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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외견사 안의 아이들을 살피는 봉사자들
야외견사 안의 아이들을 살피는 봉사자들 ⓒ 허지혜

'끼이이이익…'

녹슨 철문을 힘겹게 열자 보이는 건 온통 어둠뿐이었다. 암컷 개의 생리혈과 배설물이 한데 뒤섞인 새카만 오물, 옆 칸에 있던 개의 피 냄새가 진동하는 올가미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검은 눈동자. 맨땅을 밟을 기회조차 없는 오랜 뜬 장 생활 탓에 갈라진 발바닥과 온몸을 뒤덮은 검붉은 염증, 그리고 상처. 불법 개 농장의 민낯을 두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인천 부평구 계양산에 자리한 '아크(ARK) 보호소'의 개들은 이렇게 발견됐다. 2020년 4월, 계양산 저 너머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를 따라간 시민 유아무개씨는 계양산 안에서 무려 30년 이상 불법으로 운영된 개 농장을 발견했다. 그는 개인 소셜미디어(SNS)에 이 사건을 알렸다. 동물권 단체 '케어(CARE)' 대표이자 현 아크 대표인 김영환씨와 분노한 시민들은 농장의 개들을 살리는 시민모임을 결성했다.

구조 작전은 쉽지 않았다. 당시 계양구청은 이 불법 개 농장에 철거명령을 내렸다. 농장 운영자 이아무개씨 부부가 도살장으로 급히 개들을 수급하던 중, '케어'는 농장주에게 농장 소유권을 받아냈다. 이후 연대한 시민들과 케어는 전력을 다해 더는 개 농장이 아닌 '보호소'의 구색을 갖추려 노력했다. 마침내 '계양산 시민 동물보호소'가 설립됐고 2022년 2월 '아크 보호소'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탈바꿈했다.

아크 보호소엔 현재 137마리의 개가 있고, 2명의 직원이 보살피고 있다. 주로 해외 입양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해외 이동 봉사자를 구한다. 아이들의 이름도 모두 영어다. 소위 '잡종'이라는 편견 탓에 한국 입양이 어렵기 때문.

동물과 관련한 뉴스를 전하는 필자들의 개인 웹진, '애니멀리즘'은 아크의 동물권 신장을 위한 물결에 동참하기 위해 9월 16일, 단체 봉사에 나섰다. '유기견 보호소 봉사 체험기'의 첫 장을 장식할 수기를 지금부터 만나보자.
 
 보호소 초입에 걸려있는 '아크'와 '케어' 마크가 적힌 현수막
보호소 초입에 걸려있는 '아크'와 '케어' 마크가 적힌 현수막 ⓒ 허지혜
   
이른 주말 아침, 애니멀리즘은 계양역에 모였다. 방진복과 물을 넣은 가방, 편한 복장까지. 철저히 준비했다. 역 앞 정류장에서 583번 버스를 탔다. '목상돌솔밭 이주단지입구'에 내려 아크 보호소로 15분 정도 걸어 올라갔다. 공기 맑은 계양산, 나무가 울창하다. 전날 비가 온 탓에 땅은 젖어있다. 차마 개 농장이 있었을 거라곤 상상할 수 없는 청명한 숲길. 저 멀리 '아크(ARK)'와 '케어(CARE)' 마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는 곳이 입구다.

아크에는 두 곳의 견사가 있다. 벽돌집과 비닐하우스. 방진복으로 갈아입고 보호소에 있는 장화를 골라 신었다. 벽돌집에 들어서자 맹렬하게 짖는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개들은 좁은 철장 안에서 빙글빙글 돌며 짖었다. 반기는 건지, 경계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사람이 반갑기도, 두렵기도 한 이들 
 
 캠핑을 기다리는 중
캠핑을 기다리는 중 ⓒ 허지혜
 
큼직한 몸집과 누런 피부, 재빠른 몸놀림, 흔들리는 꼬리. 입구엔 견사 배치도를 담은 보드판이 있다. 개들의 이름이 적힌 자석 판은 색깔이 다양하다. 개들의 특징은 색깔로 나누어져 있다. 사람과 개 모두와 잘 어울리면 파란색, 사람을 잘 따르면 초록색, 소심하면 노란색이다. 사람을 경계하면 빨간색, 사람을 문 경험이 있으면 검은색이다.

인간이 옆 칸 개를 끌고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일이 반복됐던 과거. '인간에게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다가갔다. 반응은 각기 달랐다. 한 마리는 꼬리를 흔들며 쓰다듬어 달라는 듯 몸을 펜스로 붙였다. 다른 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의기소침한 눈으로 바라봤다. 또 다른 개는 으르렁거리며 경계를 풀지 않았다. 안타까웠다.  

같은 날 방문한 유기견 봉사동아리 '너에개로' 회장 정연철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동물은 사람에 의해 고통받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서 "이곳의 개들은 다행히 구조됐지만, 일손이 아직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어서 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입문자도 쉽게 인스타나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언제든 봉사를 신청할 수 있다고 전했다. 오픈 단체 대화방엔 이동하기 어려운 분들에 대한 픽업 지원도 있다.
 
 유기견 봉사동아리 '너애개로' 회장 인터뷰
유기견 봉사동아리 '너애개로' 회장 인터뷰 ⓒ 허지혜
 
오전 10시가 되자 너에개로 봉사 단체 참여자 20명과 에디터들을 포함한 개인 봉사자 8명이 모두 모였다. 두 개의 팀으로 나눠 다른 일을 배분받았다. 봉사는 ▲견사 청소나 밥그릇 설거지 ▲사료 배식과 물 수급 ▲산책 보통 3단계로 이어진다. 이날은 캠핑을 가는 개들이 있어 개인 봉사자 팀은 아이들을 이동시킬 케이지를 만들었다.

케이지의 철문을 열자 개가 꼬리를 말며 움츠렸다. 그림자가 진 뒷공간으로 숨은 채 몸이 굳어 꼼짝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몸을 숙여 눈을 맞추고 다정히 이름을 불렀다. 끝내 발을 떼지 않는 개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은 직접 안고 케이지 안으로 밀어 넣어야 했다. 발을 질질 끌다가도 결국 케이지 안으로 들어갔다. 체념이 익숙한 것일까. 
   
너에개로 봉사자들은 견사 물청소를 시작했다. 그들이 바닥을 쓸고 새로운 신문지를 깔 동안 에디터를 포함한 개인 봉사자들은 야외 견사의 침수를 예방할 모래주머니를 만들었다. 햇볕 뜨거운 오후,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나의 모래포대를 채우기 위해 수십 번의 삽질을 했다. 여럿이서 힘을 합치니 금세 모래주머니가 하나둘 쌓였다.

건너편에서 너에개로 봉사자들이 사료를 배식하고 물을 채우는 동안 잠시 휴식을 취했다. 산책 시간이 찾아왔다. 오늘 산책의 주인공은 '캘리'. 견사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설렘을 표현하며 앞장섰다. 하네스(가슴줄)보다 차가운 쇠사슬이 더 익숙했을 캘리. 등산객이 놀라지 않도록 산책로 표시가 적힌 표지판을 따라갔다. 캘리는 꼬리를 높이 흔들며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도 멈춰서 한참을 킁킁댔다.

철거명령, 이 터전을 지킬 수 있을까 
 
 산책길에 만나는 표지판
산책길에 만나는 표지판 ⓒ 허지혜
 
 '캘리'와 산책중인 봉사자
'캘리'와 산책중인 봉사자 ⓒ 허지혜

산책이 끝났다. 봉사자들은 아쉬운 얼굴로 개를 견사로 돌려보냈다.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마지막까지 발걸음을 떼지 못하던 봉사자 오정화씨다. 그는 반려동물을 키우며 보호소 아이들의 사정을 알게 돼 봉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동물을 키우는 일이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알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주고 싶다는 정화씨. 아직은 초보라 수도권 위주로 하고 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하지만 이들의 따뜻한 손길이 내년에도 아이들에게 닿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새로 설치한 개 훈련장이 문제였다. <한겨레>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 1월 16일 계양구 측은 아크보호소가 설치한 훈련장을 불법 공작물로 규정하며, 시정(철거)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계양산의 개발제한구역에 허가 없이 펜스를 설치한 게 관련법 위반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아크 보호소 측은 훈련장이 아이들의 입양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곳이라, 계양구가 전향적인 판단을 해주길 바라는 입장이다. 

사실, 아크 보호소의 철거 여부를 논하는 분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도 하다. 보호소가 문을 연 지 한 달 된 시점이었던 지난 2020년 12월, 계양구는 아크 보호소에 대해 이미 철거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아크 보호소는 개발제한구역에 설치된 불법 시설물이며, 유기견 구조보다는 개 사육장으로 판단되는 데다, 무단으로 토지 형질을 바꿨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아크 보호소 측은 계양구를 상대로 시정명령 취소 등의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긴 싸움 끝에 지난해 10월, 재판부는 이러한 철거명령이 과도하며 동물보호법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보호소 철거는 오히려 개를 방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울러 인천 법원은 계양구 측에 이들이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고자 하는 시민 모임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판단을 받아낸 이후, 아크 보호소는 개 훈련장을 만들었는데 이를 두고 다시 계양구가 다시 제동을 건 셈이다. 

"사람을 무서워하던 개들이 더 만져달라며 다가오고, 보신탕집이 아닌 국내외로 입양 가는 모습을 보면 보람차다." 보호소 담당자 박아무개씨는 강아지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이 일을 시작했다. 많은 보호소 중 아크를 선택한 이유는 "직접 부딪혀 보고 싶어서"다. 유기견이 아닌 식용견이라는 이유로 온전한 보호소로 인정받지 못하는 아크. 이곳은 오롯이 담당자와 시민의 정(情)으로 유지된다.

하지만 계양구의 입장은 여전히 완강하다. 보호소를 옮기려 했지만 타 지자체에 보낸 보호소 이전허가서는 모두 반려됐다. 제대로 설 수조차 없던 뜬 장에서 누울 수 있는 초록 펜스로, 사람을 보면 가랑이 사이로 말렸던 꼬리는 이제 가을의 갈대처럼 양옆으로 흔들린다. 가족이, 친구가 눈앞에서 죽어가는 걸 보며 무기력하게 제 차례를 기다리던 개들. 더 이상 식용견이 아닌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나와 내 친구를 지켜주세요."
 
 오늘의 산책 주인공 '캘리' 근접샷
오늘의 산책 주인공 '캘리' 근접샷 ⓒ 허지혜

덧붙이는 글 | 개인 웹진 '애니멀리즘' 페이지에 기재했습니다.


#유기견 보호소#아크 보호소#식용견#도사견#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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