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편집자말] |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이 분명한 아이였습니다. 그 중 가장 싫어하는 과목은 바로 미술이었어요. 저는 제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성인이 되고 나서는 박물관은 가도 미술관은 잘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 동료의 추천으로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제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요. 그림도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삶과 생각을 표현하는 하나의 멋진 도구라는 걸 깨닫게 되었거든요. 그때부터 미술에 대한 제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감상하는 것과 그리는 것은 여전히 간극이 컸습니다. 감상은 좋아졌지만 제 손으로 무엇을 그린다는 것은 여전히 부담됐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 도서관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오일 파스텔' 강좌 개설 안내문을 보았습니다.
이상하게도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오일 파스텔이라는 채색도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고민만 했습니다. 이 수업을 들을까 말까를 50번도 더 생각했던 것 같아요. '괜히 재료비만 낭비하는 건 아닐까?', '그림 그리러 갔다가 여전히 부족한 그림솜씨에 실망해서 스트레스만 받고 오면 어쩌지?'
내적 갈등만 한없이 이어가던 중, 저는 글을 쓰고 나서부터 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처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지는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마음이 피어났습니다.
아이들에게 종종 새로운 것에 시도해 볼 용기를 심어주곤 하는 엄마입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만 용기를 내어 도전하라고 말할 게 아니라 그 삶을 제가 먼저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하니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하면 되지, 방향을 바꾸어서 다른 것에 다시 도전하면 되지, 아직도 늦지 않았어.' 세 아이에게 숱하게 해주었던 말이 제 귓가에 맴도는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오일파스텔 수업을 신청했고 재료비를 선 입금해 가면서까지 수업에 대한 각오를 다졌습니다.
드디어 첫 수업 날, 설렘과 걱정이 반반인 채로 도서관에 갔습니다. 생경하게 느껴지는 오일파스텔(크레용과 파스텔의 중간 정도 질감을 지닌 유성의 미술도구)을 흰 종이에 그어보니 무른 크레용과 비슷했습니다. 오일파스텔은 긋는 것도 가능하고 문지르는 것도 가능한 채색도구였습니다.
신기한 건 이날, 오일파스텔로 광안대교를 표현하고 나서 완전히 그림에 반하고 말았다는 점입니다. 평생을 못난 손이라고만 믿고 있던 제가 연필로 스케치를 하고 오일파스텔로 윤슬을 표현한 걸 다시 보고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처음이라 서툴긴 해도 어릴 때 제가 그림을 그리고 매번 실망했던 그 느낌이 아니어서 마냥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한편 요즘 제가 심취한 또 하나의 취미가 있습니다. 바로 달리기입니다. 1~2년 전부터 달리기를 몇 번 시도했었습니다. '런데이'라는 무료 앱에서는 30분 달리기를 8주에 걸쳐 차근차근 코치해줍니다.
(제가 네이밍한) 런 선생님께서 자상한 목소리로 달리기 요령, 자세, 복장부터 부상을 피하는 방법까지 알려줘요. 하지만 첫 시도에서는 3일을 달리고 말았고 두 번째로 시도했을 때에는 하루를 달리고 포기했어요. 힘들고 재미가 없어서 지속이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세 아이 육아가 유난히 버겁고 글쓰기도 잘 안 되어 무언가 삶에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다고 느낀 날, 또 다시 몸을 움직이고 싶어졌습니다. 지역구에서 무료로 수업료를 지원해주는 탁구교실을 가보았지만 낯선 사람과 치는 게 불편해서 지속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개인 PT를 다녀볼까 싶어 헬스장의 문을 두드렸지만 막대한 비용의 문턱에서 좌절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달리기를 도전하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1일차부터 차근차근 시작했어요. 신기하게도 지금 22일차 달리기까지 무난히 잘 해내고 있답니다.
세 번째 도전이어서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면 저는 달리기의 기쁨과 성취감을 결코 느끼지 못한 채 살고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운동이 그 중에서도 달리기가 다시 간절해지자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달릴 때와 다른 점은 바로 이 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러닝에 필요한 아이템을 조금씩 장만하는 셀프 보상체계를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달리기를 위한 복장을 갖추면서부터는 달릴 때의 즐거움이 배가 되었습니다.
'도전'과 '용기'라는 건 자라나는 아이들만 시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노력은 그 자체로 가치 있다는 것을 엄마인 제 삶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30대 후반인 제게도 여전히 삶에서 도전할 것들이 넘친다는 사실이 제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장치가 되어주기도 했고요. 요즘은 이런 저의 변화를 아이들에게 쫑알쫑알 이야기 하는 게 낙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그림 정말 못 그리는 줄 알고 살았는데 오늘 이렇게 예쁜 해바라기를 오일파스텔로 그리고 왔어. 엄마 진짜 잘했지?"
"엄마가 오늘은 10분 달리기, 15분 달리기를 하고 왔어. 이제 곧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될 거야. 딸들도 조만간 달리기 연습 같이해서 우리 숫자 등에 붙이고 달리는 마라톤 대회에도 같이 나가보자!"
이렇게 말했더니 세 아이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해주더라고요.
"엄마 해바라기 진짜 잘 그렸어요. 나도 오일 파스텔 배워보고 싶어요."
"달리기 잘하는 엄마 최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저를 무한히 응원해줍니다. 도전하는 삶은 멋지다는 삶의 교훈을 주고 받는 저와 세 아이의 마음은 추운 바람이 부는 가을 날씨와는 반대로 따스함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 실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