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운동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논조의 기사가 오마이뉴스에 연달아 두 차례에 걸쳐 실렸다. 기사 제목은 도발적이다.
"학교 운동장 개방은 시대적 요청이다" (https://omn.kr/26jqq)
"왜 학교 운동장은 닫혀 있는 거야?" (https://omn.kr/26jp5)
기사에서 학교 운동장 개방의 강력한 근거로 제시한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학교가 지어졌다는 것이다. 국가의 시설물은 세금으로 안 지어진 것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국가의 모든 시설물이 시민들에게 개방되어야 하는 걸까?
학교의 시설물을 지역사회를 위해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단서 조항이 있다. 학교 시설물의 본래 목적인 학생 교육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도에서이다.
이 같은 사실은 기사가 인용하고 있는 초·중등교육법에 나와 있다.
"모든 국민은 학교 교육에 지장을 주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그 학교의 장의 결정에 따라 국립학교의 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고, 공립·사립 학교의 시설 등은 시·도의 교육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다"
기사에서는 '학교 교육에 지장을 주지 아니하는 범위'라는 단서 조항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학교는 어린 남녀 학생들이 생활을 하는 곳이다. 지역사회의 어른들 중에는 좋은 분들도 많지만, 모두가 좋은 분들이라고 자신할 수는 없다.
학교란 공간은 국가에 의해 신분이 확인된 교사들에 의해 교육이 이뤄지고 학생들의 안전이 철저하게 보장되어야 하는 곳이다. 이런 학교 운동장에 지역사회의 어른들이 마음껏 와서 운동하고 싶다고 하고 심지어 실내 시설물까지 사용하고 싶다고 하는 것은 단도직입적으로, '욕심이 지나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교육 선진국 어디에서 학교를 지역 주민에게 전면 개방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관리 인력 없이 개방? 무책임한 발상
운동장 관리와 사고의 문제를 피상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기사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기사를 보면 학교가 근린공원의 체육 시설처럼 이용되었을 때의 문제점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의 학교가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시설들이 과거에 비하여 많은 부분들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과거의 상태에 머무르는 분야가 있다. 바로 시설물 관리이다.
학교의 모든 청결과 관리는 여전히 교사와 학생의 손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남교사에게 부과되던 숙직은 없어졌지만, 대신에 전담 숙직 기사가 상주하고 있다. 그나마도 휴무일 보장을 위하여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숙직 기사가 부재한 경우도 많다. 이곳을 관리 인력 없이 개방하라는 주장은 시설물 관리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의 무책임한 발상이다.
지역 유지들의 압력으로 학교가 주말에 개방되고 나면 그 뒤치다꺼리는 고스란히 학생과 교사의 몫이다. 학교에는 운동장과 각종 시설물들을 청소해 줄 청소 인력이 없다. 청소도 교육이란 명목 아래, 과거 군사정권 방식대로 학교 시설 관리를 교사와 학생에게 떠맡길 요량이 아니라면 시설 전면 개방에 따른 관리 비용에 대한 고민이 같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시내에 있는 근린공원이나 근린공원 내에 있는 화장실 등의 관리가 그냥 공짜로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이 깨끗하게 유지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를 청결하게 유지하는 비용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단순하게 노후시설을 새롭게 고쳐주는 비용으로 일상의 비용을 퉁치려는 것은 이용은 내가 하고 부담은 너가 하라는 이기주의적 발상이다.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위해 남아서 학생 지도를 하다 보면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외부인들의 학교 출입이다. 인적이 드문 학교 시설에 외부인이 들어오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교문에 경비 인력을 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전국의 학교가 그런 인력을 고용하는 건 재정 사정상 언감생심일 것이다.
학교 운동장으로 이왕 논의의 물꼬가 트였으니 한 번 더 들어가 보자. 대한민국의 학교처럼 지역사회에 개방성이 높은 현 상태가 좋은 건지 살펴보자. 학교가 아무 때나 불쑥불쑥 찾아가도 좋은 것처럼 인식되는 현실을 냉철히 돌아보자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위험 비용을 많은 사람들이 과소평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오마이뉴스>는 학교 운동장 개방이 시대적 요청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지금의 시대적 요구는 그게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지난 8월 대전의 한 학교에서는 교사가 외부인에 피습된 사건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잊었겠지만 외부인에 의한 학생 폭행 사건도 발생한 적이 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허술한 학교 출입 시스템에 대하여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가 냄비처럼 잦아들고 하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운동장이든 체육관이든 학교 시설의 전면 개방이 어떤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지 이해하시겠는가?
그렇다고 학교 출입 시스템을 강화하자는 주장에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두에서 말한 세금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세금을 더 투입해서 인력을 확충하여 출입시스템을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인력으로 출입 통제를 하라는 것이다. 경비 인력을 주지 않고 학교 출입을 통제하라고 하면 도대체 그 통제는 누가 할 것인가? 교사가 수업을 하다 말고 해야 하는 것인가?
운동 시설 부족은 '교육 재정'으로 해결할 일 아니다
지역사회에 운동할 시설과 공간이 부족한 것은 나 역시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육 재정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고 해서 세금의 사용 목적도 잊어버려선 안 된다는 것이다. 교육 재정은 오롯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안전하게 교육을 하는 데 쓰여야 하는 돈이다.
다시 말해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가 마련해 줘야 할 시설이 미비한 것을 왜 애꿎게 애들 가르치는 데 전념하는 학교에 화살을 쏘아대냐는 것이다.
교육을 하고 교육 시설을 유지하는 것에는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일이다. 막대한 자본을 들여가면서 교육의 공간을 만들고 일정 수준 이상의 자격을 갖춘 교사를 채용하는 것은 그만큼 교육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백년지대계 정책이기 때문이다.
오직 교육적 판단만이 들어가야 할 학교 운동장 개방에 대하여 '시설개방운영위원회'를 두자는 제안은 어처구니가 없다. 학교의 교육 시설의 운용을 학교장 판단이 아닌 지역사회로 넘기자는 주장을 어떻게 당당하게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마을이나 지역사회 만능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마을과 지역사회는 지역 정치의 외풍이 부는 곳이다. 지역 정치가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학교는 지역 정치와 구별되어 독자적 영역으로 보존되어야 할 곳이다. 그래서 그토록 교육 선진국으로서 본받아야 한다고 하는 나라에서도 외부인들의 학교 출입에 많은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오직 교육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학생이 안전하게 교육받는 공간. 언제나 운동장은 학생이 와서 뛰어놀고 싶을 때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곳이 비어 있을 때가 많다고, 어른들이 와서 마음껏 운동하게 해달라는 것은 지하철의 노약자석이나 주차장의 장애인 자리가 비어있다고 다른 사람들도 언제든 이용하게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발상과 다름없다.
어른들이 운동할 공간이 필요하다면 열심히 정부에 건의하고 투표로 의사를 나타내 정책적으로 만들어 내길 바란다. 애들의 운동 공간을 빼앗으려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교육에 대한 시대적 요청은 변한 적이 없다. 학생이 안전하게 마음껏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배움의 장을 마련하는 것. 이것 이외에 나는 교육에 있어서 다른 시대적 요청을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