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역에서 가뭄과 홍수를 동시에 걱정하며 살아가는 것이 기후위기시대 우리의 현주소가 되었습니다. 기후변화로 전례 없던 위험기상현상이 급증하고, 이로 인해 기후변화가 우리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예보의 난이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고, 사회 각 분야에서 기상기후서비스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기상청의 책임감은 더욱 커져가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16일, 국회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가 있었다. 이건 유희동 기상청장의 당시 발언 중 일부다.
한국 기후의 최전선에서 기후를 살펴보는 기상청장이 현 기후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할 정도로 기후문제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이다. 물론 기상청장이 공적인 자리에서 당연히 해야하는 말로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이보다 더 현재의 기후상황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당장 이번 여름만해도 그렇다. 올해 한반도를 강타한 집중호우는 모두를 힘들게했다. 나는 내가 사는 지역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번 집중호우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한다.
나는 경상북도 영주시에 살고있다. 학교는 현재 다른 지역에서 다니고 있지만 15년넘게 영주에 살아온만큼 영주시 지역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다. 내가 살고있는 영주쪽을 포함한 경상북도 일대는 남한에서 나름의 소우지(비가 적게 오는 지역)로 분류된다.
그 이유에 대해서 짧게 설명하자면 경상북도 일대는 주변이 산지로 둘러쌓여있는 분지지형이며 이 산이 비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비가 생기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 중 하나는 바람, 공기 덩어리 등이 산을 만나면 산을 타고 상승하게되고 상승기류가 생기며 기온이 떨어지고 구름이 생긴다. 그렇게 산에서 바람을 맞는 사면에 구름이 생기면 비가 오고 이를 지형성 강우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산 안쪽에 위치한 경상북도 내륙지방 일대는 상대적으로 비가 적게 내린다.
이를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이해해보자. 통계청 발표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경상북도와 역시 분지지형인 대구광역시는 전국 평균 강수량에 매년 미치지 못하였다. 아래의 통계는 지역별로 강수량을 더한 것이 아니라 지역별로 강수량 평균을 구한 것이다.
경북, 매년 전국 평균 강수량 못 미쳤지만... 올해는 달랐다
15년을 살아온 내가 느끼기에도 경북 영주시에서는 여름 장마철에 비가 '자주' 오지만 비가 '많이' 오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이번 여름은 내가 느끼기에도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
7-8월 당시에는 한창 방학이었는데 워낙 비가 많이 와서 외출 자체를 못하는 일이 많았다. 외출을 하기 위해서는 쏟아지는 비를 감수했어야했고 택시를 타고 갔어야했는데 지나가는 택시는 커녕 앱이나 전화를 통해서도 택시를 잡을 수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우산을 쓰고 잠깐 편의점을 나가는 일에도 신발, 바지 등 옷이 흠뻑 젖기 일수였다.
그럼 이번 장마기간에는 경북 영주 지역에 비가 얼마나 왔길래 그러는걸까? 행정안전부가 7월 11일 발표한 7.9~11일 호우 대처상황 보고(11일 23시 기준)에 경북 영주 6월 24일~7월11일 23시까지의 누적 강수량은 605mm였다. 이렇게 말하면 쉽게 와닿지 않을 것이므로 지역별 상세 관측자료를 통해 이번 비의 양을 이해해보자.
영주시 풍기읍 성내리의 6.24일~7.11일 누적 강수량 지표를 확인해보았다. 올해 해당 지역에는 506.8mm의 누적강수량이 있었다. 그러나 작년(2022)에는 동일 기간 동일 지역에 119.9mm의 비가 내렸으며 2021년에는 동일한 조건에 280.3mm가 내린 것을 통해 올해 많은 비가 내렸음을 알 수 있다. 올해는 2022년에 비해 5배(506.8mm)의 비가 내린 것이다.
이때의 장마를 어느정도 체감할 수 있는 사진이 있다. 당시 친구로부터 근처 하천사진을 받은 것인데 이를 최근 사진과의 비교를 통해 당시 상황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위 사진은 비가 한창 왔을 때(7월초)의 상황으로, 거의 다리 끝까지 물이 차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10월22일) 직접 해당 장소에서 촬영한 것이다. 위의 사진과의 비교를 통해 차이를 느껴볼 수 있다.
유독 컸던 인명피해, 방심이 사고 키운 것 아닐까
이번 비가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경북 영주에 인명피해가 꽤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번 비로 산사태가 일어나며 주택이 매몰되는 일이 많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경북 영주 지역에 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 중에는 생후 14개월밖에 되지않은 어린아이가 있었기에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행정안전부가 7월27일 발표한 7.9~7.27일 호우 대처상황 보고(27일 06시 기준)에 따르면 잠정적으로 조사한 사망자는 47명, 실종자가 3명이라고 발표하였는데 사망자중 경상북도가 25명, 실종자 역시 경상북도가 2명으로 당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해당 자료를 보면 누적강수량지표에서는 전국적으로 비슷하게 많은 비가 내린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경상북도에서 유독 더 많은 인명피해가 나왔던 걸까.
평소에 지리적으로 비가 많이 오지않으니 비에 대한 두려움을 적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지역은 비가 많이 온적 없으니 이번에도 별 피해없이 지나가지 않을까?'하는 생각말이다. 이게 인명 피해의 직접적인 원인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평상시 비를 두려워하지 않고 방심하게 만드는 원인은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급변하는 기후상황으로 인해 어느 지역에서나 홍수나 가뭄을 걱정해야한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연재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가져야하며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두려움이라는 것이 사람들을 하여금 조심하게 하고 안전을 더 주의하게 해,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간혹 프로운동선수의 활약이 좋을때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지금이 가장 저렴한 선수"라고. 이 말에는 활약이 좋으니 몸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쩌면 기후도 '지금이 가장 안정적인 시기'가 아닐까?
변화하고 불안정한 기후를 다시 안정적으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변화하는 기후에 속수무책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후를 잘 알고 있어야 하며 평소에도 두려움을 가지고 준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변화하는 기후로 인한 피해는 이제 어디서나, 누구나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다가올 기후변화를 이제는 유의할 수 있길,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해당 지역 관련 행정안전부 호우 대처상황 보고(7.9~7.27일) 기상청 강수량 통계 등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