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도서관은 이름 그대로 규모가 작은 도서관을 가리킨다. 여타 규모가 큰 도서관에 비해 도서 자료 수가 많지 않아, 자신이 원하는 모든 책을 빌리기 쉽지 않고 이용자 역시 적은 편이다.
그러나 이는 외부 시선으로 봤을 때 보이는 작은도서관의 특징들이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작은도서관만의 역할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작은도서관은 '작지 않은 작은도서관'이라고 역설할 수 있는 이유다.
아이·부모에게 안식처인 사립작은도서관
"작은도서관은 마을의 사랑방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2007년 전남 신안군 증도면에서 열린 '증도 작은도서관 개관식'에 참석해 한 말이다. 당시 참여정부는 마을 주민의 생활 편익 도모, 지역문화 형성 등을 취지로 작은도서관 활성화 정책을 시행한 바 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어느 사립작은도서관을 지난 9일 방문했다. 그곳은 그곳만의 공익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공간이 넓지 않고 서적 수도 적은 편이었지만, 아동용을 비롯해 사회,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있는 소소한 곳이다.
취재를 위해 직접 방문한 날, 3명의 여성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작은도서관을 자주 방문하는 편이었으며, 유치원생을 자녀로 두고 있었다.
그들이 작은도서관을 자주 방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은도서관 주변에는 아이들이 방과후 또는 방학 기간에 다닐 법한 학원이 많았다. 즉, 그들에게 작은도서관은 아이들이 학원이 끝날 때까지 잠시 기다리다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사립작은도서관을 반 년 넘게 이용해왔다.
"작은도서관은 도서관 주변에 사는 마을 주민이나 저희처럼 아이가 있는 학부모들에겐 접근성이 좋은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특히나 요즘에는 노키즈존이 많으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많이 없거든요."
그들에게 작은도서관은 누구나 방문할 수 있으면서 부담 없이 다녀갈 수 있는 곳이었다. 다만 의문이 가는 지점이 있었다. 도서관은 다른 공공장소보다 더 조용히 해야 한다. 주의가 산만하거나 통제되지 않는 아이라면, 부모 입장에선 가기 꺼려지는 장소일 거란 짐작이 든다. 하지만 그들은 짐작과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도서관은 조용한 공간이니까 오히려 아이들이 눈치를 보더라고요. 작은도서관에 오면 아이들이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 같아요."
그들이 작은도서관을 방문하면서 느낀 건 심리적 안정감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공공장소에 갈 때는 자칫 발생할 수 있는 아이들의 부주의한 행동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늘 긴장할 수밖에 없다. 반면 작은도서관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굳이 일정을 정할 필요 없이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는, 동네 어딘가에 있는 '사랑방'인 셈이었다.
대화가 끝나갈 때쯤 아이들이 학원을 마치고 작은도서관에 왔다. 아이들은 부모와 독서를 하거나 학원 숙제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작은도서관 같은 공간이 더 많아지면 좋을 것 같아요. 다른 중앙도서관이 있긴 하지만, 그곳은 공부하는 어른들이 많고 개인열람실이 분리돼 있잖아요. 공부하는 분위기에 압도되는 느낌이 있어서 아이들과 가기엔 조금 부담스러운데, 작은도서관은 방문하기에 동선도 편하면서 아이들과 편한 분위기에서 같이 책도 볼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육아 품앗이가 이뤄지는 공간이자 마을 주민 네트워크의 구심점
사랑방 역할을 하는 사립작은도서관은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도 있었다. 지난 5일 처음 방문한 날, 초등학생 저학년부터 유아기의 아동으로 보이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여의도동에 있던 사립작은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아이들과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고, 두 번째 방문한 날인 11일에는 독서·문화생활에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 활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대림동에는 어린아이들이 문화센터처럼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 방문할 만한 곳이 없어요. 저는 작은도서관이 그런 부재를 채울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사랑방처럼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여러 학부모와 아이들이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다 보니 육아 품앗이 같은 문화가 형성되기도 하고요. 집 근처에 작은도서관 하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작은도서관만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의도동에 있는 사립작은도서관과 차이점이 있었다. 그곳은 주변에 있는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과 그들의 학부모들이 주로 이용했다면, 대림동의 사립작은도서관에는 아이와 학부모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도 많았다.
사립작은도서관은 아이와 학부모만을 위한 곳은 아니다. 주변 마을에 누가 거주하느냐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기도 한다. 또한 도서관장의 운영 방식에 의해서 정해지기도 한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있는 어느 사립작은도서관은 IT회사에서 오랜 기간 일했던 한 남성이 일을 그만두고 기존의 가정집을 도서관으로 새롭게 개관한 곳이다. 그는 도시의 삭막함, 정서적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해 작은도서관을 개관했다고 말했다. 이곳을 주로 이용하는 주민들 중 노인이 많은 이유였다.
"저는 작은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읽기에도 좋지만, 유대관계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곳을 이용하는 주민 대부분은 노인이에요. 이곳을 이용하시는 어떤 어르신께서 상속세를 신고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도서관에서 만들어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다른 어르신이 상속세를 신고할 수 있도록 도운 적이 있어요."
도서관장의 뜻처럼 이곳 사립작은도서관은 마을에서 주민들의 정서적 고립을 해소해주는 복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는 주민들이 도서관을 이용하며 가장 만족해하는 부분 중 하나이기도 했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오스틴캠퍼스 정보대학원의 데이비드 랭크스 교수는 "나쁜 도서관은 장서만 수집하고, 좋은 도서관은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고, 훌륭한 도서관은 커뮤니티를 형성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직접 취재를 위해 방문한 세 군데 사립작은도서관 모두 랭크스 교수의 관점에서 본다면 훌륭한 도서관에 속했다.
사립작은도서관, 실적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작은도서관을 평가할 때 도서자료 수·인력 현황·연간 대출권수·운영일수 등 수치화할 수 있는 데이터를 기준으로 한다. 실제로 정부가 연초마다 진행하는 작은도서관 운영실태조사에서 전년도 실적을 평가할 때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것들을 대부분 포함한다.
주민들이 이용하면서 느끼는 편의성, 주민 간 유대감 등 수치화할 수 없는 작은도서관만의 역할은 거의 포함되지 않는다. 2022년 공공도서관 평가 기준에 지역공동체 역할 강화가 주요 배점 사항으로 포함됐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는 작은도서관의 공익성을 띠는 이면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 예로 서울시는 이용자 수 감소를 이유로 2023년 1월 작은도서관 예산을 삭감하려 했지만, 주민들의 반발로 7월 초 추경을 통해 예산을 재편성한 바 있다.
작은도서관을 규모와 실적을 기준으로만 평가하기엔 보이지 않는 사회적 역할이 많다. '책과교육연구소'의 김은하 대표는 "한국사회의 인구구성이 변하고 있는 면에서 작은도서관이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령사회에 따른 교통약자가 늘어나고,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는 1인가구가 많아짐에 따라 작은도서관을 '사람 중심의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따는 것이다.
김 대표는 "작은도서관은 커뮤니티, 아웃리치 서비스(도서관의 서비스와 자원을 소외된 사람 또는 도서관 이용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일) 등 사회에 제공할 수 있는 그곳만의 혜택이 많다"며 "사람들이 작은도서관의 수혜자이자 공여자가 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했다.
김은하 대표는 현재 작은도서관을 사회가 저비용으로 실험 중인 곳으로 보고 있다. 작은도서관은 등록 절차가 어렵지 않지만 없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는 작은도서관만의 장점이 살아있는 곳이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작은도서관이 곳곳에 숨어있는 만큼, 사회가 작은도서관만의 장점을 살려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