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2n 등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평생을 모범생으로 살며 주변 어른들에게 칭찬만 들었던 학생이었다. 그랬던 학생은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방황하기 시작했다.
방황의 시작은 코로나 19로 인한 비대면 수업이었다.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코로나 19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1학년 2학기가 될 때까지 방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 이야기다.
학교가 학생을 방치하는 듯한 상황이 되고 나자, 문득 나 자신과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명확한 꿈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저 어른들이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해왔다. 그런 삶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당시 내 성적은 훌륭한 편이었다. 성적통지표 가정통신문에는 "OO 이는 학습 태도가 훌륭하고 경청하는 태도가 바르며, 모범이 되는 학생"이라고 쓰여 있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주변 어른들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꿈? 너 하고 싶은 거 해"라며 꿈을 찾아주지도, 찾을 시간을 주지도 않았다. 어른들은 아무 도움도 안 되는 형식적인 진로 수업으로 본인들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곤 했다.
코로나 시기 방치되자... 무의미해졌다, 학교가 갑갑했다
이렇게 무의미하게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학교 수업은 거부감이 들어 듣기 싫었다. 코로나 19 상황에 제대로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 학교와 선생님들을 보며 더더욱 학교가 무책임한 곳이라고 생각했고 멍하니 노트북 화면만 보고 있는 게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이 시간에 나에게 더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진짜 '나'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또 한 번 나를 무너뜨렸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자퇴'에 대한 편견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자퇴한 학생은 문제 있는 학생으로 보고, 직업 선택의 자유도 매우 제한적이게 된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 처음으로 자퇴 의지를 보였고 부모님은 나를 달래려고 노력하셨다.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거라고 생각하셨다. 부모님보다 친구들이 더 당황한 모습이었다. 이전까지 내가 장난으로라도 "자퇴하고 싶다"라고 말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자퇴하고 싶다", "죽고 싶다" 등의 극단적인 말들이다. 당시 나는 이런 말이야말로 무겁게 취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짜 실행할 자신이 없으면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친구들과 부모님에게 "자퇴하고 싶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학교가 나를 옥죄는 것 같았다.
부모님은 내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하신 것 같았지만, 여전히 자퇴를 반대하셨다. 대신 잔소리를 하지는 않으셨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말 잘 듣는 모범생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격주 등교가 가능해진 뒤 매일 학교에 갔다. 그러나 수업은 전혀 듣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집에 왔다. 하교 후에는 스마트폰도 보지 않고, 방 안에서 그냥 천장을 보며 누워있기만 했다. 이런 나를 보고도 부모님은 화내지 않으셨다.
부모님은 무기력한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노력하셨다. 친구를 만나라고 용돈을 주시고 약속 장소에 데려다주셨다. 나를 데리고 나가 주말마다 같이 자전거를 타고 배드민턴을 치는 등 야외 활동을 함께 해주셨다. 시험 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 첫 대면 시험을 망쳤고 부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시험을 본 나는 처음으로 마음이 편했다.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지고,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을 만족시켜야 된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얼마 전까지는 정말 학교에서 탈출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는데 그런 마음이 서서히 사라졌다.
내가 자퇴를 결심했을 때 부모님이 강력히 반대하고 억압하셨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더 크게 반항한 뒤 자퇴하고 히키코모리가 되지는 않았을까.
자랑스럽지 않아도 되고, 그저 나인 그대로 괜찮다는 메시지
나는 이제껏 항상 누군가에게 자랑스러운 딸, 주변 지인들도 부러워하는 딸이었다. 그런만큼 매번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부모님도 이걸 원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자존심 강한 아빠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나를 믿고 기다려주셔서 사실 나는 놀랐다. 이런 부모님의 태도를 보고 부모님은 '자랑스러운 딸'이 아니라 그냥 나 자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신다는 걸 느꼈다.
처음 자퇴 생각을 했을 때는 어느 누가 설득을 해도 들리지가 않았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존재인 부모님이 나에 대한 믿음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시니 나도 부모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일단 고등학교 졸업장만이라도 따면 좋겠다고 하셔서 잠시 자퇴 생각을 접어두기로 했다.
코로나 19가 완화되며 대면 수업이 늘어났고 다시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에게 성적, 입시에 대한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들자 점점 자퇴 생각도 사라졌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다시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들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 뒤에 내게는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고등학생 때 무기력하게 보낸 시간들을 다시 복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는 4년제 대학교 2학년으로 재학 중에 있으며 복수 전공과 학회 활동 등 학교 생활도 활발히 하고 있다.
사실 나는 평생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아왔다. 학교가 감옥 같고 자퇴하고 싶었던 그 시절에도 정말 가까운 사람들만 내 마음을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당당하게 이런 경험을 얘기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한심하게 생각하거나 문제가 있었던 학생으로 생각할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덜 신경 쓰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어졌다. 이 기사를 통해 방황하던 그 시절의 나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또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됐다.
방황하던 시절 내게 가장 위로가 된 말은 놀랍게도 아빠가 해준 한마디, "가방 메고 학교만 다녀"였다. 그 이상의 뭔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뉘앙스였다. 하루아침에 180도 변했던 딸에 부모님도 놀라셨을 텐데, 그럼에도 다그치지 않고 사랑으로 감싸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이들 곁에 방황하는 친구 혹은 청소년, 자녀가 있다면 부디 부탁드린다. 안 그래도 힘들 그들을 더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기보다는, 따뜻한 말과 위로, 커피라도 한 잔 건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