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거 나를 낳아준 엄마(친어머니, 아래 '엄마')와 29년을 살았고, 결혼과 동시에 남편을 낳아준 어머니(시어머니, 아래 '어머니')와 지금껏 26년 째 살고 있다.
엄마와는 가끔 전화하고 어쩌다 만나지만, 어머니(시어머니)와는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눈다. 앞으로 몇 년의 시간이 더 지나면 엄마와 보낸 시간보다 어머니와 보낸 시간이 더 길어질 것이다. 비록 시간의 길이로 천륜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인위적 관계 또한 천륜의 깊이 만큼 깊어질 거란 생각을 요즘 들어 자주 하곤 한다.
사회가 보기에 어머니와 나는 '고부관계'겠지만
어머니와 나와 같은 관계를 사회에서는 고부관계라 부른다. 고부는 며느리와 시어머니를 아우르는 말로 우리 사회에선 오랫동안 갈등의 대상으로 여겨온 사이다. 고부관계가 우스운 건 누구 하나 모난 사람이 없어도 이 테두리 안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뾰족한 모서리가 된다는 점이다. 자신은 분명 모서리가 아닌데 다른 사람을 찌르고 있는 걸 발견하면서 말이다.
그동안 이 평범한 진실을 잊고 살았다. 성격이 둥글다 못해 얼굴까지 둥근 내가 누군가를 찌를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어머니의 눈물을 보며 나 역시 누군가의 모서리가 되었던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처음 몇 년간은 엄마가 내 생일을 챙겨주었다. 긴 시간을 키우며 기억했던 날에 몸이 저절로 반응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엄마는 더이상 나의 생일을 기억하지 않는다. 엄마에겐 결혼한 딸보다 곁에 남아있는 아들과 며느리가 더 귀해진 것이다.
엄마에게 이제 내 생일은 거의 관심 밖의 일이 되었다. 심지어 생일이 지난 이 시점에서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말해도 엄마는 '아, 봄이 올 때쯤이 너 생일이었지. 축하한다. 딸.'이라고 말할 게 분명하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다르다. 어머니는 의식적으로 내 생일을 기억하신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은근슬쩍 생일에 표시까지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기억을 하시고는 아무도 모르게 부엌으로 들어와 봉투 하나를 쥐어 주었다. 얼굴에는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로 말이다.
"막내야, 생일 축하한다. 그리고...고맙다."
어머니는 축하한다는 말을 하고 잠시 말을 멈췄다. 어렵사리 고맙다는 말을 끝낸 후에는 급기야 눈물을 보이셨다. 서러운 아이처럼 울음소리까지 내면서.
무슨 일인지 몰라 당황한 나를 끌어안고는 또 그렇게 한참을 우셨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적잖이 놀란 나는 품에 안긴 여린 몸을 다독여야 했다. 흐느낌이 진정되었을 때 어머니는 빨개진 눈으로 나를 보며 두 손을 꼭 감싸 안았다.
"막내야, 미안하다. 내가 너무 오래 산 거 같아서 너한테 진짜로 미안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아니,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갑자기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나도 다 안다. 시부모 모시고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정말이지...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오래 살 줄은 몰랐다. 자식들에게 피해가 되는 사람으로 살지 않으려 나 나름 노력했는데 자꾸 나이를 먹으니... 이제는 그렇게 될 것만 같아 무섭고 두렵다."
90이 두려운 어머니... 나이 든다는 게 미안할 일인가
달 밝은 정월대보름에 태어난 어머니는 내년이면 구십이 된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것이다. 팔십까지는 그럭저럭 살 만하다 여겼는데, 백을 바라보는 구십은 왜인지 두려운 숫자로 보이시나 보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어머니는 건강하시잖아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건강하실 거니 아무 걱정 말고 마음 편하게 사세요."
어머니를 위로하듯 말했는데, 순간 기분이 묘했다. 어머니께서 나의 눈치를 보고 사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자존감이 높으신 분이 세월 앞에서 약해지신 것 같다. 어머니는, 우리가 고부관계로 보낸 시간이 자신이 예상했던 시간보다 길어지고 있다는 게 두려우신 것이다.
삶이란 것이 이렇게 아프다. 그래서 슬프다. 나이 든다는 것이, 살아간다는 것이 어찌 미안한 일이 되겠는가. 삶의 끝을 마음대로 결정지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기나 할까. 누군가는 몸이 아프면 혹시라도 오래살지 못할까 봐 걱정을 하는데, 누군가는 몸이 아프면 죽지 못할까 봐 걱정을 한다. 죽지 못하고 아픈 몸으로 계속 살아갈까 봐 걱정을 한다. 피해가 되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은 것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존재는 없다. 그럼에도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고 싶은 바람 때문일 것이다. 그 바람을 어머니의 눈물을 보며 알았다.
지난 26년 동안 실은 나 혼자 시집살이를 하며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내가 보지 못하는 사이 어머니도 약해지고 있었다. 남은 날들이 다르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어머니가 앞으로의 날들을 걱정 속에서만 살게 할 수는 없다. 남은 날은 내일보다 오늘이 더 행복한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오래 사는 것이 미안한 일이 아니라 행복한 일이란 걸 느끼도록 해드리고 싶다.
흔하게 하는 말 '오래오래 사세요'가 짐이 아니라 축복의 말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 임무가 나에게 주어졌다. 그 날은 어머니의 생일을 하루 앞둔 나의 생일날이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