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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를 위해 2~3분 간격으로 먹이를 물어 나른다.
▲ 택배상자 제비집 01 새끼를 위해 2~3분 간격으로 먹이를 물어 나른다.
ⓒ 최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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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보니 어미 제비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장면이 보였다. 보통 제비집은 내 키보다 높이 달려 있는데, 내 눈앞을 지나가는 어미가 보였다. 택배 상자에 제비집이 담겨 있다. 일주일만 더 자라면 혼자 날 수 있을 정도의 새끼 제비도 네 마리나 보였다.

버스 정류장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지나다녀도 어미 제비는 먹이를 물어 나르느라 바쁘다. 근처에 주차해 놓은 차에서 망원 렌즈를 꺼내, 신비한 장면을 촬영할 준비를 마쳤다.

삼각대를 설치하고 600밀리 망원 렌즈를 올려놓았다. 촬영 준비를 마치고 둥지로 날아 들어오는 어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길을 가던 이들은 택배 상자 속 제비집 보다, 커다란 카메라를 지키고 있는 내가 더 신기하다는 표정이다.
 
하루에 200회 정도 먹이를 물어 나른다.
▲ 택배상자 속 제비집 02 하루에 200회 정도 먹이를 물어 나른다.
ⓒ 최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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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70대로 보이는 분이 제비집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제비집을 능숙하게 둘러 본 후, 나에게 다가와 머뭇거렸다. 평소 '관종' 기가 있던 내가 먼저 말을 건넸고, 길에서 만난 사람의 답변이 이어졌다.

"제비 촬영하고 있어요. 택배 상자 안에 있는 제비집 처음 봐서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비집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어서 상자에 담아 올려놨어요."
"바닥에 두면 고양이가 건드릴까 봐 기둥에 고정해 높여놓은 거예요."


제비 생태를 잘 아시는 분이다.

"어릴 적에 어머님이 제비를 잘 돌보셨어요. 매일 똥도 치워주시고. 제비에게 잘해야 복 받는다고 늘 말씀 하셨죠."
"같은 제비인지는 몰라도, 매년 우리 집에 둥지를 틀어 틀었어요. 매년 찾아오는 게 신기했죠."
"어머님 돌아가시고, 제비도 안 찾아오더라고요. 떨어진 제비집을 보니 어머니 생각이 나서……."


'흥부' 같은 선행을 굳이 어머님 은덕으로 돌리는 말을 남기고 버스에 오르셨다.

생존 위협을 받는 제비
 
제비도 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 제비 제비도 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 최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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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는 우리 주변에 흔한 새였다. 사람의 마을을 찾아와 한 지붕 가족처럼 지내던 친구는 도시에선 볼 수 없게 되었다. 매년 봄이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와 처마마다 둥지를 틀어 검은 양복을 입고 손님을 가장 먼저 반겨주던 우리 친구 제비에게 어떤 일이 생겼을까?

이에 대한 해명은 수천 년 전 인간과 제비의 잘못된 만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제비는 천적을 피해 인간과 공생에 도전하였다. 불필요한 살생을 하지 않는 한민족의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 훌륭히 새끼들을 길러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요즘은 처마 있는 집을 짓지 않는다. 아파트만 가득하다.
하루살이, 잠자리와 같은 먹이도, 먹이를 사냥하던 논도 없어지면서 우리나라를 찾는 제비의 삶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있다.

공존을 꿈꾸며 인간에게 당당히 다가와 수천 년을 함께 살아온 제비는 인간의 변심 때문에 생존의 위협을 겪고 있다.
 
진흙을 물어다 침과 섞어 집을 만든다
▲ 진흙이 필요해요 진흙을 물어다 침과 섞어 집을 만든다
ⓒ 최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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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가 둥지를 틀거든

제비에게는 좋지 않은 버릇이 있다. 다른 새들은 번식 둥지 근처에 새끼들의 배설물을 두지 않는다. 모두 입으로 물어다 멀리 내다 버린다. 배설물은 뱀이나 쥐와 같은 천적이 둥지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둥지 근처에다 아무렇지 않게 배설을 하는 어미, 둥지에서 엉덩이만 내밀어 용무를 해결하는 새끼 제비들도 부전자전이다.

다른 새들에겐 이런 행동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불장난 같지만, 제비의 게으른 배설 행위는 매우 자연스럽게 계속된다. 남의 집에서 이런 지저분한 행동을 하여도 집주인은 배설물 받침대까지 설치해 주며 제비를 보호해 준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제비는 행운의 상징이며 모기와 같은 해충을 잡아먹는 이로운 동물로 배웠기 때문이다.

사람 때문에 쥐나 뱀 같은 천적들이 얼씬거리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제비는 할아버지 홀로 사시는 너무 적막한 집에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 화복하고 항상 웃음이 넘치는 다복한 집에 둥지를 튼다.

예전에는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아무 집에나 둥지를 틀었겠지만 요즘 시골에는 노부부만 단둘이 사는 집이 많아져서인지 평범한 농가보다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마을회관, 기름집, 식당, 미용실 등에 둥지를 많이 튼다. 입구에 제비가 둥지를 튼 식당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맛집'이라 생각해도 틀림없다.
 
처마 밑에 둥지를 짓는 제비
▲ 제비집 처마 밑에 둥지를 짓는 제비
ⓒ 최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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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를 위하여, 우리는? 

이제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잡식동물 '호모 사피엔스'는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지구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1회용품 안 쓰기, 손수건 사용하기,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같은 '불편한 약속'을 한 가지씩 실천하는 것이 오랜 친구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태그:#제비, #숲에서생명을만나다, #생태학자, #최한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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