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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얼마 전부터 아이들과 잠자리 분리를 시도하고 있다. 집에 방이 두 개인지라 형제인 두 아이가 함께 방을 써야 하니, 아이들의 잠자리 분리는 한 번에 해야만 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하고 싶었지만, 당시 작은 아이가 너무 어려 후일을 기약해야 했다. 그렇게 미루고 미뤄왔던 일을 작은 아이가 1학년이 된 올해에는 꼭 해내기로 굳은 마음을 먹었다. 1학년은 많은 걸 혼자 하기 시작하는 나이니까.     

분리 수면 마음 독하게 먹기
 
이제 너도 혼자 잘 수 있어. 함께 자지 않아도 엄마는 널 변함없이 사랑해.
 이제 너도 혼자 잘 수 있어. 함께 자지 않아도 엄마는 널 변함없이 사랑해.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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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부터 지속적으로 아이를 설득했지만, 둘째는 그때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둘째는 첫째보다 더 아기 같은 느낌이 들어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니 3개월이 훌쩍 흘러 버렸다. 아이들 문제는 독한 마음을 먹기가 참 어렵다. 이제는 정말 분리하자 약속을 하고, 수 일째 아이와 떨어져 잠을 청하고 있다. 잠자리에 누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 뒤, 잠드는 걸 보고 나서 안방으로 건너온다. 나도 내 책을 읽다 잠자리에 든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 자기 시작해 그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니, 꼬박 만 9년을 아이들과 붙어 잔 셈이다. 아이들과 체온을 나누며 함께 잠자리에 드는 건 꽤 행복하지만, 수면의 질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어릴 땐 밤중 수유를 하거나 기저귀를 간다고, 아이들이 좀 크고 나서는 두 아이가 해대는 발길질과 몸부림에 잠을 편히 이룬 적이 거의 없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수시로 열을 재고 해열제를 먹인다고 잠을 설쳤다.     

한때 간절한 내 소원은 밤에 잠들어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랬던 적이 내 인생에 있긴 했나 싶을 만큼 꿀잠을 잔 기억이 전생 같기만 하다. 아이들과 잠시 떨어져 홀로 제주를 떠나 육지에 다녀온 일이 두어 번 있는데, 그때에도 새벽녘 꼭 한두 번씩 깨거나 이른 아침에 눈이 떠지곤 했다. 그런 잠은 이제 다시는 잘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에 아쉬움과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했다.     

첫째를 낳았을 무렵인 2015년에는 프랑스 육아가 한참 유행을 타고 있었다. 육아에도 유행이 있나 싶지만, 서점에 가보면 그 유행을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다. 당시 육아 코너에는 '프랑스' 세 글자가 들어간 서적이 유독 많았다. <프랑스 아이처럼>, <프랑스 육아의 비밀> 등 프랑스 부모들의 육아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널려 있었다. 그 시절 육아를 시작한 부모라면 한두 권은 읽었을 것이다.     

당시 접한 책 내용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기다려'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모든 삶의 우선순위가 아이가 되기 십상인데,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할 때부터 '기다려'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아이는 자기 외에도 중요한 다른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배우면서 자란다고 한다.

실제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이 부분을 적용해 보았다. 아이가 우선이 될 때도 분명 있지만, 더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아이에게 기다려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 덕분인지 아이들은 지금껏 심하게 떼를 쓴 일이 없다.   
   
책에는 또 잠자리 분리는 어릴 적부터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적혀 있었다. 돌이 되기 전부터 혼자 자는 버릇을 들여야, 잠이 깨거나 울음이 터져도 스스로 자제하고 다시 잠드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당장 갓난아기를 나와 떨어져 재운다는 게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밤중 수유도 그렇고, 아이가 심한 울음을 터뜨렸을 때 자던 몸을 일으켜 다른 방으로 건너가는 것도 귀찮은 일이었다. 그때는 잠자리 분리가 이토록 오래 지나야 가능한 것인지 차마 예상하지 못했다.    

배앓이를 하는 등 특별한 시기를 건널 때면 잠자리 분리는 더 머나먼 일로 느껴졌다. 자다가도 내 손을 꼭 잡거나, 내 품을 파고드는 아이들을 볼 때면, 아이에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는 느낌에 퍽 행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갈수록 불편함도 늘어났다. 잠자리가 점점 좁게 느껴지고, 아이들의 발길질 한 번에 나도 모르게 '헉'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이가 들수록 체력에 한계가 오는 데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다음 날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아이들도 알아가야 하는 것

꼭 아이 옆에 붙어 자야만 좋은 부모가 아니라는 생각도 한몫을 했다. 누군가는 프랑스 부모처럼 일찍 아이와 분리해 잠을 잤을 것이고, 누군가는 전통적인 한국의 부모들처럼 아이들 곁에서 잠을 청했을 것이다. 무엇이 옳다거나, 누가 더 아이에 대한 사랑이 크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이 곁에 붙어 자더라도 피곤이 누적돼 아이들에게 자주 화를 내는 부모라면, 과연 좋은 부모라고 할 수 있을까. 
       
더 나은 수면의 질을 확보하고, 아이들도 엄마로부터 점차 독립하기 위해서는 독한 마음을 먹어야 했다. 수면 독립을 시도하고 사흘 정도는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첫째와 달리, 둘째는 잠이 들어도 예민한 편이다. 잠결에 엄마가 없는 걸 알아채면 낑낑대다 안방으로 건너온다. 아이를 끌어안고 자기도 하고, 작은방으로 옮겨 다시 재우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잠이 달아나 한참을 뒤척이고서야 간신히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직 완전한 수면 독립을 하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어떤 날은 아이가 한 번도 안방을 찾지 않고 아침까지 쭉 잠을 자고, 어떤 날은 새벽녘 잠에서 깨어 돌아보면 아이가 내 옆에서 잠을 자고 있다. 내 품을 파고드는 아이를 한번 꼭 안아주고 나서 다시 작은방으로 건너가라고 하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터벅터벅 걸어간다. 엄마가 잘 자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이들도 조금씩 알아간다.   

육아의 최종 목표는 독립이라는 말을 자주 되새긴다. 아이가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건, 아이에게도 내게도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아이는 자신감을 얻을 것이고, 나는 당장 불편하겠지만 아이의 독립은 그만큼 빨라질 것이다. 아이가 너무 예뻐 품에 꼭 안다가도, 내게 얽매이지 말고 훨훨 날아가라고 꼭 쥔 두 팔의 힘을 슬그머니 뺀다. 사랑은 거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니.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게재합니다.


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육아삼쩜영, #잠자리분리, #수면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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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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