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언제부터 삶에서 죽음이 멀어졌을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집에서 임종(臨終)하는 비율이 높았다. 이후 오히려 병원 사망자 수가 늘고 도시개발에 따라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늘어나면서 위생과 공간의 문제로 더는 집에서 장례를 치를 수 없게 되었다. 핵가족화와 경제적, 사회적 변화로 인해 임종의 자리가 가정에서 병원으로 옮겨지면서 죽음이 일상에서 격리된 채 일어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생사일여(生死一如)'라는 말이 있다. 삶과 죽음이 별개가 아님을 뜻한다. 죽음은 역설적이게도 곧 삶에 관한 이야기다. 잘 살아야만 잘 죽을 수 있기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실정이다. 죽음에 관한 금기시와 외면으로 한국인이 겪는 임종의 질은 의료 수준보다 현격히 낮은 편이라 한다.
 
광주 시립공원묘지 광주광역시 북구 수곡동 산 30-4에 자리잡고 있다.
광주 시립공원묘지광주광역시 북구 수곡동 산 30-4에 자리잡고 있다. ⓒ 김민지
 
삶은 영원불멸할 것 같지만 죽음의 순간은 누구나 맞닥뜨리게 된다. 다만 시기를 알 수 없을 뿐. 그렇기에 막상 죽음이 임박해서야 당황할 수밖에 없다. 여느 노랫말처럼 "하루만 오늘 더 하루만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게 줘"라며 삶을 정리할 여유조차 없게 된다.

<삶이 묻고 죽음이 답하다>를 쓴 저자 임영창은 한신대학교 호스피스 표준 교육을 수료한 후 '바람(HOPE) 호스피스지원센터'를 설립했다. 전남도립대학에서 인문학 겸임교수로, 화순 만나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센터 위치는 국립암 거점병원 중 하나인 화순전남대학교병원에서 차로 1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삶이 묻고 죽음이 답하다> (임영창,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2023), 가격 14,000원
<삶이 묻고 죽음이 답하다>(임영창,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2023), 가격 14,000원 ⓒ 김민지
 
그는 말기 함 환자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죽음을 바라보는 나름의 시각을 갖게 되었다. 더욱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어릴 적부터 죽음에 대한 교육이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한 요소라고 했다. <삶이 묻고 죽음이 답하다>에서 나오는 일관된 주장이다.

추천사를 쓴 카피라이터이자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정철 초빙교수는 "우리는 공부를 한다. 영어 공부, 자연 공부…. '죽음 공부', 잘 살자고 하는 게 공부인데 죽음 공부라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공포를 뻥 걷어차 주었으면 하는 기대감으로 책을 폈고, 편안함으로 책을 덮었다. 죽지 않기로 한 사람 빼고 모두 읽었으면 좋겠다"라며 권했다.

이 책은 죽음 자체에 대한 분석을 출발점으로 하여 극복하는 방법과 특성을 살핀다. 이별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인간의 권리, 연명치료에 관한 교육, 말기 환자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호스피스 완화치료' 등 다양한 관점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부록에서 삶의 마지막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었다.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내가 하고 싶은 다섯 가지 결정'이 있다. 이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내가 원하는, 그리고 원하지 않는 치료 방법을 미리 결정하고 싶다", "내 마지막을 사랑하는 사람과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미리 결정하고 싶다", "장례 등 나를 추모하는 방법에 대해 미리 결정하고 싶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사람의 죽음과 관련하여 '人固有一死 或重于泰山 或輕于鴻毛 用之所趨異'(인고유일사 혹중우태산 혹경우홍모 용지소추이)라 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깃털보다 가볍다. 이는 죽음을 쓰는 바가 달라서다"라는 뜻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히는 서류다. 19세 이상의 성인이 생애 말기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에 관한 본인의 의사를 밝혀두는 것이다. 작성자는 언제든지 그 의사를 변경 또는 철회할 수 있다.
 
연명의료 거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배우 손지장, 오연수 부부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전 설명을 듣고 있다
연명의료 거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배우 손지장, 오연수 부부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전 설명을 듣고 있다 ⓒ 사진=SBS '동상이몽 시즌2-너는 내 운명'
 
손지창과 오연수는 SBS '동상이몽 시즌2-너는 내 운명'(이하 '동상이몽2')에서 함께 건강 보험 공단을 방문했다.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히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공단 직원은 연명의료 중단 사업에 대해 "본인이 건강할 때 본인 자필로 사인을 해야 한다. 이후 의사 표현 못 할 때 나의 존엄한 의견이 반영돼 가족이 갈등하지 않고 이것대로 의료진들이 조처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결정"이라고 안내했다.

배우 오연수가 "저희가 젊은 나이에 온 것이냐"고 묻자, 직원은 "요즘은 90년대생들도 온다. 어르신들은 여기 오는 걸 숙제라고 생각하고 온다"라고 말했다.

"치료로 회생이 불가능할 때 효력이 발동하는데, 이런 결정을 스스로 하지 못하는 경우이거나 자녀들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아 결정하게 되었다"라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사인했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택 배우 오연수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사인하는 모습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택배우 오연수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사인하는 모습 ⓒ 사진=SBS '동상이몽 시즌2-너는 내 운명'
 
최근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연명의료 결정제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뜻있는 사람은 마지막에 닥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위해 자신의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화순저널에 실립니다. 방방곡곡 김민지 문화평론가의 글은 네이버블로그(mjmisskorea, 북민지) "애정이넘치는민지씨"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애정이넘치는민지씨#북민지#웰다잉#존엄한죽음#화순저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블로그(mjmisskorea, 북민지) <애정이넘치는민지씨>를 운영한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