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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월도 중순을 넘어서고 있다. 덤덤하게 흘러가는 시간과 달리 주위에선 희비가 엇갈린다. 수시 합격자 발표는 12월에 끝났으나 정시 추가합격자 발표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이라는 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어떤 이는 기쁨의 눈물을 어떤 이는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 애쓴 3년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듯한 느낌에 부모는 물론 학생도 좌절하고 몸과 마음에 큰 충격을 받는다.

나 역시 같은 경험을 했다. 딸아이는 수시를 중점으로 준비했기에 수능공부는 거의 못했다. 이제 와서 보니 이 역시 핑계지만 말이다. 열심히 내신과 비교과를 준비하면 대학이라는 곳에 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22년 불수능을 치른 후 얻은 건 수시 6 광탈(6개의 지원대학에 모두 불합격하는 것)이었다. 정시도 모두 떨어졌다. 객관적인 시간과 주관적인 인생이 자연스레 흐르는 것 같지만 어느 구간에선 막히기도 하고 소용돌이 치기도 함을 새삼 느꼈다. 

아무튼 아이는 재수를 시작했다. 처음에 난 허락하지 않았다. 수능이 끝나고 찾아간 정형외과에서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 아이가 척추측만증이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척추측만증은 허리가 비정상적으로 심하게 휘어진 상태를 말한다. 이는 척추가 휘어진 각도에 따라 나뉘는데 보통 12도 내외면 정상, 15도 정도까지는 자세를 교정하면 되고, 20도가 넘으면 약과 운동치료를 병행하며 25도 이상은 더 강한 약물 치료를 이 범위를 벗어나면 수술을 한단다. 

그 당시 딸은 21.5도였다. 꽤 심한 상태이긴 하나 의사 선생님은 일단 약 대신 운동으로 고쳐보자 하셨다. 대입을 위해 학업과 씨름한 결과 얻은 것이 척추측만증이라는 사실에 허탈하고 입시 결과도 아쉬웠지만 일 년 더 공부하면 애 잡겠다 싶어 재수를 반대했던 거였다. 

한 번 더 해 보겠다는 의지를 무시할 수 없어 재수를 허락했으나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허리통증과 감정기복이 날로 심해지고 집중력도 떨어졌다. 난 성적이고 뭐고 재수 완주를 목표로 건강 챙기기를 시작했다. 이름하여 '슬기로운 재수생활' 프로젝트! 
 
등펴기운동 등과 어깨를 펴기 위해 기구를 사용해 운동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등펴기운동등과 어깨를 펴기 위해 기구를 사용해 운동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 백현숙
 
첫째, 재수생의 체력 관리다.
허리는 아픈데 시간은 없다고 불안해 하는 아이를 위해 어차피 없는 시간 내가 만들기로 했다. 토일 학원에 양해를 구하고 스포츠센터에서 근력운동과 자세교정을 시작했다. 밤 10시 반에 집에 도착하면 동네를 산책하거나 스포츠센터에서 그냥 뛰었다. 폼롤러를 굴리며 둥근 등을 조금씩 폈고 플랭크자세로 배에 힘을 줬으며 러닝머신 위에서 끈기를 배우게 했다. 

마지막 모의고사까지 성적이 잘 나오진 않았으나 버텨냈던 건 운동하며 긴장감과 불안감을 컨트롤하는 힘을 길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수영이든 동네 뒷산 오르기든 다 좋으니 재수를 마음먹었다면 꼭 운동할 것을 권한다. 

여름이 지나면 교실에 파스 냄새가 진동하고 아이들이 하나둘씩 정형외과며 한의원에 가느라 외출증을 발급받는다. 운동은 시간을 버리는 것이 아닌 시간을 버는 것임을 9월이 되면 알게 된다. 

둘째, 멘탈 관리다.
3월엔 모의고사 성적이 잘 나와 재수하길 잘했다 싶었는데 4월엔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 아이의 성적과 내 감정은 현실 롤러코스터처럼 움직였으나, 성적에 대한 내 느낌을 내색하지 않으려 무진장 애썼다. 수능날까지.

대신 매일 낮 12시 30분에 아이에게 유머문자를 보냈다. 씁쓸하고 썰렁한 웃음이라도 찡그리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서였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네 인생 최고의 점수는 수능날 나올 거야! 불안해하지 말고 한 발씩 나아가자!"라고. 이건 나에게 말하는 주문이기도 했다. 피그말리온 효과를 믿는 나에게. 

재수학원에서 그저 예뻐해 주라 해서 강아지처럼 대해줬다. 짖거나 말거나. 실패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에 감정기복이 심해지니 위로와 희망 메시지에 생뚱맞은 문구를 추가하는 것도 방법인 것 같다.

우연히 동네 카센터에서 본 '특수광택'이란 말을 아이와 반복했다. 잔 스크레치를 제거하고 색상을 선명하게 해주는 특수광택처럼 불안감과 긴장이라는 잔걱정을 제거하고 마음을 다잡으라고.
   
셋째, 부모 마음 다스리기다.
아이의 체력과 멘탈 관리, 수시로 밀려드는 불안감 탓에 부모 역시 많이 지치고 피곤해진다. 부모도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이때 난  이승윤 가수의 노래에 심취했다. 자연주의 시 같은 가사를 들으며 열심히 따라 불렀고, 내가 하는 수업이 적은 날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힘듦이 해소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불안하고 긴장된 마음을 비워내고 그 안에 새로운 생각을 담는 데는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주위에 하프마라톤 대회에 나가는 사람도 봤고 장터를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봤다.

대화가 중요하지만 재수기간엔 하고 싶은 말을 잠시 접어 두는 인내가 필요한 것 같더라. 5월 어느 날 재수학원 담임선생님의 현실적인 조언 덕분에 난 인내라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달마다 이유 있는 좌절감이 몰려드니 그냥 사랑의 눈으로 지켜봐라.
학원비가 얼만데! 하지 마라.
술은 모의고사 끝나는 날에 마시게 해라. 
꼭 운동하게 해라.
공부는 수능 한 달 전이 제일 잘 된다. 
그러니 공부하라는 말은 하지 마라.


결국 가장 중요한 요점은! 수능 끝날 때까진 잠시 입을 다물고 계셔 주세요~였다. 재수가 벼슬은 아니지만 인생에서 처음 쓴맛을 본 친구들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이 아닌 것 같다. 사회생활 하다 보니 신경 쓸 것도 많고 공부가 인생의 전부도 아니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기회를 한 번 더 달라하니 옆에서 지켜보고 도와주는 것 또한 부모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가방에 숙취해소제를 넣고 다니며 결이 다른 바쁨을 맛보고 있는 딸에게 그리고 이제 재수를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그 시기를 조금 먼저 겪은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있잖아~ 이것만 끝나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지만 실제로 삶은 시작과 끝이 수없이 반복되는 게임인 것 같다. 유행을 타지 않는 게임, 때론 패자가 되고 때론 승자가 되는 게임, 내가 겪는 모든 과정이 아주 소중한 진실된 게임, 그런 게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스토리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재수생활#체력관리#멘탈관리#부모마음다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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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차 일본어강사입니다. 더불어 (요즘은) 소소한 일상을 색다른 시선으로 보며 글로 씁니다.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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