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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행동이 나흘째 이어지는 23일 경남 양산시 물금읍 양산부산대학교병원 내 대형모니터에 '정상 진료 차질'이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행동이 나흘째 이어지는 23일 경남 양산시 물금읍 양산부산대학교병원 내 대형모니터에 '정상 진료 차질'이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 연합뉴스
 
엄청난 수의 전공의들이 자신의 직을 내려놓고 있다. 2월 19일 서울 내 병원에 종사하는 전공의들의 개인적인 사직을 시작으로 2월 24일 8897명의 전공의들이(78.5%)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보건의료영역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2월 24일 중앙 안전 재난대책본부 발표 기준). 

또한 보건의료 위기는 심각 단계로 보건의료체계의 마비 또는 붕괴가 생길 수 있다는 개연성에 국민 불안의 정도가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2000명 증원 안은 파격적이다. 작년 초부터 정부-의사협회 간 의료현안협의체가 총 27차례 이어졌지만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적정 규모의 의사 증원, 의료전달체계 개선과 생태계 마련, 전공의 처우개선 등의 논의들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여러 아젠다를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하였다. 여기에 반발하는 의사들이 사직, 파업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그렇지만 비난의 화살은 정부보다는 오히려 의사들에게 향하고 있다.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환자들 뒤에 숨어버린 탐욕스러운 의사, 사회의식이 결여되고 엘리트 의식에 절어 있는  '전교1등 의사' 로 수렴되고 있다.

2천 명 낙수효과로 필수의료 채워질까 

대통령 이명박이 주장한 낙수 효과를 기억하는가? 낙수 효과는 정부가 선도기업, 부자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지원을 해 그들을 성장시키고 그 과정에서 생긴 이익이 아래로 자연스레 내려가 모두가 성장할 것이라는 이론이었다. 

그러나 재벌과 기업들의 탐욕은 끝이 없었다. 이들의 현금 유보율과 부동산, 주식 등 유무형 자산 증식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갈수록 심해졌다.

현재 윤석열 정부가 주장하는 2000명 증원 효과도 적절한 의사 자원 분배 정책이나 비급여 항목에 대한 적정한 관리와 통제가 없다면 동일한 과정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대로라면 증원된 의사들은 당장 급한 필수의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과나 지방지역 의료기관으로 가는 것이 아닌 2028년까지 증축되고 완공되는 6000병상 상당의 수도권 내 11개 대학병원 분원, 미용 및 영리병원 등 비급여 의료시장으로  쏠리게 될 것이다. 지방의료시설과 전국의 5%도 안 되는 공공의료시설은 붕괴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과 '적정한 의료'가 더욱 어려워지는 상황이 갑작스레 찾아올 것이다.  

필수과로 불리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의 경우 주요 인기과 지원 이후 가게 되는 '낙수과'로 평가절하되어 있는 것이 의료계의 현주소다. 최근 전공의들의 지원은 과장을 좀 더해서 주요 인기과에 떨어지면 낙수과에 지원하지 않고 내년에 인기과에 재지원하거나 미용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추세가 뚜렷해졌다.

공공의료시설에 파격 지원

필수의료에 대한 수가정상화가 이루어지더라도 95%가 민간중심의 대형병원이기 때문에 필수 의료 인력에 대한 재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렇기에 적어도 대학병원 내에서는 필수의료 인력에게 직접적인 보상을 단순한 지원금이 아닌 수행 항목별로 세분화 하고 확대해 나가는 것이 옳은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역에서의 수술을 취소하고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향하는 환자들의 불안감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 상태를 그대로 두는 것보다는 5%로 쪼그라든 공공의료시설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과 지역거점의료기관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이 지역의료 완결에 필수조건이다.

필수의료영역에 배출되는 의사들이 아무리 많아도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시설과 인력조차 부재한 상황은 사회적 낭비와 젊은 의사들의 좌절감만 더 키울 뿐이다.      

노동자·피교육자이면서 환자의 주치의인 전공의

생명에 직결되는 일을 하는 의사들이 짊어지는 책임감은 타 직종보다 커야 한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전공의들도 매일 수많은 의료행위를 하면서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하지만 전공의들의 줄 사직으로 대한민국의 의료 전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전공의는 전체 의사 수의 약 11% 정도이지만, 대학병원 내 의사직종 중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기도 한다.

월 400만 원 정도로 주 80시간, 연속 36시간 이상의 근무와 의국내 잡일, 환자에 대한 책임까지 수행하니 고용하는 병원으로서는 투여비용 대비 창출되는 가치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이들의 비율이 높을수록 인건비 지출 비용은 당연히 감소하게 된다.  

병원에서의 의료 행위는 경력이 많고, 의사결정에 있어 상위권자에 해당하는 의료인들이 져야하는 것이 전통적이지만 이러한 위치에 있는 교수나 전문의, 전임의 수가 많지 않다. 이익을 창출하고 외형적 성장이 주된 목표인 민간병원에 법적인 강제가 없는 한 이러한 인력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또, 이러한 인력 구조를 빠르게 개편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2000명의 값싼 전공의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국의 전공의들은 최대 28시간, 절반 정도는 60시간 정도 근무하는데 우리나라의 전공의들은 여전히 최대 36시간, 48%가 주 80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이 대학병원의 의료서비스와 환자들의 건강을 위해 존재하여야만 하는 큰 기둥이라면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은 결국 시간 문제다. 

단체 사직은 정당성이 있을까

환자들을 위해 돌아오라는 목소리에 선뜻 돌아가지 않는 전공의들의 모습이 나로써도 안타깝고 참담하다. 그러나 보건의료직종별 파업의 양상이 점차 심화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선뜻 반대하고 비난하기도 어렵다. 의사 뿐만 아니라 보건의료영역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요구와 부딪히는 전반적인 의료비용 상승과 사회적 압력은 나날히 커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의료자원은 공공적 성격이 강하여 사회적 통제와 동시에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한 점을 고려하여 정부와 의료기관이 우선적으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다각도로 나서야 하지만, 현 사태의 수습보다는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명령과 사법 처리에 몰두하는 것은 정치적 실패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시장 방임의 무한경쟁 구도에 노출되어 있는 전공의들에게 새로운 2000명의 전공의들은 그저 새로운 경쟁 상대일 뿐이다. 그렇기에 병원들의 앞뒤 사정을 봐주며 이런저런 핑계로 미뤄왔던 근무 환경의 급격한 개선과 법적 강제성이 동반되는 노동실태 수사 및 감독 기구 설립으로 마음을 달래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복잡한 세상과 다층적인 욕구와 갈등이 상존하는 사회에서 사회·정치적인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사법적·행정적 강제성을 동원하여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려는 조급증으로는 결코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없을 것 같다.    

전공의들의 사직에 정당성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들 모두 사람을 살리는 의사이기에 이 사태가 장기화 될수록 생기는 환자들이 마주해야 하는 고통과 피해를 외면하긴 어렵다. 
  
엔드 포인트는 있는가

먼저 들끓고 있는 의사에 대한 혐오 현상은 의사들 스스로 극복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시국에 의사협회와 의사 개개인에 대한 나만의 독백과 고백은 별다른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반드시 개선되어야만 하는 기형적인 보건의료구조, 정책을 뒤로 하고 제일 쉬워 보이는 의대생만 쏟아 붇는 것으로 당면한 의료수요의 증가를 해결할 리 만무하며, 답답한 사태가 장기화 되는 것은 결국 국민들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특히 전공의 의존이 큰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들의 줄 사직을 막지 못한다면 실제로 환자들이 치명적인 피해를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이러한 대치속에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득, 병원은 이번 정책들에서 취할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뒤로하고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장을 열어야 한다.  

큰 시스템 안에 속해있는 한 개인으로 앞서 제시한 생각들 이외에는 정확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어렵다만 어둠 속에서 혼자 느낄 불안은 전공의들 모두가 공감할 것이며, 이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어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 위기를 극복하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의 끝은 어디에 있을지. 누군가는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그렇다면 기성의 의사들은 그 답을 가지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미래의 2000명의 의사들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들의 의료는 누구를 위해 있는지.

#단체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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