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21조 제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규정한다. 윤석열 정부는 과거 헌법을 철저히 무시하고 벗어나는 수법으로 언론계를 망가뜨린 인사를 장관급인 방송통신위원장 자리에 앉히려 한다. 가히 현재 한국 언론 역사상 최악의 재취업 알선이자, 언론 자유 파괴 이력을 옹호하는 불법적 행태라 할 수 있다.
지난 8월 1일 과청정부청사 인근에 마련된 인사청문준비단 사무실에 첫 출근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는 재취업에 거의 성공한 것 같다. 이 후보는 청문회 과정에서 자격 적절성 논란 및 자녀 학폭 사건 개입 의혹, 언론 장악 시도 등에 대해 명확히 해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사실상 자신의 임명을 확신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윤석열 대통령이 수많은 논란에도 이 후보 임명을 강행할 것이란 소식이 들려온다.
필자는 <오마이뉴스> 지면을 빌려 이동관 후보, 윤석열 정부, 국민의힘에 공개 토론을 제안한다. 임명을 강행한다면, 그 이후도 좋다. 이동관 후보의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이 불가피한 이유에 대해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설명하고, 그의 이력과 업무계획서라도 국민에게 공개해 전문성과 적합성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할 수 있게 해달라.
이런 요구까지 하는 이유는 이동관 후보자는 방송통신 및 미디어 정책을 맡을 전문성이 부족한 부적격 구직자이자,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인사이기 때문이다.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않은 재취업을 대통령이 여론을 무시한 채 강행한다는 점이 매우 실망스럽다.
기자 이동관에서 정치인 이동관으로
우선, 언론인이었던 이동관 후보는 어떻게 정치권에 들어갔나? 공개된 그의 경력을 살펴본다. 그는 20여년 간 국내 유수 언론사인 동아일보에서 기자와 정치부장, 논설위원 등으로 2005년까지 재직했고, 2006년에는 언론인 단체 관훈클럽 운영위원으로 일했다. 그러다 이듬해 여름인 2007년 7월,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한 이명박 캠프에 공보특보로 합류했다.
이 후보는 2007년 12월 대통령직인수위 대변인을 맡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8년초부터 2009년 8월까지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1년 6개월 활동했다. 이후 2009년 8월부터 언론과 홍보 정책을 총괄하는 신설 홍보수석 자리에서 일했다. 그리곤 2011년 한해동안 이명박 대통령 언론특별보좌관으로 활동했다. 특별보좌관(특보)은 무보수에 명예직이었지만, 대통령실장과 수석비서관을 포함한 공식 참모진과 별도 정기 모임을 하고, 대통령에게 국정 현안을 직보하는 자리로 알려진다.
언론인의 정치권 진입이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매우 흔한 일도 아니다. 기자는 비록 공무원이 아니지만, 윤리적으로 어느 정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 이 후보자는 그런 언론계의 오랜 역사와 자부심에 상처를 내며 정치권에 들어갔다. 그리곤 단순히 일반적인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언론자유를 위해(
뉴스타파 DATA 포털 이동관 언론장악 개입 입증 공공기록물 참고) 일했다.
무엇보다도 그가 방통위원장 후보로 부적절한 이유는, 이동관이 홍보수석으로 언론대응과 정권 홍보를 맡은 경험은 있으나, 방송통신을 비롯한 미디어 정책을 직접 총괄한 이력이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 정책 책임자에 프로파간디스트를 세우는 악수
더욱이 이동관 후보는 프로파간다에 적극적으로 앞장선 인사다. 본인은 그것이 청와대 홍보 직책의 본업이었다고 항변하겠으나, 문제는 그 본업이 정치 권력을 위해 저널리즘을 무너뜨렸다는 데 있다. 이명박 정부 언론 정책은 비판적 기능을 빼앗고 기자를 내쫓는 데 집중했다.
이 후보가 MB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일한 2008-2009년, 정치 권력은 속된말로 언론계를 갈아엎었다. 이명박 정부는 공영방송을 중심으로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KBS '시사투나잇'과 '미디어포커스'가 중단됐고, YTN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돌발영상'이 폐지되었다. 프로그램 폐지뿐만 아니라 관련 다소 언론인이 징계로 해직되거나 부당 발령을 겪었다. 2008년 8월 KBS 정연주 사장이 해임됐고, 10월에는 YTN 기자 6명이 해고됐다. 이중 노종면 기자는 2009년 3월 구속되어 구치소에 가기도 했다. 이명박 대선캠프 출신 낙하산 사장 출근을 반대했다는 이유였다. MBC에서는 신경민 앵커와 손석희 아나운서가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특히 참담했던 일은, KBS 탐사보도팀 해체다. KBS 탐사보도팀은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주요 후보를 정밀 검증하며 도덕성에 의문을 던졌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8년 초에는 당시 통일부, 문화부, 환경부, 국토부, 법무부 장관 후보 등 고위 공직자 도덕성과 자질을 검증해, 이 중 일부 인사는 결국 철회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압박 속에서 KBS는 당시 탐사보도팀의 중심이었던 김용진 기자를 2009년 팀장에서 팀원으로 좌천한 뒤
부산총국으로 발령낸다. 탐사보도 프로그램 <시사기획 쌈>을 없애고, 마침내 2010년 1월에는 팀을 사실상 해체한다(참고로, 김용진 KBS 기자는 이후 퇴사한 뒤 다른 기자들과 합심해 2011년 한국 최초의 탐사보도 매체 뉴스타파를 만든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치가 이토록 악랄하게 언론을 손에 쥐려고 했던 시절, 이동관 후보는 그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언론계 경험을 악의적으로만 사용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업무는 철저하게 반 저널리즘적이고 반민주적이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임기 종료와 함께 미디어에서 사라진 지 10년 만인 지난 제18대 대선 때,
그는 국민의힘 선거 캠프에 다시 등장한다. 그 누구보다 뻔뻔스러운 언론계 빌런의 귀환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특별고문과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을 맡았다. 그렇다면, 그는 지난 시간 동안 방통위원장직에 적합한 전문성을 쌓아왔을까?
무자격 사업자에게 업계 관리를 맡기겠다니
언론을 포함한 미디어 산업에서 정부가 가장 까다롭게 관리하는 부분 중 하나가 '자격'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사의 재허가와 재승인을 심사하는 기관이다. 이때 심사위원회는 방송의 공적 책임, 공정성, 공익성 실현 가능성을 심사할 뿐만 아니라, 기획과 편성, 제작계획의 적정성, 조직과 인력관리, 재정 및 기술, 방송발전 지원계획 등 이 분야의 사업자로서 갖춰야 할 조건을 까다롭게 평가한다. 그런데, 이동관 후보는 방송의 제작, 기술, 조직 등과 관련해 어떤 경험을 했는지 모르겠다. 넷플릭스와 틱톡을 이해해야 할 시대에,
BBC와 NHK를 이야기하고 있다.
심지어 이동관 후보는 언론의 공익성 실현과 관련된 자격 또한 분명하지 않다. 청와대 홍보를 총괄하고, 대통령 당선자 언론 전략을 자문한 경험 외에 방송 및 미디어 정책에 직접 관여 책임감 있는 업무를 수행한 이력이 있는지 궁금하다. 게다가
'대통령 특별보좌관' 자리는 무보수 명예직이라, 대통령이란 중요 직책의 업무에 개입하면서도 기록은 남지 않는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동관 후보를 '공영방송 정상화 적임자'라고 부르고 있으나, 이 후보가 그동안 공영방송 및 미디어 정책과 관련해 어떤 책임과 권한을 행사해 성과를 냈는지는 밝힌 적이 없다.
우리는 조건을 갖추지 않고 어떤 업계에서 이익 내는 사람을 '무자격 사업자'라고 부른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이들은 찾아 계도하고 필요할 경우 강력히 고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예산만 2600억, 기타 방송통신발전기금 1조원 4천억 원가량의 집행 권한을 가진 대통령 직속 방송 정책 및 규제 기구다. 장관급인 방통위원장은 1억 3천만 원가량의 연봉을 받는다. 어떤 과정을 거쳐 전문성을 갖췄는지 분명하지도 않은 무자격자를 장관급에 앉도록 하고, 세금으로 1억 넘는 연봉을 줄 만큼 국민 마음은 너그럽지 않다. 공영방송을 포함한 미디어나 통신업계, 심지어 방통위가 규제하고 싶어하는 글로벌 OTT 관련한 영역에서도 한번 일해본 적 없는 정치인이, 어떻게 공영방송 정상화를 책임지고 수행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자격없는 정치 언론 기술자가 장관급 적임자라니
마지막으로, 윤 대통령은 수많은 대한민국 청년과 MZ세대에게 내건 약속을 대놓고 어기는 중이다. 취업 과정의 공정이나 자유를 그렇게 강조해놓고, 결국 어떤 전문성을 가졌는지 불분명한 사람을 방송통신위원장직에 임명했다. 이는 윤 대통령 스스로 중차대한 과업이라 외치던 미디어 콘텐츠 통신 산업의 지속가능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 따위는 총선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못 박는 것으로 보인다.
적당한 시기에 권력에만 충성하면, 제대로 검증 안 된 인사도 언제든 자리를 얻는다는 악습을 대통령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결국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지명은 현 정부의 무책임과 안일함을 드러낸 판단이다. 이 후보의 '기술'을 너무나 잘 알기에, 더욱 한심하다. 미디어의 비판적 기능과 그 시청자가 사라진 자리에는 정권이 자주 외치는 '가짜뉴스'가 들어설 것이다. 총선을 위해서도, 미디어 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방송통신위원장에 이동관 후보를 임명하는 일은 최악의 정치적 결정이다. 이동관 후보의 재취업 성공은 한국 언론계의 비극이자 우리 사회의 암울한 미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 YTN 기자입니다. 미디어오늘에도 송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