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얻어 온 화분을 본 날이었다. 처음 봤을 때 무지의 검정 색깔 하며, 꾸밈없이 무뚝뚝한 모습이 거슬렸다. 꽃을 키우기엔 크기와 깊이도 지나치게 훤칠했다. 마당에 늘어놓아 보니 마치 분리수거함 같아 더 신경 쓰였다. 그 후로 쟤네들을 어떻게 놓아둘 것인가에 골몰하게 됐다. 마침내 머릿속에 있던 것을 꺼내 보기로 한 날, 아들 찬스를 썼다.
월요일. 뒤뜰에 재활용 평상을 설치했다. 큰 애가 오자마자 그라인더를 들고 계곡으로 향했다. 폭우에 뜯겨나가 틀만 남은 각관 앵글을 떼어냈다. 걸머지고 올라와 방부목 데크를 깔아보니 폭이 얼추 맞는다. 피스를 박고 전기원형톱으로 한 면을 잘라내니 깔끔하다. 봄엔 매화 그늘에, 수확기엔 매실 정리에... 그래, 시골집엔 평상 하나쯤 있어야 한다.
화요일. 이제 분리수거함을 정리할 차례다. 이른바 '난간형 화분 박스'를 만들기로 했다. 데크 난간과 플랜터박스를 일체로 만든 것이다. 여기에 화분을 넣는다. 플라스틱 화분은 햇볕에 쉽게 데워지는데 열받은 흙은 식물에 좋지 않다. 투박한 화분을 가리기 위한 것이지만 태양열 차단 효과까지 있어서 일석삼조다.
덩굴식물을 위한 기둥도 세웠다. 땅 파고 주춧돌을 심어 수평과 수직을 맞추는 일이 꽤 힘들다. 기왕에 등나무와 으름을 키워보니 감아올리는 생명력이 인상적이다. 인동초, 클레마티스, 능소화를 새로 심어 맘껏 살아보라고 붙여줬다. 나무는 여의찮을 때 해체하기 쉽고 재활용할 수도 있어 좋다. 배송차 들른 택배 기사가 "혹시 목수세요?"하고 뜬금없이 묻는다. 솜씨보다는 너더분한 목공 장비 때문에 물어본 것이리라.
수요일. 별채 천장의 어수선한 전기선을 정리했다. 쫄대를 바닥으로 돌리고 천장 배선은 레일로 교체했다. 같은 길이의 전선이지만 달리 배치하니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선룸에 그늘막도 설치했다. 봄인데도 렉산 차양을 뚫고 들어오는 광선이 견디기 힘들 정도다. 오호, 효과가 있다. 열기가 한결 무뎌졌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내 손으로 구체화하기가 어디 쉬운가? 즐거운 움직임, 생활 노동은 시골살이의 묘미다. 결과물에 만족하면 더할 나위 없다. 인테리어든 아웃테리어든 돈으로 해결하는 서비스에 익숙한 도시에선 달갑지 않은 일이겠지만 말이다.
아들과 함께 한 시간도 좋았다. 고맙고 즐거웠지만 아이는 나와 다른 농도로 이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뜰은 어떻게든 해볼 수 있지만 그의 마음은 내가 정돈할 수 없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먼 훗날 어딘가에서 마주친 어떤 평상, 어느 덩굴식물에서 나와 비슷한 추억의 실마리가 불거져 나오게 될지.
다시 혼자 남았다. 뒤뜰에 수북해진 풀을 예초기로 단정하게 치고 나니 한 구석이 거슬린다. 가지치기한 나뭇가지를 쟁여둔 곳. 불멍과 삼겹살 구이에 쓰려고 근 일 년을 방치했다. 시간은 언젠가 화려하게 피어날 불쏘시개를 쓰레기로 만들었다. 낙엽과 부스러기, 흙먼지가 뒤섞인 채로 엉망이다. 지내보니 모닥불 피울 일이 많지 않다. 가지 더미에 내 욕심이 보였다.
안 쓰면 정리할 일도 없다. 하지만 이 마당엔 정말이지 수천만의 씨앗이 들어와 있으니 늘 쓰이고 있다. 게다가 새와 곤충, 비와 바람까지 부지불식간에 이 땅을 사용하고 있다. 귀찮지만 이 집에 들어선 날부터 내게 자연의 잔해를 처리해야 할 소임이 맡겨진 것이다.
한나절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를 내다 버리고 바닥을 비질했다. 역시 아웃테리어의 완성은 청소다. 시원한 빈터가 생겼다. 아, 이 후련함이라니. 마당에도 여백의 여유가 필요하다. 정리야말로 진정한 뜰 가꾸기였다. 힘들지만 힘이 되는 정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