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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작년 초 같은 국어교사이자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이야기가 나왔다. 지인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감동을 주는 글을 기고할 뿐만 아니라, 글쓰기 수업에서도 학생들에게 <오마이뉴스>를 이용해 동기부여를 하며, 실제로 가르치는 학생이 시민기자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하기도 했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정말 대단하다, 부럽다!' 였지만 이내 곧 '좋은 것은 따라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지인과 헤어지자마자 시민기자에 도전했다. 호기롭게 시작한 것과 달리 작년 한 해 동안 네 편의 글을 기고했다. 하지만 학생에게 보여줄 예시가 생긴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아이들에게 사는이야기를 소개하다

드디어 올해 글쓰기 시간. 수업 첫 시간에는 학생들에게 글쓰기 과정을 교과서를 이용해 간단히 설명하고, <오마이뉴스>의 사는 이야기 코너를 보여줬다. 나의 기사와 그 기사를 통해 얻은 원고료를 보여주니 예전 글쓰기 수업과 달리 눈을 반짝이는 학생이 더 많아 보였다. 수행평가이기도 해서 모두 글을 쓸 것이고, 글을 완성한 후에 신문에 기고하길 원하면 선생님과 함께 글을 더 다듬어 보자 했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 ⓒ 김소영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들어갔다. 주제는 삶을 성찰하는 글쓰기(수필)로 그동안 살아오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경험 다섯 개 정도를 떠올리도록 했다. 그중 하나를 선택해 마인드맵으로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세세하게 적도록 했다. 물론 학생들이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시범을 보여 준다.

"샘은 외할머니에 관한 글을 쓰려고 해. 외할머니는 부잣집 막내아들인 외할아버지와 결혼했어. 그런데 외할아버지가 노름으로 모든 재산을 탕진한 바람에 굉장히 가난하게 살아야 했지. 하지만 가난이 끝이 아니었어. 외할머니에겐 딸인 우리 엄마와 삼촌인 아들이 있었는데 자식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우리 엄마는 이혼 후 우리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삼촌은 몸이 아파 평생 투석을 하며 살게 됐지. 외할머니는 결국 위암에 걸리셨는데, 수술한 지 1년 만에 고통 속에서 결국 돌아가셨어.

샘은 그 후 몇 년이나 외할머니 얘기를 하지 않고 납골당에 가지도 않고 외면한 채 살았어. 외할머니는 나에게 엄마이자 아빠였거든. 사람이 너무 슬프니깐 회피하게 되더라. (중략) 암튼, 슬픔은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닌 거 같아. 옅어지긴 하지만 평생 마음속에 남아있지.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있을 때 잘하자는 깨달음도 얻었어."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칠판에 마인드맵을 두서없이 그려나갔다. 이 외할머니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기고했단 얘기도 덧붙이면서.

[관련기사 : 할머니가 나의 딸로 태어나길 염원했다]

신기하게도 이 이야기를 할 때면 거의 모든 학생이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준다. 사실 이 경험은 실제로도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사건이었고, 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금세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교사가 눈물 참는 수업 시간

마인드맵 작성을 마치고 이제 너희들이 직접 해 보라면서 모둠을 순회했다. 한 모둠 앞에 섰는데, 평소 초등학생 같은 장난을 잘 치던 정우가 마인드맵이 그려진 칠판을 유심히 보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선생님 할머니의 인생은 안 좋은 것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는 거 같아요."
"그래? 우리 할머니는 뭐가 좋았을까?"
"선생님 같은 손녀가 있는 건 진짜 좋은 일이잖아요."
"정우야, 너는 정말 말을 예쁘게 하는구나."


이제 날 만난 지 겨우 두 달이 되어가는 아이가 수업 시간에 이렇게 나를 울린다. 쏟아지려는 눈물을 겨우 참으며 황급히 손을 든 다른 학생에게로 가 질문에 답했다. 정우 같은 생각을 속으로 할 순 있지만 저렇게 순수하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중학교 3학년 남학생에게 쉬운 일이 아니리라.

바로 다음 시간 다른 반에 가서 똑같이 이 수업을 하는데, 평소에도 마음이 곱다고 생각했던 하얀이가 이야기 중반부터 눈물을 글썽인다. 눈이 마주치면 나도 울어버릴 거 같아 애써 다른 아이들을 보며 겨우 설명을 끝내가는데 하얀이가 결국은 대성통곡을 하며 엉엉 울어버렸다.

"아니, 왜 우는 거야?"
"야, 저것이 공감이라는 거야. 공감!"
"하얀이는 에프잖아, 에프!"


이 상황에서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웃고 재잘거린다. 나도 하얀이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정말 공감을 잘한다고 칭찬하면서, 우스갯소리로 우리 하얀이 요새 힘든 일 있니 하며 아이가 눈물을 그칠 수 있도록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글쓰기를 어려워 하고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조금 더 흥미를 끌어보겠다고, 같이 시민기자가 되어 원고료를 벌어 보자며 아이들을 독려하려다가 도리어 내가 아이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학교 현장이 녹록지 않다는 것은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얘기지만, 저렇게 드라마 같은 순간이 펼쳐지는 이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순수한 영혼들과 매일매일을 함께 하고, 예상치 않은 순간 그들에게 위로까지 받다니.

돈 버는 직장이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다. 몇 명이나 <오마이뉴스>에 글을 기고할지 모르겠지만, 이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글쓰기수업#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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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이 비상합니다. 천성이 게을러 대충 쓰고 대충 가르치고 대충 돌보며 살아갑니다. 이 와중에 영생을 꿈꾸고, 나를 위해 모두가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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