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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 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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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 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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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이화여대 학관에 이어 포스코관에 붙은 대자보가 눈길을 끌었다. 한 장은 주민현 시인의 시 구절 '네가 신이라면 너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하나의 귀'로 시작하고 나머지 한 장은 의사이자 철학자인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의 글 'I'm not the slave of the Slavery that dehumanized my ancestors: 나는 내 (흑인) 조상들의 존엄성을 말살시킨 노예제도의 노예가 아니다'로 시작한다.

익명의 글쓴이는 5월 셋째 주에 열린 채플(기독교 예배)에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채플 시간에 상영된 '배꽃요정' 영상에 적잖이 실망을 하고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영상은 김이화라는 학생이 배꽃요정과 함께 시간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을 통해 여성교육의 장, 기독교 대학으로서 이화의 정체성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글쓴이는 이 영상의 주제가 고결한 기독교 정신을 가진 백인들이 미개한 한국 여성을 '구원'하기 위해 학교를 세웠으니 그 혜택을 받은 이화인들은 감사해야 하고 기독교 정신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하느님을 앞세운 시대착오적인 식민사관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또한 과거 미국의 인디언 학살과 흑인 노예제도, 유럽의 제국주의와 식민지 건설, 오늘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자행하고 있는 전쟁과 학살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하느님'을 내세우며 정당화한 역사가 과연 기독교 정신의 본질에 부합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왜 이화의 정체성과 자부심이 백인들의 선교와 기독교로 한정되는 하느님의 뜻에만 있어야 하느냐'고 비판한다. 지극히 이분법적이고 계몽적인데다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대자보 마지막에 전체 이화인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변할 수 없는 과거를 붙잡고 성물로 박제해 그 속에 갇혀 살아가는 이화를 만들 건가요? 혹은 뒤를 돌아보고, 앞을 내다보며, 지금 이 자리에서 세상을 바꾸실 건가요?"
 
이화여대 교육목적과 교육목표
 이화여대 교육목적과 교육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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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오래전에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1학년 신입생 시절, 본관 옆 캠퍼스 가운데 자리잡은 커다란 김활란 동상을 보며 한참 동안 학교 설립자로 알고 지냈었다. 거의 1년이 지나서야 설립자는 다른 사람인 것을 알게 됐다. 설립자는 미국인 메리 스크랜튼 부인이고 김활란은 이화여대 최초의 대학졸업자이자 이화여전 교장으로서 7년, 이화여대 총장으로서 15년을 재임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특이하게도 설립자인 스크랜튼 여사 흉상은 김활란 동상보다 훨씬 작은 크기로 이대 헬렌관 앞에 있고 이화학당 교장이었던 아펜젤러 흉상은 후문 학관 옆에 있다.

활란은 기독교 세례명 헬렌의 한자어다. 본관 옆 중앙도서관 가는 길에 과거 도서관이었던 헬렌관이 있어 이 또한 김활란을 기념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화여대 최고 장학금 이름도 김활란의 호인 '우월(又月)'을 딴 우월 장학금이다. 그밖에도 각종 세미나와 기념행사를 통해 김활란을 기억하고 있다.

이 정도면 학교를 국내적으로 전통 사학 명문 중 명문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여자대학으로 발전시킨 초대총장을 신화적 인물로 기리는 데 부족함이 없겠다. 일반적으로 대다수 사립대학체제에서 개인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설립자의 신화'(김일환, 2022, '한국 사립대학체제의 형성과 재단법인의 정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학위 논문)가 있기 마련인데, 이화여대는 설립자가 아닌 초대총장의 신화가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 색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김활란의 성공 신화에는 기독교 정신을 앞세운 친일·친미행적과 함께 이승만부터 박정희에 이르는 독재정권과 유착된 불편한 진실이 존재한다. 재미학자 박해성(Haesung Park)은 자신의 논문 'Christian Feminist Helen Kim and Her Compromise in Service to Syngman Rhee'에서 김활란은 기독교 페미니스트(Christian Feminist)이며 미군정을 거쳐 한국전쟁과 그 이후로도 이승만이 정치적 목적으로 여성들을 이용할 때 적극적으로 도왔다고 주장한다.

이화여대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은 이러한 김활란의 친일행적을 비판하면서 동상철거로 대표되는 친일청산 운동을 벌였다. 1990년대 민주화 흐름에 맞물려 처음 제기된 친일청산 요구가 1998년 학교 당국이 '우월 김활란 상'을 제정하려고 할 당시에는 학내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공동대책위를 꾸릴 만큼 반대 투쟁이 거세게 일었다. 그 뒤로도 2005년, 2013년, 2016년 여름, 이대 본관농성 과정에서 최순실 딸 정유라의 부정입학이 탄로되어 탄핵촛불집회로 이어지는 국면에서도 김활란은 다시 소환됐다.
 
김활란 동상
 김활란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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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불과 몇 개월 전,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김활란의 친일행적과 반여성적 친미행각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른다. 경기 수원정에 출마한 역사학자 출신의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후보가 과거 한 유튜브 방송에서 '김활란 이화여자대학교 초대 총장이 미군정 시기에 학생들을 미군 장교에게 성상납시켰다'고 한 발언이 밝혀지면서 한바탕 시끄러워진 것이다.

'미군정 시기에 학생들을 미군 장교에게 성상납시켰다'의 근거는 바로 '낙랑클럽'을 가리킨다. 낙랑클럽은 미국 정보기관인 CIC 비밀문서에 나왔듯이 김활란이 대표로 있었고 시인 모윤숙이 운영했으며 영어가 가능한 당시 이화여전 출신으로 구성된 미군 및 외국인 대상 사교클럽이다.

한국전쟁 중 임시 수도였던 부산에서도 운영되었는데, 실제로는 사교·위문 뿐만 아니라 매매춘이 이뤄졌으리라는 기록이 나온다. 재미학자 박해성과 헨리 임 등 여러 연구 논문에는 낙랑클럽은 기생파티(gisaeng parties)를 하는 곳으로 나와 있다.

논란 이후 김 후보는 자신의 '성상납' 발언을 사과했지만, 이화여대 총동문회가 성명서를 내고 후보 사퇴를 촉구하는 대규모 교내 집회를 여는가 하면, 김 후보를 옹호하는 인사와 단체의 맞불 기자회견이 열리는 등 공방은 지속됐다. 경기도에 출마한 이대 출신 한 후보는 김 후보를 맹비난하며 유세에서 김 후보의 발언을 겨냥해 '미군에게 성상납을 한 이대 출신입니다' 로 자신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두 후보는 모두 당선되었다.

성명과 기자회견에서 나타난 쟁점 중 하나는 '낙랑클럽'이 언제까지 존재했냐는 것이다. CIC 비밀문서에 따르면 해방 후 1948년 말 혹은 1949년쯤부터 사회단체로 등록돼 1953년 휴전 후 미군정이 끝나면서 해체됐다.

그러나 맞불 기자회견을 주도한 고은광순씨가 1950년대 중반,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자신의 이모가 단체미팅으로 만난 미군과 함께 찍은 사진을 기억한다고 하면서 낙랑클럽이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 정권기에도 이어졌을 것이라는 추론을 내놨다. 이때 고은광순씨가 기자회견 중 개별 발언 시간에 자신의 이모 입학년도를 1948년으로 잘못 말했는데, 이대 정외과 총동창회는 입학년도를 1956년도로 확인하면서 고은광순의 주장을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에서는 미군정기가 1953년 끝난다고 하면서 낙랑클럽의 해체를 암시하는 문장이 등장한다. 낙랑클럽이 언제까지 존속되었는지 등 정확한 사실관계는 앞으로 누군가가 밝힐 과제일 것이다.

초대총장 김활란은 일제강점기 정신대 동원 연설부터 미군정 시기를 거쳐 이승만 정권 그리고 박정희 정권까지 계속해서 권력의 양지만을 지향한 인물이다. 그는 친일파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수많은 여성 제자들을 학교 발전의 단순한 도구로 이용했다. 그가 평생에 걸쳐 보여 온 반민족·반민주·반여성 행태를 직시하면 기독교 정신으로 식민지 여성을 계몽·교화시켜 사회적 지위 향상에 기여했다는 사실만을 강조하는 각계의 찬양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다시 두 장의 대자보로 돌아가 보자. 대자보를 쓴 이는 김활란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는다. 다만, 먼저 졸업한 사람들의 의식과 기억을 작동시키기에는 충분하다. 글쓴이의 질문과 문제의식은 하느님과 기독교 정신을 앞세워 과거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약소국과 그 인민들에게 가했던 반인륜적이고 반역사적 과오를 정당화시키는 것이며 더 나아가 국가적 차원 뿐만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 그러한 정당화를 수용하고 내면화시키길 강요하는 데 있다.

이화여대는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여성지도자 양성과 여성교육의 산실로서 자부하고 있음은 자명하며 누구도 이를 부정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학교 성장과 발전에 드리워진 흑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적어도 '배꽃요정' 영상을 틀게 만든 차원에서는 찾기 힘들어 보인다. 그들 대다수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와 고민이 부족하며 또한 현재 사회와 그리고 이화 구성원을 너무 안이하고 편향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인 것 같아 씁쓸하다.

2013년 철거 요구가 쓰인 포스트잇으로 뒤덮이고 2016년 페인트칠과 달걀로 더럽혀진 수난을 겪은 후에도 2024년 6월, 김활란 동상은 여전히 캠퍼스를 바라보며 당당하게 서 있다.

태그:#기독교정신, #김활란, #낙랑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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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상식적인 나라에서 살고 싶은 이 땅의 평범한 여자 사람이자 민주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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