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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KBS를 통해 녹화 방송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특별 대담을 시청하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KBS를 통해 녹화 방송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특별 대담을 시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필자는 직업상 매일의 업무에서 공정경쟁규약,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및 유사한 관련 법률 등을 검토하고 회사의 직원들이 이를 잘 준수하는지 감시한다. 필자가 속한 업계는 대학병원 교수들을 상대할 일이 많은데, 이 때 회사의 직원들이 행여 커피 한 잔이라도 사전 승인 없이 교수에게 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렇다. 민간 기업에서는 '청탁' 또는 '뇌물'이라고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커피 한 잔'도 그렇게 관리하고 있다.

연휴가 끝나고 업무에 복귀를 하니 새삼 그 '커피 한 잔'을 관리하는 것이 참 허무해진다. 커피 한 잔에 담긴 마음의 참뜻을 헤아려 판단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위법여부를 판단해 버리는 나와 이 사회의 법이 얼마나 박절한지 생각하게 된다. 이런 복잡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검사 출신' 대통령이 집권한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이 아닌 '마음의 상태'를 보고 위법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신년 대담 때문이다.

공감 능력이 없는 리더를 신뢰할 수 있을까?

소통을 위해 용산으로 가겠다며 임기 초 한바탕 소란을 떨었던 대통령의 이사는 취임 후 반년도 채 안 되어 그 목적을 완전히 상실했다. 청와대를 구중궁궐, 밀실정치의 상징으로 여기며, 자신은 그곳에서 나와 국민 속으로 가까이 가겠다던 윤석열 대통령이었지만 현재 그의 태도는 청와대에서 생활하던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불통인 상태임은 모두가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역대급 불통 속에 한줄기 희망처럼 기대를 모았던 대통령의 신년 대담은 미니 다큐 형식이라는 생소한 형식과 홍보영상 같은 연출로 필자의 기대를 좌절 시켰다. 더욱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은 누군가에게 박절하기 어렵고… 아버지의 지인에게 박절하기 어려웠으며… 정치공작에 당한 것이기 때문에… 아쉽다"로 요약되는 대통령의 설명은 평생 검사로만 살아 여전히 사정기관의 DNA가 남아 있다고 자평하는 사람의 발언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위법성에 대한 인정 내지 사과는 고사하고, 도덕적 해이에 대한 유감 표명조차 없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시각은 그의 일반적 공감 능력을 의심케 한다. 매정하지 못한 부인에 대한 아쉬움, 정치 공작에 당한 부인의 억울함을 강조하며, 심지어 부부싸움은 전혀 하지 않았다며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은 마치 아시안컵에서 우리를 당황시켰던 클린스만의 웃음과 그 결이 매우 닮았다. 모두가 분노할 때 혼자 웃고, 모두가 사과를 요구할 때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하는 대통령과 클린스만의 태도에 필자는 소름마저 돋는다. 이토록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리더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기대했던 것은 단 하나, 공정과 상식이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KBS와 특별대담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KBS와 특별대담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우리가 소위 '김영란법'이라 부르는 청탁금지법은 일정한 대상자들을 상대로 하는 선물의 가액(3만원, 5만원, 10만원 등)을 정해두고 있다. 직무관련성이 있다면 아무것도 안 되고, 그런 것이 없다 해도 정해진 금액 이상은 무조건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의 물가를 고려하면 매우 낮은 금액이라서 결국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제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법을 지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법치주의" 국가에 살고 있고,
둘째, 그 목적과 의도를 이해하기 때문이며,
셋째, 진의(眞意)의 구별 같은 자의적인 판단을 최대한 배제하여 효율적인 집행을 하기 위해서다.

필자가 어릴 적 스승의 날은 너무나 당연하게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는 날이었지만, 지금의 우리 아이들은 사탕 1개도 드리지 못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법이니 고마운 마음은 카드나 편지를 쓰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이 선생님께 초콜릿을 선물하려고 한다면 그 선생님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받으면 위법이고 내치면 어린 아이에게 매정한 사람의 예를 보이게 된다. 법과 마음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이 난제를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까.

성역 없는 수사로 유명해진 검사 윤석열.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며 스타가 된 검사 윤석열. 우리는 그가 경제, 외교, 문화 등에 전문성이나 식견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적이 없다. 그런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가장 큰 이유는 내로남불의 정치에 진절머리가 났기에 "법치주의"와 "공정과 상식"을 내세운 윤석열의 이미지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답답할 정도로 남의 말 안 듣고 남의 눈치 안 본다는 그의 뚝심 같은 것에 대한 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신뢰는 이번 대담을 통해 완전히 바닥을 쳤다. 2년 전 국민이 기대했던 윤석열 대통령이라면 비록 엑스포도 실패했고, 경제는 난맥이고, 외교 참사는 다반사라 하더라도, 최소한 공정하고 상식적인 법치주의의 실현은 보여 주었어야 한다.

정치 공작과 몰카가 문제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고가의 선물을 수수했다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의혹 없는 수사를 통해 법치주의를 실현하면 되는 것이다. 박절하지 못한 부인의 내심은 검찰이나 법원에 가서 읍소해 볼 수 있는 것이지, 국민들을 상대로 당당하게 변명할 일은 아니다. 수사하고, 재판하다 보면 법적 처벌 대상은 아니라는 최종 판단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법적인 판단을 받을 기회 자체를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결정한다면 그것이 독재와 어떻게 다른가. 

결국 윤석열의 법치주의도 일각에서 이야기 하는 민주당의 내로남불과 다르지 않았다. 그의 법치에는 '성역'이 존재하고, '충성'이 가득하다.

여전히 '김건희 특검법'의 재의결 절차가 남아 있다. 이번 신년 대담이 재의결의 결과에 더욱 견고한 명분을 쌓아 준 것은 아닐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법치주의#김건희#윤석열#공정#내로남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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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분쟁을 전문으로 하는 미국 변호사입니다. 반려견 두 마리, 다정한 남편과 함께 매일 초심으로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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