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이 2월 24일이면 만 2년이 된다. 우리는 이 전쟁의 진상에 대해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한국 언론의 보도는 좌우를 불문하고 우크라이나에 편향되어 있다.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잘못한 것이라면 그것은 공정한 보도일 것이다. 이 전쟁의 성격이 그렇게 단순할까?
최근 사망한 러시아의 반정부운동가(?) 나발니에 대한 추측기사도 마찬가지다. 대개 미국 언론의 추측성 기사를 베낀 건데, '푸틴의 최대정적'이란 표현까지 등장했다.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이해영 교수가 페이스북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나발니는 "러시아 네오나치 혹은 최소한 그 동조자였다"면서 "반이슬람, 반이민을 내세웠고 또 코카서스계 러시아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인종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에서 푸틴의 지지율이 85%를 기록한 가운데 정적이라고 하기에도 어폐가 있는 나발니를 두고 '최대 정적'이라고 추켜세우는 것은 희망사항의 반영일 것이다. 미국의 언론에 싱크로나이즈 되어 있는 한국의 언론은 한때 중국의 반체제인사에 대해서도 민주투사로 추켜세웠다.
대서양 해양세력 대 유라시아 대륙세력의 대결인가?
MZ 세대 작가로 대학원에서 서아시아 지역학을 전공하고 있는 임명묵의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는 어느 편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시선으로 러-우 전쟁의 진상에 접근하고 있다. 러시아가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는지, 미국과 유럽이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는 왜 패배하고 있는지, 이 전쟁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등에 대해 그 배경과 함께 소상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저자는 1990년대생 한국 청년의 의식을 다룬 <K를 생각한다>(2021)로 주목을 받은 작가이기도 하다.
저자는 '역사의 종언'으로 유명했던 후쿠야마를 소환했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후쿠야마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자유민주주의가 군주제나 파시즘, 공산주의를 무너뜨리고 대립의 역사를 평정했다고 주장했었다(이상훈 옮김, <역사의 종말>, 7쪽).
저자 임명묵은 후쿠야마의 자유민주주의 승리 선언에도 불구하고 헌팅턴이 말한 '문명의 충돌'이 빈발하는 와중에 터진 러-우 전쟁으로 역사가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역사의 종언'의 종언 선언이다.
저자가 정리해놓은 구도는, 러-우 전쟁을 기폭제로 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단극체제로 귀결된 미국 중심의 대서양 해양세력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재를 가하면 무너질 것으로 예단하고 얕잡아 보았던 러시아는 선전하고 있으며 중국이나 터키, 이란, 인도 등도 미국의 제재 요구를 무시하고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등 거래를 하고 있다.
반대로 미국의 요구에 따라, 또는 자발적으로 제재에 동참하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했던 서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값싼 천연가스 공급이 끊기는 등 경제적 타격을 입고 있다.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직후 러시아에서는 청년세대들을 중심으로 표트르 대제 이후 잠잠했던 유럽 지향 현상이 다시 나타났다. 이런 변화는 옐친의 집권으로 이어지고, 러시아는 경제적 궁핍으로 혼돈에 빠지게 된다.
옐친의 뒤를 이어 집권한 푸틴은 국영기업을 헐값에 사들여 부를 축적한 올리가르히들을 제압하고,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와 천연자원의 수출로 경제를 회복하게 된다. 군수생산을 독려하면서 군사력도 강화해나갔다. 그 힘으로 집권 3기에 접어든 푸틴은 신(新)유라시아주의의 꿈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다.
그 사이 우크라이나에서는 동서간의 갈등이 고조된 가운데 일어난 유로마이단 시위로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 정권이 전복되었다. 러시아는 2014년의 유로마이단 시위 이후 크림반도를 강제적으로 합병했고, 젤렌스키의 우크라이나 정부는 돈바스 지역을 군사적으로 자극했다. 그리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 전쟁이 단순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둘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동서의 대립,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 자유주의와 권위주의의 대립, 대서양 해양세력과 신유라시아 대륙세력 사이의 대립으로 확대되었다고 진단한다.
대한민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버락 오바마가 2016년 12월 러시아를 두고 했다는 말이다. "그들은 작고, 약한 나라입니다. 석유, 가스, 무기를 제외하고는 누군가 사고 싶은 물건을 만들지 못합니다."(244쪽) 그러나 러시아는 그 석유와 가스를 팔아 경제를 부흥시켰고, 서방에 뒤지지 않는 무기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있는 중이다.
저자에 따르면, 러시아와 중국은 2014년 돈바스 사태를 계기로 가스협정을 타결하고 파이프라인이 완공되어 작동에 들어갔고, 서로 "사고 싶은 물건"을 거래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터키는 서방과 거리를 두며 러시아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섰으며, 1980년대 동유럽 혁명 시기에 공산당 정권에 저항하던 청년 지도자였던 오르반 빅토르의 헝가리도 러시아에 우호적이라고 한다. 게다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이란과 인도를 유라시아세력에 가깝게 만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의존하던 독일의 경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느라 곤궁에 처하게 되는 한편으로 경제적 차원의 유라시아 구상에 수긍하는 국민들이 늘어갔다고 한다. 독일 국민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과도한 지원으로 경제가 어려워진 가운데 정부를 성토하는 시위를 하는 까닭일 것이다. 이렇게 러-우 전쟁을 기폭제로 해서 일극체제에 균열이 생기며 브릭스를 중심으로 중력이 강화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저자의 판단이다. "러시아와 그에 우호적인 일부 국가들이 미국의 지적, 지정학적 패권에 균열을 내고 세계 시장의 작동을 어렵게 만든다면, 그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볼 국가 중 하나가 바로 한국임은 명약관화하다."(301쪽) 무엇보다도 정부와 언론의 냉정하고 지혜로운 판단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