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둘째 아이와 난리가 났다. 둘째는 자다가 깨면 엄마가 옆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아이다. 아빠가 달래도 안 되고 엄마가 없으면 소리소리를 지르며 울어댄다.
어제는 아이 둘 다 피곤했는지 엄마가 책 읽어주는 소리를 듣다가 잠들어 버렸다. 나는 불을 끄고 살며시 안방을 나와 작은 방으로 가서 책을 읽고 가계부 정리를 하며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둘째가 자면서 몇 번 기침을 하더니 결국 깨서 울기 시작했다. 아이가 다시 잠들기를 바라며 하던 걸 마무리 하고 안방에 들어갔는데, 아이 딴에는 엄마가 너무 늦게 온 거다.
소리소리 지르면서 서럽게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겨우 다시 어르고 달래 재우면서 한숨이 폭 나왔다. 고요한 밤에 오랜만에 집중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던 중이었는데 아쉬웠다.
아이가 전에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밤에 우리 재우고 어디 가?"
그때 뭐라고 대답했는지 생각하다가 얼마 전에 읽어준 그림책 <회사 괴물>이 떠올랐다.
책 속 아이는 아침마다 회사 괴물이 엄마를 잡아간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엄마가 회사에 못 가게 하고 싶지만 엄마는 매번 회사에 가고 만다. 책에는 엄마가 회사에 간 뒤 아쉬워 하면서 엄마를 보고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에게 아이는 묻는다. 괴물 같은 회사가 엄마를 잡아갔었냐고.
"회사는 괴물이 아니고 엄마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곳이야."
"일이 뭐야? 엄마는 왜 일을 좋아해?"
"일은 예솔이가 재미있게 노는 것과 비슷해. 예솔이는 놀이터에 가서 놀지? 엄마는 회사에 가서 일해. 예솔이는 노는 거 좋아하지? 엄마는 일하는 거 좋아해."
그림책 속 벽에는 아이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과 함께, 엄마가 회사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사진도 걸려 있다.
엄마가 돈을 벌어야 해서 회사에 가야 한다거나, 아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엄마가 회사에 다녀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고 그냥 엄마가 일을 좋아해서 회사에 다닌다고 대답하는 게 좋았다.
'네가 노는 걸 좋아하듯이 엄마도 일하는 게 좋아. 그래서 회사에 가는 거야'라는, 어찌 보면 솔직하고도 간단한 대답이 일하는 엄마에 대한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를 위해서만 엄마가 존재하는 건 아니다. 엄마도 엄마 자신을 위해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아이도 그런 엄마를 존중해줄 줄 알아야 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걸 누리도록 부모로부터 존중 받고 허용 받듯, 엄마도 엄마가 좋아하는 걸 누릴 수 있도록 아이가 엄마를 놔 줄 때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음에 아이가 또 엄마는 밤에 날 재우고 어딜 가는 거냐고 원망 섞인 표정으로 물으면, 엄마도 엄마가 좋아하는 것 하러 잠깐 가는 거라고 대답해야겠다. 엄마도 엄마가 좋아하는 일이 있고, 엄마만의 취향이 있고, 엄마만의 삶도 있는 거라고, '엄마' 가 아니라 엄마의 '이름'으로 불리는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은 존중 받아 마땅한 권리라고 가르쳐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