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푸스 X 교보문고에서 진행하는 마음기록관에 최근 다녀왔다. 교보문고 강남점은 일부 공간을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다. 서점으로서는 볼거리가 다양해지고, 브랜드는 자신들의 이야기와 맞닿은 쓰기와 읽기의 경험을 꺼내 독자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일 것이다. 이번 전시는 '여기어때', 'BMW' 협업에 이어 세 번째로 진행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볼거리가 생겨난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팝업 전시 혹은 스토어에서 유의미하게 브랜드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반짝반짝하는 타들어가는 불빛을 보는 것처럼 잠시 탄성을 자아내고 뒤돌아서면 잊게 되는 것은 아닐까? 지난 3월 28일, 근처에 업무가 있어 교보문고 강남점에 잠시 들렸다.
올림푸스한국의 사회공헌 프로그램 활동 '고잉 온 다이어리'에 참여한 암 경험자들의 일기를 공유했다. 136개의 일기는 감사, 약속, 칭찬, 행복의 4개 파트로 나눠서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환자는 언제까지 환자일까... 가느다랗고 연약한 목재의 연결
우선 이 전시에서는 낯선 용어가 등장한다. 환자가 아니라 '암 경험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덧붙여 '환자는 언제까지 환자일까?'란 질문을 던진다. 사람은 살면서 여러 종류의 병을 필연적으로 앓게 된다. 암 또한 경험으로, 거쳐가는 것으로 표현하자, 암에 대한 생각을 다르게 하게 됐다. 질병 - 경험 이후의 삶을 생각해 보게 된다.
암과 함께하는 동안에도, 암 이후에도 여전히 삶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 전경은 이렇다. 저 가느다란 목재가 씨줄과 낱줄처럼 연결되어 벽을 구성한다.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가느다란 목재들.
연약해 보인다. 그러나 저 연약함들이 모여 이렇게 튼튼하고 짜임새 있는 공간을 구성하고, 또 앞으로 언제까지나 나아갈 수도 있어 보였다. 한편으론 우리의 일상, 건강에 대한 비유처럼 보였다. 어쩌면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나왔던 시간의 벽처럼 보이기도 했다.
전시 벽 사방에는 각 키워드 별로 암 경험자의 일기가 전시되어 있다. 감사, 약속, 칭찬, 약속 일기. 일기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일기를 보는 일은 여러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봐도 되는 것인지, 어떤 이야기를 썼는지, 어떤 일을 감사했을지. 이야기는 평범해서 누구의 일기라고 써 있지만, 그 누군가가 전혀 특정되지 않을 정도였다.
암 경험자의 일기를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일기를 작성하는 공간이 있다. 이곳의 의자는 앉는 자리가 투명했다. 이 의자의 속성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공간을 확장시키는, 깨끗한 이미지의 인테리어 소품처럼 보인다. 그런에 이 위치에 오니 다르게 생각된다.
투명한 자리는,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앉을 수 있다. 그 자리에 앉는 사람도 언제든지 투명해질 수 있다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런 확률이나 위험 속에서 자신을 지켜가고 있을 여러 병들의 경험자들을 생각할 수 있었고, 나 역시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는 일 같기도 하다.
일기를 쓰면 두 장이 나오는데, 한장은 습자지처럼 떨어져 전시장에 아카이빙 할 수 있다. 전시를 디자인한 소재와 속성에 대해서 생각한다. 우리의 이야기를 얇게 모아서 다른 이들이 볼 수 있게 남겨두고 가는 것.
원본은 내가 가져가고 아주 얇은 마음, 내가 가져온 원본과 같은 내용을 우리에게 공유해 서로를 응원할 수 있다.
일기란 언제나 내가 쓰고 나만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외롭거나 힘이들기도 한 것이었는데, 일기의 속성과 응원의 속성을 이런 성격의 종이로 표현한 것이 좋았다. 또한 교보문고에서 진행하는 전시답게 도서 추천이 빠질수 없다. 추천된 책들은 삶의 유한함과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목록으로 잘 구성되었다.
마음을 엮어 나에게 당신에게... 일상적이고 소박한 단어의 힘
키링을 만드는 곳이 있다. 단어는 아주 간단하다. 암 경험자의 일기에서 선정한 단어였다. 매우 소박하고 일상적이고 간단했지만, 이 단어가 이렇게 홀로 있으니 그 힘이 엄청났다. 따로 떨어져 있는지 생각하지 못했던 말들.
나/ 너/ 나의/ 너의/ 우리.
별 것 아닌 단어들 같은데, 여기까지만 읽고도 울컥했다. 그 밖에는 엄마/아빠/동생/ 등의 가족이 있고, 재미있게/소중히/즐겁게/ 등의 일상적인 말들이 있다.
단단하고 다양한 형태가 있는 종이를 구성해 고무링에 끼울 수 있다. 이것을 끼우면서 눈물이 났다. 왜 그랬을까. 이 단어들은 대개 홀로 있지 않고, 이 단어들은 언제나 문장의 일부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에겐 내가 해야 한다고 믿는 인생의 과제들이 언제나 늘 먼저였다. 그러나 이렇게 하니씩 모으니, '나'라는 단어에도 어떤 조사가 붙는지에 따라 그다음에 엮을 수 있는 단어를 오래 생각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날, 내가 전시회에서 가족 구성원이 나오는 단어들을 한데 모으는 데에는 시간과 힘이 들었다.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누구에게나 언제까지 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지금을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려주는 것 같다. 그 체험을 하는 순간이 너무 놀라웠다.
당신은 어떤 단어를 먼저 선택할까? 당신은 어떤 단어 앞에서 오래 서 있을까? 머뭇거리고 주저하고 어떤 단어를 몰래 오래 쓰다듬을까?
전시에서 사려 깊음과, 독자에게 천천히 다가가려는 과정들이 보였다. 올림푸스는 카메라 회사라고 생각했으나 1919년에 설립된 글로벌 의료기업으로 올림푸스그룹의 한국법인인 올림푸스한국은 의료 내시경, 복강경 등 우수한 의료 전문 제품을 통해 한국 의료계 및 학계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 병을 앓았던 시간이 경험치가 될 수 있을까? 어떤 병을 10년째 앓았다고 말하면 그만큼 건강에서 멀어졌다 여기기 쉽겠지만, 생각을 바꿔 그걸 '경험'이라고 부르면 그 병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암 경험자들이 일기에서 가장 많이 쓴 단어는 너무나 소소하고 일상적이어서 잊기 쉬운 것들이었다.
환자는 언제까지 환자일까, 라는 물음을 뒤집으면 '건강하다는 것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고 언제까지일까?'라는 문장이 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살아가는 동안 이 사이를 진자처럼 움직인다.
마음기록관 전시는 어떤 질환을 경험한 사람이나, 혹은 그런 경험자의 주변인들과 그리고 아직 병에 대한 경험이 크게 없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암 경험자의 일기를 보며 그들을 지지하고, 나의 삶과 가족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공간을 화려하게 꾸며 그럴듯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거침없이 들어와 자신을 기억하기를 강요하는 팝업 사이에서, 비용과 공간을 들여 다른 이들의 시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였다.
전시는 오는 5월 19일까지,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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