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글을 쓰고 나면 글에 어울릴 만한 삽화도 손수 그려보고 있다. 글을 쓴 지는 제법 오래 되었으나 그림은 아직 아마추어라고 할 수 있다. 미천한 재능이지만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해보고 싶었다.
최근엔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에 대한 기사를 쓰고, 사진에는 내 그림을 얹어서 쉽고 재미있는 기사 만들기를 시도해 보았다. 장애에 대한 사회 인식을 개선하고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외출하기 조금이나마 편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관련 기사:
시각장애인 유도블록을 잘 지켜주세요 https://omn.kr/27bnc ).
그 뒤에 내가 쓴 기사가 정식 기사로 채택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채택되면 따로 알림이 온다). 마치 연애 편지를 받은 것처럼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원고료는 2000원. 여기에서 세금과 수수료를 떼어야 하니 나중에 내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이보다 더 적을 터였다.
하지만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경력이 단절되어 사회적으로 무용한 사람이 된 느낌이 오랫동안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러오고 있었다. 그 거대한 바윗덩이에 방금 작은 균열이 생긴 듯했다.
'어쩌면 말야, 이대로 계속 도전한다면 바위를 깨부술 수 있을지도 몰라.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는!'
인터넷 조회수를 확인해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기사를 읽고 있었다. 기사 안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좋아요'도 찍혀 있었다. 그날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남편과 아이 앞에서 수다를 늘어놓았다.
"어떤 분들이 읽고 '좋아요'를 눌러 주신 건지 너무 궁금해. 알면 한 분 한 분 찾아가서 고맙다고 인사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이야."
내가 말하자 남편이 조용히 국을 떠먹으며 빙그레 웃는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중에 한 명은 당신이었군요. 고마워요.'
그때였다. 갑자기 아이가 멸치볶음을 씹다 말고 툭 말했다.
"나도 엄마 글에 좋아요 눌렀는데?"
오잉? 나는 놀란 만화 주인공 같은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가 인터넷을 쓰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 글을 찾아 읽는 줄은 전혀 몰랐었다. 아이의 요즘 관심사인 게임이나 탱크에 대한 내용만 검색하는 줄 알았는데,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또다시 속으로 생각했다.
'네 관심사 중에 엄마도 있었던 거니? 정말 고마워.'
저녁 식사 후에 소화를 시킬 겸 동네 산책을 나가려니까 아이가 따라나섰다. 산책 코스를 아이가 정하게 하고 함께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비 온 뒤라서 거리가 물빛을 반사해 아롱아롱 반짝이고 있었다.
"엄마 손이 엄청 차가워."
아이가 내 손을 잡고 걸으며 말했다. 오랜 시간 앉아서 글을 쓰곤 하는 나는 그 탓에 혈액순환이 잘 안 되어선지 손발이 늘 차가웠다.
"아, 미안해. 엄마 손 때문에 네 손까지 시리겠다. 엄마 손 잡지 말고 주머니에 손 넣어."
"괜찮아. 난 하나도 안 추워."
아이가 작은 손으로 내 손을 더욱 꼭 쥐며 말했다. 아이 손이 참 따뜻했다.
"나는 엄마 글이 좋아."
걷다가 불쑥 아이가 말했다. 코끝이 찡했다. 아이가 그림을 그려 오거나 만들기 작품을 보여줄 때마다 내가 아이에게 해 주던 말이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 순간이었다.
"고마워...."
나는 수줍게 대답했다.
산책을 다녀와서 내 기사를 다시 보니 좋아요 숫자가 여덟 개로 늘어 있었다. 아이가 환한 표정으로 내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짝! 경쾌한 손뼉 소리를 내며 우린 하이파이브를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