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삶에서 죽음이 멀어졌을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집에서 임종(臨終)하는 비율이 높았다. 이후 오히려 병원 사망자 수가 늘고 도시개발에 따라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늘어나면서 위생과 공간의 문제로 더는 집에서 장례를 치를 수 없게 되었다. 핵가족화와 경제적, 사회적 변화로 인해 임종의 자리가 가정에서 병원으로 옮겨지면서 죽음이 일상에서 격리된 채 일어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생사일여(生死一如)'라는 말이 있다. 삶과 죽음이 별개가 아님을 뜻한다. 죽음은 역설적이게도 곧 삶에 관한 이야기다. 잘 살아야만 잘 죽을 수 있기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실정이다. 죽음에 관한 금기시와 외면으로 한국인이 겪는 임종의 질은 의료 수준보다 현격히 낮은 편이라 한다.
삶은 영원불멸할 것 같지만 죽음의 순간은 누구나 맞닥뜨리게 된다. 다만 시기를 알 수 없을 뿐. 그렇기에 막상 죽음이 임박해서야 당황할 수밖에 없다. 여느 노랫말처럼 "하루만 오늘 더 하루만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게 줘"라며 삶을 정리할 여유조차 없게 된다.
<삶이 묻고 죽음이 답하다>를 쓴 저자 임영창은 한신대학교 호스피스 표준 교육을 수료한 후 '바람(HOPE) 호스피스지원센터'를 설립했다. 전남도립대학에서 인문학 겸임교수로, 화순 만나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센터 위치는 국립암 거점병원 중 하나인 화순전남대학교병원에서 차로 1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그는 말기 함 환자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죽음을 바라보는 나름의 시각을 갖게 되었다. 더욱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어릴 적부터 죽음에 대한 교육이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한 요소라고 했다. <삶이 묻고 죽음이 답하다>에서 나오는 일관된 주장이다.
추천사를 쓴 카피라이터이자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정철 초빙교수는 "우리는 공부를 한다. 영어 공부, 자연 공부…. '죽음 공부', 잘 살자고 하는 게 공부인데 죽음 공부라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공포를 뻥 걷어차 주었으면 하는 기대감으로 책을 폈고, 편안함으로 책을 덮었다. 죽지 않기로 한 사람 빼고 모두 읽었으면 좋겠다"라며 권했다.
이 책은 죽음 자체에 대한 분석을 출발점으로 하여 극복하는 방법과 특성을 살핀다. 이별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인간의 권리, 연명치료에 관한 교육, 말기 환자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호스피스 완화치료' 등 다양한 관점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부록에서 삶의 마지막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었다.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내가 하고 싶은 다섯 가지 결정'이 있다. 이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내가 원하는, 그리고 원하지 않는 치료 방법을 미리 결정하고 싶다", "내 마지막을 사랑하는 사람과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미리 결정하고 싶다", "장례 등 나를 추모하는 방법에 대해 미리 결정하고 싶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사람의 죽음과 관련하여 '人固有一死 或重于泰山 或輕于鴻毛 用之所趨異'(인고유일사 혹중우태산 혹경우홍모 용지소추이)라 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깃털보다 가볍다. 이는 죽음을 쓰는 바가 달라서다"라는 뜻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히는 서류다. 19세 이상의 성인이 생애 말기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에 관한 본인의 의사를 밝혀두는 것이다. 작성자는 언제든지 그 의사를 변경 또는 철회할 수 있다.
손지창과 오연수는 SBS '동상이몽 시즌2-너는 내 운명'(이하 '동상이몽2')에서 함께 건강 보험 공단을 방문했다.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히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공단 직원은 연명의료 중단 사업에 대해 "본인이 건강할 때 본인 자필로 사인을 해야 한다. 이후 의사 표현 못 할 때 나의 존엄한 의견이 반영돼 가족이 갈등하지 않고 이것대로 의료진들이 조처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결정"이라고 안내했다.
배우 오연수가 "저희가 젊은 나이에 온 것이냐"고 묻자, 직원은 "요즘은 90년대생들도 온다. 어르신들은 여기 오는 걸 숙제라고 생각하고 온다"라고 말했다.
"치료로 회생이 불가능할 때 효력이 발동하는데, 이런 결정을 스스로 하지 못하는 경우이거나 자녀들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아 결정하게 되었다"라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사인했다.
최근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연명의료 결정제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뜻있는 사람은 마지막에 닥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위해 자신의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화순저널에 실립니다. 방방곡곡 김민지 문화평론가의 글은 네이버블로그(mjmisskorea, 북민지) "애정이넘치는민지씨"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