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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연대는 안녕할까? 노동과 시민사회의 더 깊고 넓은 연대의 조건을 만들려는 노동·시민사회연대포럼, 솔라시(Solidarity of Labor and Civic society) 조직위원회는 노동,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연대 경험과 사회적 의미를 다루는 글을 몇 차례에 나눠 싣는다. [기자말]
현재 일하고 있는 단체에서는 외부용으로 직책을 사용하고 있다. 직책명을 정해야 할 때, 위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난감하기도 하지만 필요에 의해 사용하는 것이란 말에 애써서 머리를 쥐어짜 내곤 했다. 주어지는 게 아닌, 스스로 만드는 직책이란 점에서 자율성이 나름 보장된다고 생각하며 3년 차가 되던 해, '연대사업국장'이라는 직책을 스스로 지어주었다.

직책에 '연대'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뿌듯했다. 연대를 잘 알고 좋아한다는 감각에 휩싸이기도 하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마음은 부풀어 갔다. '무엇이든 어떻게든 연대해 버리겠다!'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러다가 현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자, 순식간에 연대할 일들이 넘쳐나며 되려 직책에 짓눌렸다. 모든 사안에 연대해야 한다는 감각이 휘몰아쳤고 두렵고 버겁기 시작했다. 두려움과 연대 속에서 헤매던 발걸음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말'로 연대하던 연대사업
 
 2023년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38회 한국여성대회 행진 사회를 진행하는 레나
2023년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38회 한국여성대회 행진 사회를 진행하는 레나 ⓒ 한국여성노동자회
 
연대체 활동을 본격적으로 해나가며, '연대사업'에 점점 익숙해지고, 어떻게 일하면 될지 배워나갔다. 그렇게 일하며 연대가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활동을 해나갈수록 헤매기 시작했다. 일하는 방법은 익혀갔지만 '연대하는 마음'에 대한 감각은 점점 희미해졌다. 다른 환경, 문화의 단체들과 공동의 일을 해나갈 때, 사안에 감응하고 공감하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나갈지 고민하기보단 '왜 내 의견이 반영되지 않을까?', '왜 답답한 마음이 커지는 걸까?', 하는 마음이 불쑥 올라오곤 했다.
       
연대사업국장이라는 직함은 일상 업무를 소홀히 하는 알리바이가 되어 주기도 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겉으로 보여지는 일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고, 나에게 연대는 점차 '발언'이 되었다. 한마디로 연대는 '말로 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발언하러 이곳저곳 돌아다닐 때마다 '1일 1연대'를 실천한 느낌이었다. 이 감각을 더 잘 느끼고자 더 좋은 발언문을 쓰기 위해 애쓰고, 사람들에게 더 잘 전달하기 위해 발음 연습을 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시도해 봤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연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마음은 수많은 일정 속에 점차 희미해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동료와 함께 참여한 집회에서 동료가 자기 대신 발언을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당시 동료가 발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음에도 결국 못하겠다고 답했다. 왜 그랬을까. 당시 나는 동료가 쓴 발언문을 내가 읽으면 '동료의 업적'을 빼앗는다고 생각했다.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상황이고, 내가 대신 발언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되었음에도 동료의 수고스러움을 '빼앗을까 봐' 걱정했다. 동시에 내 수고스러움을 '빼앗길 수 있다'는 걱정도 함께 있었다.

내가 하는 일, 활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지금 하는 일은 이전에 기업에서 일하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상사가 지시하고, 시키는 대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 함께 일을 기획하고, 실무를 나누고, 각자의 상태와 여건을 살피고 물으며 역할을 조율하며 수행하고 있다. 평등하게 일하기가 어려운 세상에서 평등하게 일할 수 있다는 감각을 쌓는 연습이자, 서로를 동료로 인식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서로를 동료로 인식하는 과정을 소홀히 한다면, 일상의 관계 맺기에서 연대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연대를 실천하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깨달았다.

말이 아닌 마음으로 연대하기

연대라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 내가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을 다시 톺아보았다. 그러자 구체적인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함께 밥을 같이 먹고 일상의 많은 시간을 공유하며 성평등노동을 향해 달려가는 동료들, 연대체 활동을 통해 함께 의제를 다루고 활동을 모색하는 활동가들, 삶을 공유하고 힘들 때 서로에게 곁을 내주며 돌봄 받고 돌봄을 나누는 친구들, 일터와 삶터에서 어떻게 성평등을 실현할지 고민하는 소모임 멤버들 등 일상적으로 만나는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구체적인 연대의 경험을 맺게 해준 건 한국여성노동자회에 곁을 내주고 함께하고 있는 소모임 페미워커클럽 멤버들이다. 페미워커클럽 멤버들과는 매년 다양한 주제로 모임을 꾸려가는데, 올해는 자신의 노동 이력을 살펴보고 서로를 인터뷰하는 기사를 작성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자신이 일하고 살아가며 얼마나 많이 애써왔는지를 살피고, 서로 위로하고 응원하며 서로의 지지대가 되어주고 있다. 멤버들은 서로를 힐난하거나 재단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듣고 또 내 이야기로 누군가가 상처받지 않길 바라며 자기 경험을 하나둘 풀어놓는다.

꾸준히 만나고 시간을 쌓으며 곁을 내어준 페미워커클럽 멤버들은 우리가 하는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만큼이나 활동가들의 소진과 애씀을 걱정해 준다. 활동가들도 자신의 생업을 하며 활동을 병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가득하다.
 
 2023 페미워커클럽 노동기록팀 멤버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2023 페미워커클럽 노동기록팀 멤버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이런 마음으로 모인 페미워커클럽 멤버들과 소모임을 할 때마다 경계하는 마음을 허물어 보고, 서로를 기꺼이 환대하고, 자신이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을 내어놓으며, 함께 모여있는 순간에 진심으로 연결되고자 노력한다. 이런 시간이 쌓이다 보면 모임에 함께하는 멤버 간에 신뢰가 형성되고, 모임을 진행하는 공간에 대한 두터운 믿음이 쌓여간다.

소모임이 잘 운영되려면 기획만큼이나 이 공간에서 어떤 평등의 감각을 공유하고자 하는지를 잘 전달하는 것이 핵심적이다. 성평등노동을 향해 활동하는 단체라고 하여 우리가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보다는 우리가 공유하는 '성평등노동'이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나누고, 평등의 감각을 함께 새겨나가려는 의지와 실천을 만들고자 한다. 그래야 연결되고자 하는 이들이 마음을 내어놓을 수 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 곳에서나 연대가 피어오르지 않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연대 할 수 있는 공간을 잘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곁이 될 수 있는 존재

나조차 연대를 마음이 아닌 사업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차근차근 살펴본다. 일터와 삶터에서 맺고 있는 구체적인 관계들, 그 안에서 내가, 그리고 내가 속한 조직이 어떻게 연결되고 확장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고민은 함께 나누고, 덧대어져 연결되고 확장되어 간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보다,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기보다 단단한 연결들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을까? 두려움은 혼자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할 때 나타난다. 흔들리더라도 다른 이들과 함께 흔들린다면 덜 외롭고 덜 두려워할 수 있을 것이다.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애쓰며, 매일보다 더 연대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어떤 연대를, 어떻게 얼마나 잘하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연대하고자 하는지를 되새기고자 한다. 서로가 내어준 곁을 믿고 의지하며, 평등의 감각을 실천하고 실행에 옮겨 몸에 감각을 새기고, 서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찬찬히 돌봐주는 마음. 그 마음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우리는 언제나 곁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다.

* 노헬레나 기자는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로, 일터와 삶터의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노동과 시민사회의 정례적 연대 문화를 만들기 위한 솔라시 포럼이 9월 21일(목)부터 23일(토)까지 충남 한국문화연수원에서 개최됩니다. 솔라시 포럼 보기 www.bit.ly/솔라시


#솔라시#한국여성노동자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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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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