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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중인 광주 동구 불로동의 '정율성 생가터'. 가옥 앞에는 '음악가 정율성 선생 탄생지'라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중인 광주 동구 불로동의 '정율성 생가터'. 가옥 앞에는 '음악가 정율성 선생 탄생지'라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 박용준

광주광역시가 추진하는 정율성 역사공원(아래 정율성 공원) 조성 사업에 대한 국가보훈부 장관의 문제 제기는 일각에서 이념 공세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광주광역시를 비롯해 정율성 기념사업을 추진해 온 지역 언론 및 교육계 또한 그동안 정율성을 획일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점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전남일보> 2023년 7월 24일자, 「광주가 낳은 '중국의 별' 발자취를 돌아보다」 (https://jnilbo.com/71066841615) 외).

이들은 정율성의 행적을 '항일음악가'라는 맥락에서만 보도 및 서술했으며, 그에 부합하지 않는 행적들-북한군 및 중국인민지원군('중공군')으로 6·25 전쟁에 참가한 사실 등은 배제하여 왔다. 그 점에서 보면 정율성에 대한 국가보훈부 장관의 역사인식이 편협하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관점만 다를 뿐, 역사인식의 깊이와 폭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해당 인물의 공과를 모두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일부 역사적 기억에 관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역사적 기억 중, 의병운동ㆍ독립운동ㆍ민주화운동은 핵심적인 기억이자 절대적인 선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참가한 인물들은 그의 생애 전체가 완전한 인간으로 인식되어, 일방적인 추앙이 이뤄진다 한다.

이러한 경향은 기념사업으로 표현되곤 한다. 지역 사회에서 역사 관련 사업이란, '핵심 기억'이자 '절대선'에 해당하는 역사적 사건, 그리고 여기에 참가한 인물을 기리는 기념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적 인물을 기리는 기념사업회를 만들고, 해당 인물의 동상을 세우거나 공원을 조성하는 등을 하는 것이다. 정율성 공원 조성사업에서 정율성은 '항일음악가'로 규정되면서 완전한 인간으로 거듭났으며, 그의 완전성을 의심하게 할 만한 사실들은 '시대적 아픔'으로 가려진 채 기념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정율성 공원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광주 지역사회가 참고할만한 사례가 있다. 전북 고창군의 '미당시문학관'이다. 이곳은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시인 미당 서정주(1915~2000)를 기념한다. 서정주는 한국 시문학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점에서 보면 '고창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한편으로 그 재능으로 일본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작품을 다수 발표하는 등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오명을 얻게 되었다. 

미당시문학관은 서정주에 대한 상반되는 평가가 있음을 외면하지 않는다. 이 문학관에는 <뒤안길-미당의 그림자>라는 표제 아래 그가 쓴 친일 시들이 전시되어 있다. 안내문은 다음과 같은 글로 끝맺는다.
 
"그의 아름다운 시로써 삶 전체를 덮을 수 없는 것처럼, 그의 곡절 많은 삶으로써 시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다. 공정하고 균형잡힌 평가는 언제나 우리들 문화시민의 몫이다."  
 
역사적 인물의 삶의 굴곡을 직시하자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중인 광주 동구 불로동의 '정율성 생가터'. 일찍이 정율성 기념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광주, 전남 화순의 곳곳에서 '정율성 생가터'를 자처하곤 했는데, 광주 동구 불로동은 그 중 한 곳이었다.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중인 광주 동구 불로동의 '정율성 생가터'. 일찍이 정율성 기념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광주, 전남 화순의 곳곳에서 '정율성 생가터'를 자처하곤 했는데, 광주 동구 불로동은 그 중 한 곳이었다. ⓒ 박용준
 
정율성도 비슷하게 '광주의 자랑'이라는 평가와 함께 '북한ㆍ중국의 침략전쟁에 부역'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은, 정율성 공원이 어떠한 방향으로 조성되어야 할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율성 공원은 기존에 광주광역시 당국을 비롯한 지역 언론 및 교육계가 조명하여 왔던 그의 업적과 음악세계뿐만 아니라, 한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6·25전쟁 당시 북한군 및 중국인민지원군에서의 활동을 포함하는 내용까지 함께 담을 필요가 있다.

물론, 정율성의 '곡절 많은 삶'으로 인해 정율성에 대한 기념사업이 퇴색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율성 공원이 이렇게 조성된다면, 그동안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일방적인 평가에 그쳤던 기존 기념사업의 타성을 벗어난 '역사적'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인물의 삶의 굴곡을 직시함으로써, 선악이라는 이분법으로 역사적 인물을 바라보는 편협함을 극복하고, 역사적 평가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역사교육의 중요한 장이 될 것이다.

정율성 공원이 48억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아도, 또한 일방적인 시각을 지역민들에게 강요하지 않아도 되는, 오히려 '기념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정율성#국가보훈부#광주#홍범도#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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