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직장 생활이 거의 끝나가던 작년 말, 나의 머릿속에는 퇴직 후엔 아무것도 안 하고 한동안 푹 쉬어보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한 편으로 지금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해왔으니, 일을 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하나는 빵을 굽는 일이었다. 빵을 맛있게 구워서 이웃과 나눠 먹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또 하나는 목공 기술을 배워보고 싶었다. 집에서 이것저것 필요한 수납함이나 의자는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사실 나는 올해로 만 61세이니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이다. 다들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내게, 자격증이나 필요한 사회봉사 활동을 시도해볼 것을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일보다 다른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더 컸다. 조금 더 자유롭고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런 마음에 그동안 하고 싶었던 목공 일을 수강하기로 하고 서울 서대문 가좌동 한 목공 학원에 지난해 말 등록했다.
목공 학원에 등록하기 전, 이왕 배우는 김에 자격증을 따고자 목공예 필기시험에 응시한 것이 덜컥 합격이 되었다.
목공 일을 처음 하니 모든 게 서툴고 느리다. 톱날이나 대팻날, 끌을 사용하는 모든 과정이 자칫 잘못하면 손을 다치기 쉬워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몇 번이나 안전에 대한 당부를 받고 또 조심스럽게 목공 작업을 한다.
처음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시작했던 것이, 생각과 다르게는 목공예 실기시험 준비로 변했다. 실기시험을 보려면 자체 목공구를 가지고 손에 익혀야 해서 공구세트를 사고, 매주 2회씩 집중하여 준비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실기시험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다시 시험에 도전할까 하다가, 결국은 일단 기술만 배우는 쪽을 택했다. 지금까지 나를 욱죄고 채근하여 온 직장 생활이었는데, 또다시 배움보다 시험 합격에 목표를 두자니 생각과 다르게 크게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목공의 기본은 톱질... 모든 건 기본이 중요하다
이번에 느낀 것이지만 목공의 기본은 톱질이다. 목공 도구 중 가장 많이 쓰는 게 톱이다.
옛말에 "슬근슬근 톱질하세"라고들 표현하는데, 목공을 배운 뒤 이제야 안 사실이 있다. 톱질을 직접 해보면서 느낀 것이, 아주 전문적인 기술이 몸에 배어있어야만 '슬근슬근 톱질'이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톱질 자체가 서툴기에 연필 선을 따라 톱질이 되질 않는다. 톱날이 끼어 뻑뻑해 잘못 자르기도 하고, 자칫 잘못하면 표시 선을 넘어 삐뚤빼뚤 나무를 자른다.
여기선 주로 직선을 자를 때 사용하는 등대기톱을 사용한다. 둥글게 자르거나 곡선 작업에는 실톱을 사용한다.
한편 작은 수납함을 만들 때도, 가능한 못을 사용하지 않고 맞춤 작업으로 수납함을 만든다. 나무판을 단단히 연결하려고 주먹장부나 사각 장부를 만들고 목재를 맞추는데, 이렇게 실생활에 사용되는 목재의 맞춤 기법은 생각보다 많아서 배우려면 그것도 만만찮다.
톱질이 정확하게 되면 나무판을 조립할 때 서로 잘 맞추어져 결과물이 튼튼히 완성된다. 이럴 때면 참 기쁘다. 하지만 톱질이 정확하지 않으면 잘 맞지 않거나 틈이 생긴다.
모든 일은 기본이 잘돼야 하는 것이구나, 목공을 하면서 이런 삶의 원리를 다시 되새기게 된다. 그래서 목공을 시작하기 전엔 꼭 톱질로 손과 몸풀기를 한 후 목공일을 한다.
퇴직 후에 무슨 일을 할까 생각하다가 선택한 게 목공 일이다. 이 일이 나에게 어떤 기회를 더 제공할지 모를 일이다.
인생의 전반전을 부지런히 달려왔다면, 이제는 잠시 여유를 갖고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퇴직 후를 설계하고 싶다. 앞으로 잠들었던 나의 꿈들을 하나씩 펼쳐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