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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1.5 윤세종 변호사.
 플랜1.5 윤세종 변호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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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트지오사의 신뢰도, 시추 성공률, 대한민국 산유국의 꿈, 그런 것들보다 훨씬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가 있어요. 지금 진짜 문제는..."

지난 19일 사무실에서 만난 윤세종 변호사의 책장엔 기후환경 관련 서적 수십 권이 꽂혀 있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동해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 발표 이후 나오는 이야기에 기후위기가 빠져 있다며 책과 자료를 일일이 펼쳐 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화석연료 생산을 줄여야 하는데, 오히려 석유랑 가스를 추가로 개발하겠다니요. 아무리 브레이크를 잡아보려 해도 액셀레이터를 계속 밟고 있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이건 국민들에게 희소식이 아닙니다. 정부가 균형을 상실한 겁니다."

현재 기후소송 공동대리인단을 맡고 있는 그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국제중재팀과 기후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을 거쳐 지난 2022년 5월 플랜1.5를 공동 창립했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플랜1.5의 목표다. 1.5도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2018년 특별보고서에서 제시한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 상승 제한치다.

윤 변호사는 "2050년까지 글로벌 석유와 가스 수요가 75% 줄어든다는 게 국제에너지기구(IEA) 전망이다. 정부는 동해 석유·가스의 가치가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라고 했는데 그건 현재 가격이 유지됐을 때 얘기"라며 "2030년 중반쯤 동해 영일만 개발을 시작할 땐 이미 수요 감축이 본격화한 시점이다. 가격이 떨어지고 공급도 과잉된 상태에서 새로 개발한 가스전이 경쟁력을 갖추긴 어렵다"라고 봤다.

그러면서 "정부 발표처럼 석유 4년 쓰고, 천연가스 29년 쓰고, 이런 건 단기적 편익이다. 반면 온실가스가 배출돼 나타나는 영향은 수천 년 동안 이어진다"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윤 변호사와 나눈 일문일답.

붙어 있는 '동해 유전'과 '울산 풍력단지'... "에너지 미래의 기로"
    
플랜1.5 윤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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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 영일만 관련 정부 발표를 어떻게 봤나. 최대 4년 치 석유와 29년 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는데.

"중대한 숫자가 빠져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를 생산하면 온실가스가 얼마나 배출되는지, 그것이 현재 진행 중인 기후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숫자다. 

정부는 동해에 매장돼 있는 140억 배럴의 석유와 가스 비율을 각각 25%, 75%로 추정한다. 이를 소비했을 때 나오는 온실가스는 47억 톤, 생산할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10억 톤으로 계산된다. 총 57억 톤이다. IPCC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우리나라가 배출 가능한 온실가스 총량인 '탄소예산'은 33.4억 톤으로 추산되는데(아래 그림), 영일만 사업 하나로 향후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의 1.5배 넘는 양이 사용된다고 봐야 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남은 전 세계 탄소예산(5000억 톤)과 대한민국 탄소예산(33.4억 톤). 탄소예산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허용할 수 있는 온실가스 최대 배출량을 말한다.
▲ 자료1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남은 전 세계 탄소예산(5000억 톤)과 대한민국 탄소예산(33.4억 톤). 탄소예산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허용할 수 있는 온실가스 최대 배출량을 말한다.
ⓒ 윤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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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 시추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평가하면?

"극히 떨어진다. 2050년까지 글로벌 석유와 가스 수요가 75% 줄어든다는 게 IEA의 전망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많은 나라들이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이란 목표를 세운 상황에서 화석연료 소비량을 줄이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수요가 줄어들면 이미 개발된 유전과 가스전은 공급 과잉이 돼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앞서 정부는 동해에 매장된 석유·가스의 가치가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라고 했는데, 그건 현재 가격이 유지됐을 때의 얘기다. 2030년 중반쯤 영일만 개발을 시작할 땐 이미 수요 감축이 본격화한 시점이다. 가격이 떨어지고 공급도 과잉된 상태에서 새로 개발한 가스전이 경쟁력을 갖추긴 어렵다."

- 그래도 환영할 일이 아니냐는 얘기가 많은데.

"2035년이 되면 도시가스는 없어지고, 히트펌프로 냉난방을 하고, 인덕션으로 조리를 하는 등 대부분 발전이 재생에너지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런 때에 저렴한 석유와 가스가 생긴다고 우리의 삶이 더 풍요로워질까. 산유국의 꿈이 이뤄졌다며 우리의 삶이 더 행복해질까. 이미 기후변화 피해는 늘어나 있을 것이고, 그 돈을 차라리 에너지 전환에 썼어야 했다는 후회만 남을 것이다.

정부 발표처럼 석유 4년 쓰고, 천연가스 29년 쓰고, 이런 건 단기적인 편익이다. 반면 온실가스가 배출돼서 나타나는 영향은 수천 년 동안 이어진다. 한 번 배출되면 돌이킬 방법도 현재로선 없다. 그 피해는 비가역적이고 영구적이다. 이젠 우리가 형량해야 하는 이익이 완전히 달라졌다."

-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사업 철회가 타당하다는 건가.

"그렇다. 국민 복리라는 관점, 즉 무엇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동해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다는 자리는 굉장히 상징적이다. 2031년 완공 예정인 '울산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 단지'가 들어갈 위치와 상당히 겹치기 때문이다. 해상풍력 발전으로 깨끗한 에너지를 가져올 것인가, 산유국의 꿈을 좇다가 더는 필요 없는 가스전을 만들고 후회할 것인가. 포항 앞바다에서 우리는 에너지의 미래를 결정하는 기로에 서 있다."

- 경제뿐 아니라 환경적 측면에서는 어떤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무의미해지고 국제사회의 약속도 달성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기후변화대응지수는 67개국 중 64위다. 사우디아라비아(67위), 이란(66위), 아랍에미리트(65위), 러시아(63위) 등 산유국 사이에 끼어 있다.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는 기술과 자본이 있음에도 그동안 계속 배출을 늘려왔고, 에너지 전환 속도도 굉장히 느려 최하위 성적표를 받았다. 이렇듯 '기후악당' 소리를 듣는 상황인데도 산유국이 되자고 한다면 화석연료 생산을 줄여나가는 흐름에 찬물을 끼얹고 국제사회에서도 용납받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기후변화대응지수(Climate Change Performance Index·CCPI)는 67개국 중 64위다. 사우디아라비아(67위), 이란(66위), 아랍에미리트(65위), 러시아(63위) 등 산유국 사이에 끼어 있다.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는 기술과 자본이 있음에도 그동안 계속 배출을 늘려왔고, 에너지 전환 속도도 굉장히 느리기 때문에 최하위 성적표를 받았다는 것이 윤세종 변호사의 설명이다.
▲ 자료3 한국의 기후변화대응지수(Climate Change Performance Index·CCPI)는 67개국 중 64위다. 사우디아라비아(67위), 이란(66위), 아랍에미리트(65위), 러시아(63위) 등 산유국 사이에 끼어 있다.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는 기술과 자본이 있음에도 그동안 계속 배출을 늘려왔고, 에너지 전환 속도도 굉장히 느리기 때문에 최하위 성적표를 받았다는 것이 윤세종 변호사의 설명이다.
ⓒ 윤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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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앞에 체면 세우기만, 정부 인식 바뀌어야"

- 윤석열 정부의 기후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한다면.

"기후변화 대응은 그동안 모든 정부에서 항상 부족했지만, 이번 정부에서 만들어진 계획과 목표를 보면 특히나 부족하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지난해 나온 국가 탄소중립 기본계획을 보면, 2021년 때와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똑같은데, 배출량(2023~2030)은 5억 톤이 더 많다. 온실가스 감축은 특정 시점이 아니라 총량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기후변화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해 주지 못하고 있다.

둘째는 재생에너지 후퇴다. 정부는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를 30%에서 21.6%로 낮췄고, 이 목표치가 최근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그땐 이미 많은 나라가 대부분의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때인데, 이는 에너지 정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와 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기후위기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해 심해에 석유·가스전을 개발하겠다는 것인데, 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까.

"정부가 기후변화를 외교의 문제로만 바라보고 있다. 국제사회의 압력이 있으니 체면을 세워야 하고, 우리나라가 뭔가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식이다. 우리가 헌법재판소에서 기후소송을 하는 이유도 그런 것이다. 기후변화가 국민의 기본권 문제라는 점을 국가기관을 통해 확인받기 위함이고, 헌재의 헌법적 해석이 나오면 정부와 국회는 그것을 부인할 수 없다."
 
플랜1.5 윤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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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기후위기 심각성은 어느 정도인가.

"IPCC는 2018년 특별보고서를 내면서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올라가면 우리의 삶이 심각하게 변할 거라면서, 2030년까지 우리가 무슨 선택을 하는지가 앞으로의 수천 년을 좌우한다고 했다. 지금 인류의 마지노선이라는 그 선에 간당간당하게 근접해 있다."

- 화석연료 신규 개발에 대응해 온 해외에서 최근 주목할 만한 흐름이 있나.

"BNP파리바 등 글로벌 금융기관 83곳은 신규 석유·가스전 투자를 중단한다는 입장을 발표했고, 스위스 리 등 글로벌 재보험사 29곳도 석유·가스전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모두 최근 2~3년 사이 일이다. 이런 결정은 환경·윤리적인 측면뿐 아니라 화석연료가 수익이 나지 않는 좌초자산이 될 위험을 고려해서 내려진 것이다.

신규 석유·가스 탐사 시추 허가를 둘러싼 사법적 판단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 그린피스가 북극해 탐사 시추를 막기 위해 노르웨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현재 유럽인권재판소로 넘어가 심리 중에 있고, 노르웨이 법원도 최근 여러 차례 탐사 시추의 인허가를 정지하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 동해 석유·가스전 사업의 해법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경제성과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 이것이 '기후변화에 무책임한 대한민국'이란 과거의 인식을 바꾸고 전 세계적 기후 대응 협력에 기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설령 유전을 발견하더라도 신규 화석연료를 개발하지 않겠다며 다른 산유국을 설득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독려한다면, 이는 굉장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상징적이고 유의미한 사건이 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도 하다."

태그:#윤세종, #동해시추, #포항영일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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