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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보험 없는 주부들이 쓰는 '점을 찍는 여자들'은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그 무엇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여자들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언니, 안 창피하겠어?"

몇 년 전 삼계탕집에서 홀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하자 친하게 지내던 동네 엄마가 보인 첫 반응이었다. 

"내가 뭐 나쁜 일 하는 것도 아니고 창피할 게 뭐 있어?"
"아니.... 그러다 아는 엄마라도 만나면 어떡해..." 


그 반응을 이해하기도 한다. 내가 사는 신도시는 공무원이 직업인 사람들이 많았고, 여자들도 사회적 기준으로 '있어 보이는' 직업이거나 아예 전업주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친구 역시 전업주부였고, 같은 외벌이인데도 다른 엄마들은 도대체 돈이 어디서 나길래 저렇게 펑펑 쓰고 다니는지 궁금하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방송작가지만 알바도 합니다 

나 역시 '방송작가'라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직업 덕에 대외적으로는 조금 '있어 보이는 엄마'였다. 하지만 남들에게 드러내지 못하는 속내는 달랐다. 들어오는 돈은 늘 부족했고, 세 아이가 자라면서 필요한 돈은 점차 많아졌다.

남편도 불안한 1인 사업가였고, 당시 내가 하는 라디오 작가 일로 버는 돈은 월 2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대신 방송사의 배려로 출근을 안 한다는 장점이 있었기에 이 시간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삼계탕집 홀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세 시간. 아이들이 학교에 간 시간을 활용했다가 집에 와서 아이들을 돌보며 원고를 써도 충분하기에 제격이다 싶었다. 창피하지 않겠냐는 친구의 반응에 공감하면서도 창피할 여력 따위는 없었으며 선입견이 없는 내가 일견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삼계탕은 뚝배기에 담겨야 제맛!(일하는 사람은 조금 더 힘들다)
▲ 삼계탕 삼계탕은 뚝배기에 담겨야 제맛!(일하는 사람은 조금 더 힘들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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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이후 처음 하게 된 서빙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테이블 번호는 시간이 지나면서 금세 익혔고, 무겁고 뜨거운 뚝배기를 나르는 일도 어느새 요령이 붙었다. 11시 반부터 오후 1시까지만 손님들로 붐볐다. 오후 2시 퇴근 전까지 테이블을 정리하고 다른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면 끝이다. 그렇게 해서 하루 3만 원, 한 달에 60만 원을벌었다. 없는 살림에 이게 어디냐 싶었다. 

일이 점차 손에 익자, 홀 직원 세 명이 교대로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기로 했다. 설거지야 주부로서 늘 하는 일이니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처음으로 설거지를 하는 날, 예상치도 않은 생각이 떠오르면서 내 안의 설움이 북받치고 말았다. 

'이 손이, 글 쓰는 손인데 말야. 이렇게 설거지나 할 손이 아닌데...' 

뚝배기는 그 특성 때문에 기계에 넣고 돌리지 못한다. 뜨거운 물에 불려 수세미로 벅벅 닦아야 하는데 그 무게 때문에 계속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니 엄지와 검지 사이가 뻐근하게 아파왔다. 그 아픔보다 크게 다가왔던 것은 내 안의 이중성이었다. 

처음 알바를 시작할 때 '창피할 게 뭐 있어?'라고 자랑스레 답해놓고 나 역시 직업에 귀천 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설거지 하는 손과 글 쓰는 손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과연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배를 채워주는 밥 한 그릇보다 가치 있느냐는 질문에 차마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날, 엄지와 검지 사이에도 알이 배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글을 쓰는 내내 나는 많이 부끄러웠다. 내 안의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지만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었다.

몸이 힘든 것보다 참기 어려웠던 아.줌.마

아르바이트를 한 지 한 달이 막 되어갈 무렵 손님 한 분이 나를 '아줌마'라고 부른 것이다. 아. 줌. 마. 그 말이 가진 힘은 묘하다. 내가 아줌마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듣는 아줌마는 기분 나쁘다. 게다가 그 장소와 나의 역할에 따라 그 말은 더 큰 불쾌감으로 다가온다.

"아줌마!"라고 나를 부르는 순간 거짓말처럼 눈물이 핑 돌아서 겨우 이런 일에 눈물을 보이는 내가 당황스럽고 한심할 정도였다. 어쩌면 신기할 노릇이다. 삼계탕집에서 일하는 한 달 동안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아줌마'라는 호칭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충격이 컸던지도 모른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2019)에서 인상 깊게 본 장면이 있다. 여주인공(천우희 분)과 남주인공(안재홍 분)은 드라마 제작사와 미팅을 하고 있었다. 이미 대형 제작사와 계약하기로 얘기가 된 상태였지만, 친구의 부탁으로 예의상 마련한 술자리였다.

그런데 두 사람은 대형 제작사를 제치고 이 작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 제작사와 함께 하기로 결정한다. 이유는 제작사 대표가 보인 두 가지 태도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서 접대해야 할 고객이 아닌, 자기 회사 직원에게 먼저 술을 따라줬다는 것, 그리고 식당 종업원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는 것. 

그 장면이 무척 좋아서 나보다 연배가 높아 보이는 분께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애용한다. 식당 종업원이든 집으로 찾아온 A/S 기사님이든,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그분들의 표정이나 말투가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어떤 호칭으로 부를 것이냐?' 모든 상황에서 100퍼센트 들어맞는 정답은 없다. 다만 '고민하느냐, 고민하지 않느냐?'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식당가서 내 돈 내고 음식 먹으면서 그런 것까지 피곤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따져 묻는다면 나도 할 말은 없다.

다만, 고민하면 그래도 적절한 답은 나오지만, 고민하지 않으면 막말이 나온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식당 종업원을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서 당신의 인격과 품위가 드러날 것이고 드라마처럼 누군가 그런 당신을 지켜보는 바람에 당신은 중요한 계약을 놓칠지도 모른다! 

지켜보는 눈이 없어도 당신 손해다. 삼계탕집에서 일해 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아줌마! 깍두기 더 줘요!' 하는 손님보다는 '사장님!(혹은 여사님) 깍두기 좀 더 주세요' 하는 손님에게 한 조각이라도 더 얹어주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기 때문이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 망설임 없이 시장판으로 나갔다. 나에게는 그렇게도 무거웠던 그깟 뚝배기쯤은 몇 개씩 머리에 이고도 다녔다. 우리 세대는 조금 다르다. 대부분은 대학 교육을 받았고, 석사·박사 학위도 흔하다. 집에서는 손에 물 하나 안 묻히고 곱게 자랐고, 결혼 전에도 전문직에 종사한 경우도 많다.

그랬던 사람이 경력 단절이 되었다고 시장으로, 식당으로 나가기는 쉽지 않다. 나 역시 창피하지 않다고 자랑스레 말해놓고는 '이 손이 글 쓰는 손인데...!'라고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았나.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삼계탕집 아르바이트는 한 달 정도 하고 그만뒀다. 그후 가정 살림은 그때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경제적 위기가 닥치지 않을까 두렵다. 이왕이면 내가 잘하는 일, 이제까지 해왔던 일을 하면서 밥 먹고 싶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나는 또다시 식당 일을 찾을 것이다. 자존심이나 창피함은 뒤로 하고 용기 있게.

그때는 손님이 "아줌마!"라고 불러도 "네!" 씩씩하게 대답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자식을 먹여 살리는 엄마는 모두가 아름답고 그 방법에는 귀천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다. 내가 그러면 다른 사람도 그럴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개인의 다짐만으로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래서 사회적 분위기도 바뀌길 소망한다. 용기를 내어 세상으로 나온 여성들에게 '아줌마'라는 프레임을 씌워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호칭 하나만이라도 달리하길 바란다.

청년 알바생들이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옷을 입고 일하는 걸 봤다. 중년 알바생인 나도 '남의 집 귀한 엄마'다. 노동하는 사람 누구도 함부로 대할 자격은 없다.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그 무엇이 될 수 있다고 믿는, 4대보험 없는 여성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태그:#주부알바, #삼계탕집, #주부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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