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저출생 위기 대응의 한 방편으로, 초등학생 희망자 모두에게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돌봄을 제공하는 '늘봄학교'를 실시할 예정이다. 올해 1학기엔 2000개 교 이상에서 희망하는 1학년을 대상으로 하고, 2학기엔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서 희망하는 1학년을 대상으로 한다. 2025년엔 대상 학년이 1~2학년으로, 2026년엔 1~6학년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1, 2학년에 한정되고 맞벌이 등 요건에 맞지 않으면 이용이 어려웠던 기존 돌봄교실과 달리, 늘봄교실은 원하는 학생은 누구나 소득수준이나 맞벌이 등의 요건에 구애받지 않고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업무 분장이 마무리된 시점에 당초 계획보다 이르게 정부와 교육청 주도로 진행됨에 따라 교사와 관계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정부는 1학기에는 기간제 교사를 2교 당 1명 배치하고, 2학기부터는 전담인력을 고용하며, 내년부터 전담조직인 늘봄지원실을 설치하여 운영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지나치게 서두르는 감이 없지 않다.
주5회 아침 7~8시 등교... 만만치 않았다
나는 지난해 2학기, 약 4개월 간 아이를 늘봄학교 시범사업에 보내 본 학부모다. 어린 아이를 혼자 두고 먼저 출근하면서 늘 마음이 편치 않았던 내게 아이가 가져 온 '늘봄학교 시범사업 안내문'은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었다.
아침 8시부터 늘봄교실이 열리니 출근하며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어서 안심도 되고, 운영되는 교육프로그램에도 기대가 컸다. 하지만 새학기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재신청을 하지 않고 망설이고 있다. 늘봄학교가 내세우는 가치와 현실의 괴리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성인도 매일 아침 8시까지 출근하기는 만만치 않다. 그런데 이제 여덟, 아홉 살인 아이들이 매일 주 5회를 아침 7시나 8시까지 등교를 하는 일이 그저 쉽기만 할까.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잔병치레도 잦다. 게다가 코로나 이후, 마스크 의무사용이 해제되면서 독감과 각종 바이러스성 감기가 수시로 찾아든다.
아픈 아이를 일찍부터 학교에 보내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컨디션이 좋을 때도 이른 아침부터 아이를 깨워 늘봄교실 시간에 맞춰 보내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자라나며 성장 호르몬의 작용으로 아침잠이 느는 아이의 등교 준비와 출근준비를 동시에 하느라 지난 학기 내내 정신없는 아침을 보냈다.
이런 아침풍경은 우리만의 특수한 사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수시로 늘봄교실의 분위기를 파악해 보니, 신청만 하고 오지 않거나 지각하는 아이들도 꽤 된 모양이다. 그리고 다양한 학년이 섞여 있는데다 아이들이 들고나는 동안, 출석체크와 프로그램 진행 등을 담당했어야 할 교사들도 부담은 또 어떻고.
하지만 본격적으로 확대 시행하는 늘봄학교에서 눈에 띄는 변화나 보완책은 보이지 않았다. 시행 시기를 앞당긴 정부의 결정으로 당장 담당인력 문제가 야기할 늘봄학교의 어려움이 어렵지 않게 예상된다. 게다가 늘봄교실은 최대 저녁 8시까지 운영된다고 한다. 임시방편으로 시간 때우기 식 프로그램이 운영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돌봄을 학교에 맡기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출결과 아침 간식 및 저녁 식사 제공, 학급 관리 등을 위한 행정 업무를 함과 동시에, 각 시간대별로 수시로 찾아오는 부모의 퇴근시간에 맞춰 하교하는 아이들도 챙겨가며 정해진 늘봄학교 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할 담당교사의 극심한 노고 또한 불 보듯 뻔하다.
그리고 한창 어린 아이들을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학교에서 돌본다는 늘봄학교가 과연 아이들의 성장 및 발달과정을 충분히 고려하고 만들어진 제도인지, 학부모들의 절박함을 충분히 고심한 것인지 궁금하다. 한창 뛰놀고 부모와 충분히 교감하면서 학습에 대한 토대를 다져야 할 시기의 아이들에게 정부가 제시하는 늘봄학교는 정말 최선인 걸까.
처음부터 문제설정이 달랐어야 하는 건 아닐까? 지난해 KEDI(한국교육개발원)이 19세부터 75세 성인남녀 4천명을 대상으로 실시(7월 31일~8월 17일)한 '2023년 교육여론조사' 결과, 국민 3명 중 1명이 늘봄학교를 꼽았다고 나왔다. 통계만 보았을 때는 국민 대다수가 늘봄학교의 희망하는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실제 초등 연령대의 자녀를 둔 학부모를 대상으로 질문을 다르게 구성했더라면 과연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무려 13시간 동안 아이들을 학교에 위탁하는데 3명 당 1명이 찬성했을 것 같지 않다. 다른 대답이 다양하게 나왔을 것이고, 다른 해법도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학교 대신, 부모가 직접 아이를 돌볼 수 있다면
우리 회사에서는 최근 오랜 기간 동결된 급여를 인상하는 대신, 전력소모가 많은 동절기와 하절기에 6~8주가량 단축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가 생김으로서 급여는 수년 간 제자리라도 부모들에게 가장 힘든 방학 기간에 직접 아이를 챙길 수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늘봄교실 한 학기를 경험하고 동계단축근무를 하면서 전국의 영유아 및 초등학교 학부모들에게 희망자에 한 해 자녀 돌봄을 위한 단축근무제를 시행한다면 어떨까 상상했다. 학교 대신 부모가 돌봄권을 획득하는 것이다.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아이를 깨워, 입맛도 없을 텐데 억지로 아침을 떠먹이고, 부랴부랴 학교에 보내느라 부모도 아이도 서로 자존감이 떨어지는 아침을 반복하는 대신, 한 시간 늦춰진 출근 시간에 서로 품위를 유지하면서 아이도 챙기고 출근해서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다. 두 시간 일찍 퇴근해서 직접 아이를 돌보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쯤에서 '소는 누가 키우나?'라며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실제 근로자 입장에서 단축근무를 해 보니 실보다 득이 많다. 단축근무 기간 동안 오히려 근무 집중력이 향상되었다는 말을 수시로 듣는다. 늦게 출근하고 빨리 퇴근하기 때문에 할 일을 더 집중해서 처리하고, 불필요한 회의를 줄이고, 점심시간도 융통성 있게 사용해 업무에 할애하는 것이다. 소모적인 업무가 획기적으로 줄었다.
이와 관련해서 한 권의 책을 권하고 싶다. 현대 노동의 실질적 가치에 의문을 제기한 <가짜 노동>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이미, 19세기에 건축가 프랭크 로이 라이트,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등은 폭발하는 생산성에 따라 인간의 노동시간은 점차 줄어들고, 많은 사람들이 여가를 문화와 교양을 쌓는데 보내게 될 것이라 예측하며 미래 사회를 그렸다.
실제로 그후로도 눈부신 기술발전과 AI 등이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지만, 우리는 오히려 더 바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가짜노동>의 저자들은 이런 역설에 대해 게으름을 죄악시하고, 노동을 신성시하는 청교도주의적인 정신과 빨리 일하면 점점 더 많은 일이 주어지는 노동의 속성 때문에 하루 3시간으로 충분한 일을 8시간으로 늘려 함으로써, 보여주기 위한 일, 즉 가짜노동이 만연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물론 모든 산업 분야에 가짜노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기억해 보자.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꼭 출근해서 회의하고, 일하지 않아도, 생산성이 우려한 것만큼 떨어지지 않았고, 근무의 질은 향상되었던 경험을 실제로 집단 경험하지 않았던가.
70~80년대와 같이 인구가 폭발하고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발달하는 시대라면 모를까, 지식 산업이 세상을 주도하고 있고 각종 첨단기술로 있는 자리에서 어떤 시스템으로도 접속 가능한 지금이야말로, 많은 산업과 직업군에 이전과 다른 노동의 기준과 조건을 설정해야할 때이다.
저출산고령화 위기 극복 위한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
아이의 늘봄학교 시범사업 참여와 나의 단축근무 경험 그리고 코로나 시대에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노동환경의 변화를 인식하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요구하고 싶다. 정부가 아이들을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학교에서 돌보는 대신, 부모를 주당 69시간씩 회사에 묶어두는 대신 일찍 집으로 돌려보내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이다.
희망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학교가 장시간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하는 부모가 직접 돌봄을 할 수 있게 노동 시간의 유연화 제도를 확대 실시하고, 학교는 돌봄에 급급하기보다 교육기관의 성격에 맞게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며 초등학생들의 발달과 성장을 돕는데 힘써야 한다. 혹자는 '원하지 않으면 신청을 안 하면 그만이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큰 틀에서 정부 정책의 방향을 거스르는 일은 쉽지 않다고 본다. 또 방향이 정해지면, 다른 대안들이 고개를 내밀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말이다.
정부가 강조해 온 저출산고령화사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간단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은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육아와 교육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에 맞춰 노동의 가치관을 시대에 맞게 조정하여 단계별로 시행하는 것이 아닐까.
실제 현장에서 혼란을 고스란히 겪을 아이들, 학부모, 교사들의 요구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시간을 들여 함께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할 때, 매 정부마다 숙원사업으로 삼는 이 문제를 점진적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 실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