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의 자치법규인 조례의 폐지 여부는... (중략) 관련 법령에 따라 주민의 대의기관인 지방의회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판단할 사항으로 사료된다." (7월 10일 교육부 답변서)
"학생인권만을 주장해 교원의 교육활동과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이 더 이상 침해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 시도교육청과 협의해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학생인권조례 개정도 병행 추진해 지나친 학생인권 중심의 기울어진 교육환경을 균형 있게 만들겠다." (7월 24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발언)
교육부가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불분명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 7월 10일, 청소년인권단체가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며 보낸 질의에 답하며 '학생인권조례는 지방의회에서 판단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초등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이슈화되자,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학생인권조례를 언급하며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비친 것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소위 '교권 침해'와 인과관계가 없으며, S초 교사가 사망한 사건과도 관련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주호 장관은 학생인권조례가 문제의 원인 중 하나라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관련 기사 :
이주호, S초 사건 사과하면서도 "학생인권조례 때문").
"지방의회 판단 사항"이라고 하더니... 이젠 '개정하자'?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지난 2월부터 "지켜라 학생인권" 캠페인을 진행했다. ▲ 우리는 학생인권조례 등 학생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를 폐지, 축소시키려는 것에 강력 반대합니다! ▲ 국회는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제정하여, 모든 지역에서 차별 없이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십시오! ▲ 국회와 교육부는 학생이 학교 운영에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정해야 합니다 등 세 가지 요구 사항을 내걸었는데, 현재까지 총 2029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아수나로 등은 지난 6월 19일, 캠페인 내용을 교육부 장관, 국회 각 정당 원내대표 및 교육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서울시의회·충남도의회 각 정당 원내대표 및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 등에게 전달하면서,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에 대한 입장, 학생인권법안(「초·중등교육법」 개정안) 통과를 위한 계획,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정책 등을 질의했다.
교육부는 7월 10일, 질의에 대한 답변서를 보내며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에 대해 "조례의 폐지 여부는 지방의회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판단할 사항"이며, 학생인권 관련 법률은 "국회에서 처리되어야 하는 사항"이라고 답변했다. 조례와 법률에 대해 지방의회와 국회에서 처리할 사안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한 것이다.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뚜렷한 입장이 없다는 내용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이후 S초 교사 사망 사건이 발생하자, 학생인권조례를 개정하겠다는 취지의 발언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도 학생인권조례를 지목하며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 조례 개정도 병행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지자체의 자치법규인 조례를 중앙정부의 대통령과 장관이 직접 거론하는 것이 지방자치와 민주주의의 원리에 비춰 보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더구나 교육부는 아수나로의 질의에 '학생인권조례는 지방의회가 판단할 사항'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
"교사들 어려움은 학생인권 축소로 해결될 수 없다"
아수나로 등이 보낸 질의에 대해, 국회의원 중에는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 정의당 배진교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회신해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찬성' 입장을 밝혔다. 현재 박주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는 ▲ 학생인권 침해 금지 및 학생인권조례 근거 강화 ▲ 인권을 침해하거나 하자가 있는 학교규칙의 시정·감독 가능 ▲ 학생 자치 및 학교 운영에 학생의 민주적 참여 보장 ▲ 교육청의 학생인권 보장 의무 명시 및 구제 기구 설치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승미 서울시의원은 답변을 통해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교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은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거나 학생 인권 보호 정책의 축소 내지는 폐지를 통하여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찬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는 전화 인터뷰에서 "교육부는 우리가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질의를 하자 '지방의회 판단 사항'이라며 회피했다. 그런데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교권 강화를 주장하면서 '학생인권조례 개정하겠다'고 한다. 이는 이중적 태도이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교육부와 대통령 등이 (이번 사건의 원인 등에 대해) 제대로 확인해보지도 않은 채 곧장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하는 것 같다. 무책임하고 비합리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김 활동가는 "조례 내용은 두발 규제, 체벌 등의 폭력, 차별, 자의적인 소지품 검사 등 인권 침해를 하지 말라는 것인데, 교사의 수업권이 이러한 학생의 인권을 마음대로 침해할 권리라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학칙이나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교사가 소송, 민원을 당하거나 인권침해를 겪는 문제와 무관하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8월 1일 국무회의에서도 "학생인권을 이유로 규칙을 위반한 학생을 방치하는 것은 인권을 이유로 사회 질서를 해치는 범법 행위를 방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학생인권 때문에 규칙을 어긴 학생이 방치된다는 주장은 막연한 인상일 뿐 뚜렷한 근거가 없으며, 학생인권조례 안에는 학생이 학교 규칙을 존중하고 지켜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이미 존재한다.
또한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규칙이 인권을 침해할 경우 민주적 절차를 밟아 개정하도록 하는 내용인데, 대통령의 발언은 규칙의 정당성이나 합리성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이나 취지에 대한 오해가 엿보인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교육부 장관과 대통령의 발언에 정파적 의도가 있는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와 여당은 교사들이 겪는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절차와 근거에 따라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