의 2023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 임명에 항의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모든 물의를 몰고 온 문체부와 대한출협, 서울국제도서전 조직위 등은 사과하고, 재발방지책을 내놓아야 한다. 김건희씨 축사를 위해 홍보대사 오정희씨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까닭만으로 송경동 시인 등 해당 문화예술인을 다시 블랙리스트로 규정하고 불법적으로 개막식장에서 끌어낸 대통령실의 위법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

우리는 입 다물지 않는다. 우리는 잊지도 않는다.
투쟁.

#서울국제도서전#오정희#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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