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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노소영 아트나비센터 관장과의 이혼 소송 항소심 관련 입장을 밝힌 뒤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노소영 아트나비센터 관장과의 이혼 소송 항소심 관련 입장을 밝힌 뒤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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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오류에 기반해서 SK C&C의 핵심 성장 요인이 최태원 회장의 경영활동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누가 한 말일까? SK C&C(옛 대한텔레콤)는 SK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SK㈜의 모태가 되는 회사다. 이를 고려하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두고 '경영능력 없는 금수저 또는 재벌 2세'로 폄훼하는 말로 들린다.

놀랍게도 최 회장의 법률대리인 이동근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가 지난 17일 SK서린빌딩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그것도 최 회장이 같은 자리에서 자신의 이혼소송을 두고 대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는 발언을 하고 퇴장한 직후였다.

최 회장 쪽은 왜 스스로의 경영능력을 깎아내리는 걸까. 이것이 현재 '세기의 이혼소송'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포인트다.

'재산분할 1조3808억'을 뒤집어라

결론부터 말하면, 재산분할 금액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배우자가 기여하지 않은 상속재산(특유재산)은 재산분할대상에서 제외된다. 최 회장이 시가총액 약 3조 원에 달하는 SK㈜ 주식을 두고 아버지 최종현 선대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특유재산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최 회장 쪽은 '승계상속형' 사업가와 '자수성가형' 사업가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자신은 전자(승계상속형)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22년 12월 이혼소송 1심(서울가정법원 가사2부)은 최 회장 손을 들어줬다. 최 회장 보유 SK㈜ 주식은 재산분할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은 위자료 1억 원, 재산분할 665억 원.

하지만 지난 5월 항소심 판결(서울고등법원 가사2부)에서 위자료 20억 원과 재산분할 1조3808억 원으로 껑충 뛴 이유는 1심 판단이 뒤집혔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현재 SK그룹은 최태원·노소영 부부가 함께 일궈낸 것으로, 최 회장 보유 SK㈜ 주식은 재산분할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노 관장몫 재산분할 비율은 35%로 산정됐다.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힌 이상, 최 회장 측의 관건은 SK㈜ 주식을 어떻게 하면 다시 재산분할대상에서 제외시킬 수 있느냐다. 원칙적으로 이혼 등 가사재판은 비공개로, 양쪽의 구체적인 주장이 잘 공개되지 않는다. 그런데 상황이 불리해진 최 회장 측이 항소심 판결문에서 수치 오류를 발견했고, 이를 고리로 자신의 주장을 매우 구체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법원이 이를 일부 받아들여 판결문을 정정하기도 하는 등 성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복잡한 수치를 뒤로 하고, 2세 최 회장이 아버지에 비해 경영능력이 훨씬 떨어진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묘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깎아내려야 하는 딜레마
 
SK 본사
▲ SK SK 본사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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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으로 최근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이해가 쉽다. 19일 현재까지 최 회장 쪽과 재판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항소심 재판에서 SK㈜ 주식이 재산분할대상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주요 기준은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과 최태원 회장 경영 시기의 SK㈜ 주식 가치 상승폭이었다. 이 과정에서 재판부의 실수가 나왔고, 최 회장 쪽이 이를 고리로 대대적인 공세를 폈다.

대한텔레콤·SK C&C에서 이어진 SK㈜의 1주당 가치는 1994년(최태원 회장이 증여받은 돈으로 최초 주식을 취득한 시점) 8원 → 1998년(최종현 선대회장 사망 무렵) 1000원 → 2009년(상장 시점) 3만5650원 → 2024년(재산분할 기준 시점) 16만 원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1998년 가치를 계산하면서, 액면분할 비율을 잘못 적용해 1000원이 아닌 100원으로 산정했다. 이에 따라, 최종현 선대회장 시기(1994~1998년) 대비 상장 시점까지의 최태원 회장 시기(1998~2009년) 상승폭이 12.5배 : 355배라고 판결문에 적시됐다. 최 회장의 기여도가 훨씬 큰 만큼, 최 회장 보유 SK㈜ 주식은 부부가 공동으로 일군 재산으로서 재산분할대상이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계산 오류를 바로잡으면, 그 비율은 125배 : 35.5배로 역전된다. 최 회장 쪽의 노림수가 이것이다. 17일 이동근 변호사는 "SK㈜ 주식이 최종현 선대회장의 기여도가 큰 재산이 되면, 1심 판결처럼 (재산분할대상에서) 빠지게 될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재판부는 판결문 오류를 즉각 수정하면서도,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는 입장을 18일 내놨다. 1998년 주식 가액 오류는 중간단계의 오류일 뿐이고, 최 회장 경영 시기를 재산분할 기준 시점(항소심 변론종결 시점)인 2024년 4월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 입장을 따라 계산하면, 최종현 회장 시기 대비 최태원 회장 시기 상승폭은 125배 : 160배다. 재판부는 "160이 125보다 크기 때문에, (원고 부친의 경우에 비하여) 원고의 경영활동에 의한 기여가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볼 수 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재판부는 이렇게 강조했다.

"이 사건 SK주식의 가치 증가에 선대회장인 원고 부친(최종현)의 경영활동과 현 회장인 원고(최태원)의 경영활동이 모두 기여하였고..."

'아버지가 다 했고 나는 기여한 바가 별로 없다'는 아들을 향해, '그게 아니라 아버지만큼 당신도 잘 했다'고 법원이 공개적으로 밝히는 셈이다.

18일 오후 최 회장 쪽의 재반박이 이어졌다. 변호인단은 "재판부는 실질적 혼인관계는 2019년에 파탄이 났다고 설시한 바 있는데, 2024년까지 연장해서 기여도를 재산정한 이유가 궁금(하다)"면서 "12.5 : 355를 기초로 판단했던 것을 125 : 160으로 변경했음에도 판결에 영향이 없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재차 반박했다.

2022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그해 대법원에 접수돼 판결이 나온 이혼소송 사건은 모두 508건이다. 이 가운데 항소심 판결이 파기된 사건은 전체의 1.77%인 9건에 불과하다.

스스로를 공개적으로 깎아내리기까지 한 최태원 회장은 1.77% 확률을 뚫을 수 있을까.

태그:#최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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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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