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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여자중학교 3학년에 다니는 박지원 학생. 박 양은 지난 5월 7일 목포여중 3학년 전체 학생과 함께 ‘목포 오월길 걷기’ 행사에 참여했다.
 목포여자중학교 3학년에 다니는 박지원 학생. 박 양은 지난 5월 7일 목포여중 3학년 전체 학생과 함께 ‘목포 오월길 걷기’ 행사에 참여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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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 선생님과 동아약국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약국과 민주화운동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약사 일을 하면서 민주화운동을 하셨다고 해서 더 인상 깊었습니다. 허름하고 평범해 보이는 건물이 민주화운동의 산실이었다는 것도 놀랐습니다."

'목포 오월길' 탐방을 마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사적지나 인물을 물은 데 대한 박지원 양의 대답이다. 박 양은 목포여중 3학년에 다니고 있다. 박 양은 지난 5월 7일 목포여중 3학년 전체 학생과 함께 '목포 오월길 걷기' 행사에 참여했다.

행사는 전남서부보훈지청이 5·18민주화운동 44주기를 맞아 '모두의 오월, 하나되는 오월'을 주제로 목포지역 5·18현장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이날 전남5.18역사해설사 자격으로 조수경씨와 함께 해설을 맡았다.
  
지난 5월 7일 전남서부보훈지청 주관 '목포 오월길' 걷기에 참가한 목포여중 학생들이 목포근대역사관 2관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5월 7일 전남서부보훈지청 주관 '목포 오월길' 걷기에 참가한 목포여중 학생들이 목포근대역사관 2관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나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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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은 유달산 자락에 자리한 목포여중을 출발해 목포근대역사관 2관, 동아약국 옛터, 목포중앙교회 옛터, 중앙공설시장 옛터, 목포역광장을 돌아보는 순으로 진행됐다. 박 양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꼽은 동아약국은 80년 당시 재야인사들의 모임 장소로 자주 쓰였다. 70∼80년대 민주인사들이 수시로 모여 시국을 논의했던 곳이다.

목포근대역사관 2관은 당시 목포3해역사령부 헌병대가 자리했다. 붙잡혀 온 민주인사들이 구타와 고문을 당하고, 갇혀 지낸 헌병대 영창이 여기에 있었다. 목포중앙교회는 재야인사와 목사들이 모여 목포시민민주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시민 결의문을 채택하며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한 공간이다. 이 자리에서 약사 안철이 위원장으로 추대돼 목포의 5월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중앙공설시장은 상인들이 시민들에 김밥과 도시락·음료수 등을 제공하며 격려했던 곳이다. 목포역은 80년 5월 목포민주화운동의 심장부 역할을 했다. 목포역사 2층에 지도부를 갖춘 목포시민민주투쟁위원회가 설치되고, 역광장에선 날마다 수만 명이 모여 궐기대회를 열었다.
  
80년 5월 목포역광장에 모인 목포시민들. 목포의 시위는 광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진행됐다.
 80년 5월 목포역광장에 모인 목포시민들. 목포의 시위는 광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진행됐다.
ⓒ 목포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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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여중 학생 50여 명 가운데 해설사의 사적지 설명에 큰 관심을 보인 박지원 학생을 탐방 직후 만났다.

- 당시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은, 민주화운동을 강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경찰서장에서 쫓겨나고, 고문을 받고, 온갖 고초를 겪은 후유증으로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이 서장은 어떤 생각으로 그랬을까요?

"이준규 경찰서장님은 우리 국민과 시민을 가족으로 여긴 것 같습니다. 경찰서장님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강경 진압 명령은 같은 가족을 때리고 죽이라는 말과 같이 들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거부했다고 생각합니다."

- 학생이 당시 경찰서장이었다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저도 당연히, 제 가족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면 거부했을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마땅히 그랬을 것 같습니다."

박 양의 대답이 시원시원하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박 양한테 이준규 서장 이야기를 물어본 것은, 답사에서 학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광주 5.18민주묘지에 있는 안철의 묘. '목포 오월길' 걷기에 참여한 박지원 학생이 가장 인상 깊게 만난 목포의 민주인사이다.
 광주 5.18민주묘지에 있는 안철의 묘. '목포 오월길' 걷기에 참여한 박지원 학생이 가장 인상 깊게 만난 목포의 민주인사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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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학생이 당시에 대학생이나 어른이었다면 민주화운동에 참여했을까?

"참여했을 겁니다. 평소 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나 내용이 나올 때마다 생각해 봤는데, 제 생각은 확고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을 했을까?

"저는 겁이 많은 편입니다. 총칼 앞에 나설 용기는 솔직히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성격도 아닙니다. 관련 포스터를 붙이고, 저항하고 싸워야 한다는 글을 써서 나누고, 비폭력적이고 비교적 덜 위험한 운동을 했을 것 같습니다."

박 양이 뱅싯이 웃음 짓는다. 그 표정에서 진솔하면서도 진지함이 읽힌다.
  
5월 7일 '목포 오월길' 걷기에 참가한 목포여중 학생들이 목포중앙교회 옛터에 세워진 5.18사적지 표지석 앞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박지원 학생이 해설사 바로 앞에 서 있다.
 5월 7일 '목포 오월길' 걷기에 참가한 목포여중 학생들이 목포중앙교회 옛터에 세워진 5.18사적지 표지석 앞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박지원 학생이 해설사 바로 앞에 서 있다.
ⓒ 나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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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의 인식이 남다른데, 오월길 걷기 행사 좋았어요?

"아주 좋았고, 만족했습니다. 우리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질문과 함께, 사적지를 찾아다니는 체험 형식의 활동이어서 흥미롭게 참여했습니다. 사건이 아니고 사적지나 인물 중심으로,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내용을 알게 돼서 유익했습니다."

- 답사 전,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 선생님이 역사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도 그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중학교에서도 우리 역사에 대해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도 봤습니다. 전두환의 쿠데타에 누가 참여했고, 무슨 일을 했는지, 또 누가 어떤 도움을 줬는지 알게 됐습니다. 흥미롭게 봤습니다."

- 목포와 무안·영암 등 전남지역에서도 광주와 함께 민주화운동 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겠는데?

"무안과 영암까지는 몰랐고, 목포는 알고 있었습니다. 거리에서 민주화운동 표지석을 봤습니다. 광주만의 민주화운동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우리학교 부근에 5·18사적지가 있다는 것도 2학년 때 알았습니다. 이번 답사로 자세히, 정확히 알게 됐습니다."
  
5월 7일 '목포 오월길' 걷기에 참가한 목포여중 학생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목포역광장에 새겨진 표지석을 보고 있다.
 5월 7일 '목포 오월길' 걷기에 참가한 목포여중 학생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목포역광장에 새겨진 표지석을 보고 있다.
ⓒ 나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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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민주주의가 있기까지 많은 시민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기억하고 행동할 생각인지?

"앞으로도 관심을 많이 가질 생각입니다. 학교에서 또 다른 데서도 배울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고 공부도 하겠습니다. 그것이 쌓이면 자연스레 잊지 않고 기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학교 친구와 후배들도 함께할 수 있도록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나중에 안 사실, 박 양은 목포여중 학생회장을 맡고 있었다).

- 끝으로 관심 분야, 아니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궁금한데?

"교사나 방송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도와주는 걸 좋아했습니다.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습니다. 의논하고 회의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좋아합니다. 방송 작가나 프로듀서도 되고 싶습니다."
 
'목포 오월길' 걷기에 참가한 목포여중 학생들이 목포중앙교회 옛터를 돌아나오고 있다. 지난 5월 7일이다.
 '목포 오월길' 걷기에 참가한 목포여중 학생들이 목포중앙교회 옛터를 돌아나오고 있다. 지난 5월 7일이다.
ⓒ 나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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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목포오월길, #박지원, #전남서부보훈지청, #목포여자중학교, #목포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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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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