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끔, 남편 퇴근 하는 시간에 맞춰 맨발 걷기를 한다. 자연 친화적인 양산 황산공원에 수개월 전 맨발 산책로를 조성했는데 황톳길이다. 폭 1.5m, 길이 1.4km로 황산캠핑장에서 낙동강교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다. 꽤 긴 편이라 왕복으로 오가면 제법 운동 효과가 크다.
처음엔 수많은 사람들의 발이 닿는 황톳길이 어쩐지 내키지 않아 걸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봄, 벚꽃 필 무렵부터 개장 된 맨발 걷기 길을 얼마 전부터 걷기 시작했다. 시작되는 지점에는 수도 시설과 신발장까지 구비되어 있어 편하다.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올려 놓고 맨 발로 황토 흙을 밟을 때 그 첫 느낌은 자유로움이었다. 발이 신발에서 해방되어 땅과 접촉하는 시간... 싱그러운 오월의 바람이 발에 와 닿았고, 오후의 햇살이 닿았다. 신발에서 해방된 발이 황톳길에 닿은 그 느낌이 참 좋았다.
흔히 발의 기능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체중을 유지하고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키는 도구로 생각한다. 하지만 '발에는 중요한 한 가지 기능이 숨어 있다'고 한다. 그것은 '걷기의 혈액펌핑 기능'이다. 걸을 때 발을 땅에 디디면 몸의 중량으로 발에 분포된 혈관이 수축되고, 발을 땅에서 떼어 들어올리면 그 누르는 힘이 없어져 혈관이 팽창되는 원리다.
그러니까 이 발바닥 혈관의 수축과 팽창의 반복작용으로 혈액이 발바닥에서 심장으로 다시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발은 제2의 심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옛말에 '하루 12번씩 맨발로 문턱을 디디고 넘으면 오래 산다'는 말도 있다.
맨발로 걸으니 발이 가볍고 자유로웠고, 걷고 나서 발을 씻을 땐 시원했다. 더 시원한 것은 발을 씻고 난 후였다. 다시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었음에도 불구하고, 발이 땅과 접촉하고 난 뒤에 한참 동안 발 밑이 후끈거렸고 혈액순환이 잘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손발이 찬 편이라, 겨울이 되기도 전에 추위를 타는데, 한참 동안 발 밑이 가벼우면서도 후끈한 느낌.
생각해보면 현대인들은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자연과 멀어졌고, 맨발을 땅에 딛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걷기보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고, 흙과 땅을 밟는 시간보다 아파트나 빌딩 숲에 살면서 포장도로를 걷고 땅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며칠 전, 가까운 디자인공원을 산책을 하다가 숲속 한 곳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발을 넣고 서 있는 사람들을 만났었다. 왜 그러고 있냐고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그게 더 효과가 많단다.
디자인공원 숲길은 우거진 숲과 상쾌한 바람이 있고 오르막 내리막 길이라 좋다. 황산공원 맨발 황톳길은 탁 트인 공간에서 걷는 즐거움이 있었다. 처음 걸을 땐 발바닥이 아파서 애를 먹었는데, 서너 번 걷고 보니 이젠 발바닥도 적응이 꽤 되었는지 느긋하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햇볕과 공기와 비가 있어야 살 수 있듯이, 인간은 땅을 딛고 살 때에만 건강한 존재로서 생활할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다. 나날이 푸르고 싱그러운 계절, 곧 뜨거운 여름이 오겠지만 아직 가끔 이는 바람은 상쾌하고 벗은 발은 자유롭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숲에서 살아가는 나날들, 가끔 신발 속에 갇혀 있는 발을 자유롭게 해 주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맨 발로 걷는 이런 시간을 가끔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