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띠가 보는 OOO의 여섯 번째 주제는 '기후정의와 시빅데이터'입니다. 최근 기록적인 폭우로 많은 곳에서 피해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기록적인'이라는 말, 요즘 꽤 자주 들리지 않나요? 기록적인 가뭄, 기록적인 폭염, 기록적인 폭우, 기록적인 한파, 기록적인 폭설 등은 모두 기후변화로 인한 것인데요.
지난 3월, 빠띠가 보는 '기후위기와 민주주의'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시민의 목소리를 모으고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이번 '기후정의와 시빅데이터'에서는 우리 주위의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기후위기 대응에 앞장서는 이야기를 살펴보려 합니다.
한반도의 여름이 점점 위험해지고 있다. 하루에도 폭우와 폭염 소식이 번갈아 전해진다. 기상학계에서는 500년 동안 사용돼온 '장마'라는 단어가 아니라 '우기'라는 이름으로 명칭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몇 년간 기후변화의 여파로 여름철 강수 패턴을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장마가 끝났다고 믿었던 8월 초에 중부 지방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며 서울 강남 일대가 물에 잠기는 등 전국적으로 큰 피해가 발생했다.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라는 기후활동가들의 주장은 이제 더 이상 구호로만 그치지 않는다.
기후위기의 얼굴은 같지 않다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 폭우, 폭설, 태풍, 가뭄, 홍수, 산불 등과 같은 이상기후의 영향은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더욱 큰 고통을 초래한다. 특히 빈곤층, 여성, 아동, 장애인, 노인, 원주민, 소수민족, 이주민, 난민 등이 더 큰 타격을 받는다. 한 국가 내에서도 종사하는 산업이나 거주하는 지역, 사회경제적 능력과 생물학적 특성에 따라 기후변화의 영향은 다르게 나타난다. 1차 산업 종사자들일수록 기후변화에 취약하고, 도서 지역이나 저지대, 해안가에 사는 주민들이 더 큰 피해를 입는다.
그렇다. 기후위기는 평등하지 않다. 기후정의는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이 초래하는 비윤리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줄이기 위한 운동이다. 기후정의는 다음과 같은 정의를 추구한다.
인종이나 성별, 소득, 문화, 특정 사회의 구성원 등과 무관하게 기후위험으로부터 평등하게 보호받고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을 누릴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실질적 정의), 기후변화를 야기한 책임과 그로 인한 피해 간의 불일치를 교정해야 하며(분배적 정의), 기후변화로 가장 영향을 받는 사람에게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보장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절차적 정의).
살아있는 증언과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러나 기후정의를 위한 목소리는 집에 앉아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면 조용해진다.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는 폭우와 폭염의 이상기후에도 배달은 30분 만에, 하루만에 시간을 어기지 않고 도착한다. 하지만 기후위기의 불평등은 조금씩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기후정의의 원칙이 보다 입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우리 삶에서 기후위기와 그 불평등에 대한 살아있는 증언과 데이터가 필요하다.
2029년 한겨레21, 녹색연합,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
폭염 시민모니터링'을 진행했다. 129명이 모니터링에 참여해 7월 22일부터 8월 9일까지 각자 일터에서 노출되는 온도를 측정했다. 건설노동자, 농민, 배달노동자, 인터넷 설치기사, 가스검침원, 방문 요양보호사 등 다양한 직군의 참가자들은 기온을 자동 기록해주는 명함 크기의 온도기록계를 착용하고 출퇴근했다.
총 82명(실내노동자 31명, 야외노동자 51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야외노동자의 평균 노출온도는 29.97℃로 실내노동자의 평균 노출온도 28.73℃보다 1.2℃ 높았다. 이는 동일한 온도라도 대상자의 근로환경 및 신체적 조건에 따라 폭염의 영향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며, 폭염시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폭염시 작업중지권을 법제화를 강조했다(현행법상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규정하고 있지만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실행하기란 고용관계상 실제로 어렵다.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에 대해 사업주의 제재 및 손배청구 등을 막는 규정도 필요하다).
여성환경연대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기후 재난이 일상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해 5월 30일~6월 12일 성인 126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 결과 '지난 5년간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거주 공간의 피해를 입었다'고 답한 사람이 54.5%에 이르렀다.
'지난 5년간 폭염·폭우 등의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경제활동에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소득 감소(13.9%), 권고사직 및 실직(6.5%), 휴직·경제활동 중지(6.4%) 등 경제적 피해를 봤다고 답한 응답자가 30% 가까이 됐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일상에서 체감하는 건 수도권(4.15점)보다 비수도권(4.2점)이, 소득이 많은 응답자(월 소득 500만 원 이상. 4.05점)보다 소득이 적은 응답자(월 소득 100만 원 미만. 4.45점)가 더 컸다.
우리가 기후위기에 어떻게,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점도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활동이다. 그린피스는 시민모니터링단을 구성해 2022년 한 해 동안
국회의원의 기후위기 대응 관련 의정활동을 추적하기 위해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입법안과 국정감사 회의록을 통해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온실가스 감축 및 기후위기 적응 관련 법안의 대표 발의 건수를 살펴보면 더불어민주당이 70건으로 가장 많았던 반면 국민의힘은 31건에 불과했다. 의석당 발의 건수로 보면 정의당이 1.17건으로 가장 많았고 기본소득당 1건, 더불어민주당 0.41건 국민의힘 0.27건 순이었다. 모니터링단에서 꼽은 주요 기후법안은 모두 계류 중인 상태로 머물렀다. 모니터링단은 전반적인 의정활동을 기대에 못 미치는 것으로 평가했다.
몇 가지 사례로 살펴봤지만, 기후정의는 더 많은 시민데이터로 확장되어야 한다. 기후정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재난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정부가 수집하는 정보가 실제로 적절한지 혹은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가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지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기후위기 취약계층을 비롯한 시민 참여의 구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기후위기 불평등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는 적어도 의문을 갖게 할 것이다. '지금의 이 방식이 정말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