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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5월 29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세사기피해자법 개정안 재의 요구 브리핑을 하고 있다.
▲ 브리핑하는 박상우 장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5월 29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세사기피해자법 개정안 재의 요구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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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님 안녕하세요.

주택가격이 오르면 오르는 대로, 내리면 내리는 대로 바람 잘 날 없는 국토부의 수장을 맡으셔서 노고가 많으십니다. 박근혜정부부터 문재인정부까지 LH사장을 맡고, 윤석열정부에서 국토부장관을 맡은 것은 정치인이 아닌 관료 출신으로, 정파적이지 않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업무를 처리해오셨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최근 KBS <일요 진단 라이브>에서 현재 전세가 상승의 원인이 현정부의 '신생아 특례 대출'로 인한 과도한 전세자금대출의 영향이 있지 않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상당히 일리가 있다'는 장관님의 소신 발언은 정파성이 아닌 합리성 중심으로 사고해온 장관님의 행보와 어울려보였습니다.

전세가격급등 원인 진단, 절반의 정답

KB경영연구소에서 발간한 '전세자금대출 증가에 따른 시장 변화 점검(2022.04)' 보고서에서는 전세자금대출의 급격한 증가가 전세가격과 주택가격 상승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장관님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자료입니다.

특례보금자리론, 특례신생아 대출 등과 같이 가계부채를 늘리는 주택정책은 언발에 오줌누기식 대증요법으로 중장기적으로는 서민들의 주거불안을 심화시키고 대한민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될 것입니다. 장관님도 이런 우려를 가지고 있기에 신생아특례대출이 윤석열정부의 정책이지만 이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신 것으로 짐작합니다.

초저금리의 전세자금대출과 시장참여자의 도덕적 해이를 일으킬 수준의 전세보증보험 등 정부의 과도한 전세제도에 대한 인센티브가 전세가격을 끌어올리고 전세사기와 같은 피해를 일으키는 것을 감안할 때 장관님께서 제대로 된 관점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주시길 기원합니다.

하지만 저리의 전세자금대출 외에 전세가격 급등에 대한 원인 진단에 있어 갸웃거리는 지점도 없지 않습니다. 장관님께서는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 전세 수요가 아파트로 넘어간 점과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여 사실상 임대차계약이 4년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지난 1년간 서울 자치구별 아파트 전세가격 상승률이 높은 지역은 성동구, 송파구, 양천구 등 전세사기와 거리가 먼 자치구입니다. 만약 전세사기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면 전세사기가 많이 발생한 강서구와 같은 지역의 아파트 전세가격이 더 높아야 하지 않을까요? 저층주거지 거주비용과 아파트 거주비용의 차이가 꽤 큰 상황에서 저층주거지 거주자의 소득수준과 대출여력으로 아파트로 이사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출처 : 한국부동산원 전세가격지수
▲ 서울 자치구별 아파트 전세가격 상승률(2023.5 - 2024.4) 출처 : 한국부동산원 전세가격지수
ⓒ 이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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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갱신청구권 1회 허용으로 인해 4년 단위 임대차계약이 되어 전세가격이 올랐다는 주장도 의아합니다. 전세가격이 급락하던 2022년 하반기부터는 지금처럼 갱신이 아닌 신규 전세계약을 하는 전세물량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사실상 임대차 계약이 4년으로 늘어났는데 왜 전세가격이 하락했을까요? 장관님의 논리대로라면 다시 임대차 기간을 1990년 이전으로 돌려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면 전세가격이 더 안정되지 않을까요?

OECD 국가 중 주거복지 선진국들은 임차인들이 원하는 만큼 거주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으며 임대료 상승률을 물가와 연동시키거나, 해당 주택의 품질 등과 연동시켜 임대료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임대차 보장기간이 2020년 2년+2년으로 늘어난 것은 1990년 2년 보장에 이어 30년 만에 임차인 주거안정의 측면에 있어 대한민국이 힘겹게 진일보한 성과입니다.

민간 임대차 시장을 합리적인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임차인의 안정적인 거주기간은 늘리되 현행 5% 상승률 규제를 임대료의 물가 연동 또는 주택의 품질에 따른 조정 등의 방안이 필요합니다.

장관의 바른 말본새 : 국민 탓이 아닌 정부 탓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정치인 출신이 아니어서 그런지 장관님께서는 말의 무게를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전세가격 급등 원인에 대해 정부가 제공한 저리의 전세자금대출이라는 진단을 하고 소신발언을 하면서도 전세 세입자들이 정부 저리대출을 사용해 '15평 집에 전세를 얻어야 될 거를 20평 집에 사는 과소비 현상도 있지 않을까' 한다며 전세 세입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뉘앙스를 보였습니다. 

지난 5월 기존에 비해 꽤 진전된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대책을 준비하면서도 전세를 얻는 청년들이 '덜렁덜렁 계약을 했'다고 표현하면서 청년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발언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을 보니 관료로서는 합리적인 판단은 하지만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말하는 법은 다소 미숙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국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의 어법은 장관님이 추진하고픈 전세제도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은 제도의 틀 내에서 각자에게 유익이 되는 최선의 방안을 찾습니다. 정책을 활용해 자신에게 최선의 주거서비스를 찾는 국민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 애시당초 정책을 그렇게 만든 정부를 돌아보고 제도 개선 방안을 찾는 것이 전세가격 급등에 대한 최선의 문제해결 방식입니다.

간담회나 인터뷰 등에서 정책에 대해 말씀하시기 전에 '비가 와도 내 탓인 것 같고 비가 안 와도 내 탓인 것 같다'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기억하신다면 말실수를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말실수를 줄이고 정부의 전세제도 인센티브를 줄여서 대한민국 주택문제를 2차방정식에서 3차방정식으로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전세제도를 제대로 풀어 주시길 기원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대한민국 주거정책사에 한 획을 긋는 업적으로 남을 것입니다.

태그:#신생아특례대출, #전세가격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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