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매년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나는 6년 전, 첫 발령지였던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스쿨미투 사건을 떠올린다. 그 사건은 내게 학교, 학생, 교사에 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했다. 꽤 시간이 지났지만, 어떤 해에는 책임감으로, 또 다른 해에는 자연스럽게 일주일 남짓했던 그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때를 떠올리며, 당시의 강렬했던 감정을 내가 마음에 잘 품고 있는지, 나는 또 지난 일 년을 어떤 교사로 살았고, 어떤 교사가 되어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고발합니다'라고 적힌 대자보

'똘똘하고 착하고 모두에게 친절한 우리 신규 선생님'. '우리 학교의 자랑이자 얼굴인 선생님'. 첫 발령지인 인문계 고교에서 교직 2년 차였던 2018년 당시 나는 이미 인정받는 교사였다. 교무실 어느 부서를 가도 나를 반겼고, 학생들은 남자반 여자반을 가리지 않고 나를 좋아했다.

솔직히 그런 상황에 대해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고 그래서 적이 없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가끔 함께 발령받은 동기보다 내가 더 낫다는 말을 들을 때 겉으로 겸손한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뻤다.

인정받는 기쁨에 젖어있던 그해 가을의 어느 월요일, 교무실 복도에는 '대자보'가 붙었다. '고발합니다'라고 적힌 대자보 주변에는 양팔을 벌려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많은 포스트잇이 붙어 흔들리고 있었고 그 앞에는 포스트잇만큼 많은 수의 학생과 교사들이 몰려있었다.

"OO 선생님. 수업 시간에 제게 '너 그러다 시집도 못 간다'라고 하셨던 말 기억합니다. 사과해주세요."
"OO 선생님. 제가 뛸 때마다 남학생들이 자꾸 기분 나쁘게 쳐다보고 소리 지른다고 했을 때, '니가 예쁘고 몸매가 좋아서 그런 거니 이해하라'고 하셨던 거 기억나세요? 정식으로 처벌하고 사과해 주세요."
"남학생만 운동장 사용하고 여학생은 매일 강당에서 피구만 하는 건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페미 꺼져라."
"이름 밝힐 용기도 없으면서 학교 시끄럽게 하지 마라."
"응원합니다. 이 포스트잇 떼면 경찰에 신고합니다."

 
 인정받는 기쁨에 젖어있던 그해 가을의 어느 월요일, 교무실 복도에는 '대자보'가 붙었다. '고발합니다'라고 적힌 대자보 주변에는 양팔을 벌려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많은 포스트잇이 붙어 흔들리고 있었다. 포스트잇 (자료사진).
인정받는 기쁨에 젖어있던 그해 가을의 어느 월요일, 교무실 복도에는 '대자보'가 붙었다. '고발합니다'라고 적힌 대자보 주변에는 양팔을 벌려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많은 포스트잇이 붙어 흔들리고 있었다. 포스트잇 (자료사진). ⓒ 픽사베이
 
그날 교직원 회의에서 교감 선생님은 사태를 파악하고 대응 방안을 정할 때까지 입조심을 당부했고, 뒤이어 마이크를 잡은 학생복지부 부장 선생님은 CCTV만 돌려보면 대자보 붙인 학생을 잡을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을 했다.

'민샘. 내가 학생부장 언제 한번 큰일 낼 줄 알았다니까. 본인 이름 적혀 있다고 신고 내용 파악할 생각은 안 하고 학생부터 잡겠다는 거 봐. 내 참 어이가 없어서.'
'민샘. 거기 내 이름도 있더라고. 민샘이 볼 때 솔직히 그게 신고당할 정도야? 그걸로 미투를 당하면 여기 살아남을 교사가 누가 있겠어. 민샘도 애들이 지금은 좋아하지만 조심해.'
'샘! 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솔직히 여자애들 자꾸 '차별, 차별' 하면서 시비 거는데 어이없어요.'
'샘! 저도 거기 포스트잇 붙였어요. 학교에서 이거 그냥 넘어가진 않겠죠? 만약에 그거 그냥 떼고 넘어가면 저희 다 같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교사와 교사, 학생과 교사, 남자와 여자. 각자의 편에 선 사람들은 저마다 나에게 찾아와 동의를 구하는데 나는 어느 편에도 서지 못했다. 선생님들에게는 '아... 그렇죠. 잘 지나가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진정하고 기다려 보자. 사실 확인부터 해야지. 무작정 비난할 일이 아니야'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뉴스에서 스쿨미투를 접할 때는 용기 낸 학생들을 응원하게 되고 명백한 폭력을 행사한 교사는 그에 맞는 책임을 지고 스스로 성찰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 앞에 이런 일이 벌어지니 버거웠다.
 
교실의 풍경 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교실을 볼 때면 아이들은 오늘 이곳에서 무엇을 품게 되었을까 기쁘게 때로는 아프게 생각하게 된다.
교실의 풍경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교실을 볼 때면 아이들은 오늘 이곳에서 무엇을 품게 되었을까 기쁘게 때로는 아프게 생각하게 된다. ⓒ 민재식
 
포스트잇에 적힌 학생복지부 부장 선생님의 발언은 분명 문제가 있는데, 문제가 분명한데... 그러나 학생복지 업무 담당자로 교직 첫 해를 보내는 동안 누구보다 나와 가까웠던 부장님이기에, 쉽사리 처벌해야 한다고 선뜻 말할 수 없었다.

남학생들이 대자보에 관해 쏟아내는 혐오의 발언 또한 문제가 있었지만, 거기서 교사인 내가 화를 내면 학생들이 영영 마음을 닫고 혐오의 세상에서 나오지 못할까 두려웠다.

스쿨미투에 참여한 여학생들의 말은 하나하나 옳았지만 내가 거기에 동조하면 학교의 혼란을 더 키우게 될까 두려웠다. 애초에 2년 차 교사인 나는 교감 선생님의 '입조심 당부'를 어길 용기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스쿨미투를 주도한 여학생은 이름을 밝힐 용기도 없다는 말에 대항하기 위해, 대자보와 포스트잇을 일단 떼려는 학교에 맞서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고 복도에 당당히 서서 대자보를 지켰다.

나는 물러서 있는데 그 아이는 스쿨미투를 계획할 때도, 대자보를 지킬 때도 당당히 앞장섰다. 사태가 벌어지고 일주일 정도 지난 금요일 오후, 결국 그 아이는 부모님과 함께 교무실로 불려 갔다가 한 시간 만에 교실로 돌아왔다.

교감 선생님에게 명예훼손, 징계 가능성 같은 말을 들었다고 했고, 대자보에 이름이 적힌 선생님들이 교실을 돌며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렇게 자리에 앉으려던 그 아이는 문득 멈춰 서더니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솔직히 이건 아니지 않아요? 왜 제가 여기서 멈춰야 해요? 징계는 그 사람들이 받아야 하는데, 안 멈추면 왜 제가 징계를 받는 거예요?"

주변 아이들은 그 아이에게 '왜 재식샘한테 화를 내냐'라고 말했고, '징계를 받게 되면 너만 손해'라고도 말했다. 그래도 '사과를 제대로 받을 수 있게 됐으니 좋다'라며 손뼉을 쳐주기도 했다. 그제야 나는, 엉거주춤 서 있는 그 학생에게 '네가 용기 있고 옳은 행동을 했다는 사실만은 꼭 기억하면 좋겠다'는 말을 얼버무리듯 내어놓았다. 

그러나 그 짧은 말조차 말해도 괜찮았던 것일지, 혹시 그 말이 또 다른 논란의 시작이 되지는 않을지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초조해했다. 얼마 뒤 이름이 적혔던 선생님들의 짧은 사과들이 교실을 채웠고, 뜨거웠던 스쿨미투는 그렇게 끝이 났다. 

비겁함의 모양으로 기억되는 그 일 

시간이 흘러 8년 차 교사가 된 지금, 스쿨미투가 있었던 일주일의 수업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때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도 지금쯤 수업 내용은 다 잊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렬했던 스쿨미투 사건은 잊히지 않고 서로 다른 모양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나는 그때를 비겁함의 모양으로 기억한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갖은 이유를 대며 나의 물러섬을 합리화했던. 대자보를 붙였다는 이유로 학생부에 다녀왔던 그 아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 걸음 물러서 있던 내 일그러짐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그 아이는 어떤 모양으로 스쿨미투를 기억하고 있을까. 

다시 그때와 같은 일을 겪는다면 내가 달라질 수 있을지 확신하기 힘들다. 더 이상 일그러진 모양으로 남고 싶지는 않은데. 매년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학생에게 필요한 스승은 어떤 모습일까를 고민하며 그때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그 학생이 내게 던졌던 질문을 다시 생각한다.

"솔직히 이건 아니지 않아요? 왜 제가 여기서 멈춰야 해요?"

#학교#교사#학생#교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무해한 사랑을, 그런 사랑을 가꾸고 지키는 존재를 찾아다닙니다. 저를 통과한 존재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