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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방식으로 제로웨이스트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찾던 차에 인스타그램에서 우산 수리 관련한 포스팅을 보고 모호연씨를 알게 됐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의 저서들을 읽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반려공구>였다.

뜨거운 여름의 햇빛이 내리쬐고 망원 시장의 정겨운 냄새가 폴폴 났던 지난 13일. 단짝처럼 매일 붙어 있으면서 때로는 삶에 대한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21가지 공구와 함께하는 모호연씨를 서울시 망원동에 위치한 '수리상점 곰손'에서 만났다.

호기심에 '최애' 공구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그러면 다른 공구들한테 미안한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방 한쪽에 가지런히 진열해 둔 니퍼, 멍키 스패너, 펜치, 드라이버, 롱노우즈 플라이어들은 모두 그에게 '반려자'나 다름없었다.

PART1. 공구
 
 출처 엑스(구 트위터) 모호연(@mohoyeon)
출처 엑스(구 트위터) 모호연(@mohoyeon) ⓒ 모호연
 
"가장 좋아하는 한 가지를 고르기 힘들긴 하지만, 가방에 항상 넣어 다니는 건 줄자입니다. 만들기와 수선의 기본은 치수를 제대로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줄자는 나의 동선이나 나의 체형,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공간의 면적 등을 잴 수 있기 때문에 '나'를 중심으로 한 일상을 꾸리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수치를 정확히 알면 뭔가를 구매 할 때도 실수 하는 일이 적다. 그러면서 그는 줄자를 쓰는 데 '감성적인 면'도 있다고 했다.

"저는 어떤 물건의 수치를 알게 되면, 그것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어요. 수치가 그 물건에 그렇게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일부를 알게 되면 그걸 약간이라도 더 이해하게 된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줄자를 갖고 다니며 길에 떨어진 깃털이나 나뭇잎의 길이를 재는 걸 참 좋아해요."

다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집 안에서 지낸 시간이 많았다는 호연씨. 어느 순간 '이 계절에 무슨 꽃이 피는지도 모르고 살았네'라는 후회가 찾아왔을 때, '지금부터라도 좀 더 바깥에 관심을 가져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공구를 이용해 '만들기'에서 '고치기'로 시선을 돌린 것도 그런 이유였을지 모른다. 이케아에서 기념품으로 사 온 전동 드라이버로 처음 컴퓨터 받침대를 만든 이후로, 가구를 만드는 일은 마치 장난감 조립 블록처럼 재밌고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목공을 깊게 공부하며, 새 나무를 가져다 만드는 것이 또 다른 쓰레기를 만들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들기 취미를 갖게 되면 생산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소비적으로 돼요. 예를 들면 더 좋은 공구를 사고 싶어서 기존에 있던 것들을 버리고 싶어진다든가, 아니면 가지고 있는 가구를 리폼할 수도 있는데 그냥 새로 만들고 싶어진다든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가구를 뜯어서 재조립하는 등의 '고쳐 쓰는' 방법을 생각해 보게 된 호연씨는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 이사를 하며 망가진 옷장의 나무를 가져다 전자레인지 받침대로 만들었고, 책장을 뜯어서 이층 침대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생긴 수많은 못 자국들, 손때가 묻어 색이 변한 흔적들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자국을 없애 예쁘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구멍 난 모습은 어쩐지 더 정이 갔다.

"완벽하지 않아도 돼요. 이게 약간이라도 더 쓸모가 있으면 그게 겉보기에 아름답지 않더라도 거기에서 또 다른 기쁨을 느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그런 실수 하고, 실패한 부분들이 귀엽게 느껴져요."
  
PART 2. 우산
 
 '수리상점 곰손'에서 우산을 수리 중인 호연 씨와 '호우호우' 팀원들
'수리상점 곰손'에서 우산을 수리 중인 호연 씨와 '호우호우' 팀원들 ⓒ 모호연
 
딱히 우산 애호가는 아니지만, 이때까지 살면서 꽤 많은 우산이 손에 쥐어졌었다. 다이소에 파는 비닐우산부터, '오래 써야지' 마음먹고 산 고가의 3단 자동 우산까지. 우산은 고장이 나면 버리고, 비가 오면 편의점에서 그때그때 사게 되는 '소모품'이었다. 

그래서 처음 호연 씨를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우산을 수리하는 사람'이라는 소개 때문이었다. 우산을 왜, 그리고 어떻게 고친다는 것일까? 그는 어쩌다 우산을 수리하는 사람이 된 걸까?

"처음부터 우산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저 갖고 있는 공구들을 더 많이 활용하고 싶었을 뿐이었죠. 그러다 우연히, 제로웨이스트 활동가 모임 '알짜'에서 우산 수리 양성 과정 공지를 보게 됐어요. 수업을 들으면서 우산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고, 우산을 구성하고 있는 부품이나 재질 같은 것들이 통일되어 있지 않아서 수리하기 어려운 분야라는 걸 알게 됐어요."

한국환경공단이 2021년 1월부터 11월까지 전국 대형마트 등의 우산 폐기물을 조사한 결과, 약 1년 동안 무려 1억3430만 개의 우산이 버려졌다고 한다. 우산은 철, 비닐, 플라스틱 등 다양한 재질로 이뤄져 있는데, 구조가 워낙 복잡해 분리배출이 까다롭다는 점이 문제다.   

호연씨가 단장으로 있는 '호우호우'에서는 현재 전국 제로웨이스트 가게 25곳에서 고장 난 우산들을 모아 새롭게 탄생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살대가 부러진 것들은 웬만해서는 고칠 수 있어요. 다른 우산의 부품을 떼서 부목처럼 지탱해 주면 되거든요. 고칠 방법은 생각보다 많은데 그게 우산마다 다 달라요. 그래서 진단을 내려야 해요.

완전 자동 우산은 펴고 접는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못 고치는 경우가 많아요. 반자동 우산은 수리하면 웬만해서는 고쳐요. 우산을 펼칠 때 누르는 버튼이 플라스틱 덮개로 안 덮여 있는 것들은 대개 고치기 쉬워요. 우산마다 구조도, 생김새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저도 고칠 때마다 배우고 있어요."
 
 관절, 구멍 난 부분 수선함. 우산 천 닦기, 벨크로 교체.
관절, 구멍 난 부분 수선함. 우산 천 닦기, 벨크로 교체. ⓒ 전윤서
 
이리저리 우산의 구조를 뜯어보고, 뼈대를 만져보는 모습은 마치 의사 같기도 하다. 

"선생님, 제 우산에 EXO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는데요. 기능은 멀쩡한데 이걸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요."

조심스레 묻자 진지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럴 땐 저희한테 기부하시면 됩니다. 해체해서 더 많은 우산을 구할 수 있어요."

진단 결과가 좋지 않은 우산들은, 가능성이 있는 우산들을 살리는 역할로 쓰인다. 엉망진창이 되어도, 호우호우에 들어온 이상 그냥 버려지는 일은 절대 없다. 마침 내 애증의 EXO 우산은, 살리기도 쉽고 또 다른 우산을 '소생'시켜 주기도 쉬운 '수동 2단 우산'이다. 일단 열심히 써보고, 언젠가 호우호우로 보내줘야겠다.

PART 3. 쓸모

'낡아서 기증 못 하는 옷이나 가방은 버릴 때 부자재를 분리해 남겨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벗겨지는 모자에 끈을 달아서 옛날 바람막이의 스토퍼를 재사용했다.'
엑스(구 트위터) 모호연(@mohoyeon) 


한 시간 남짓 마주하고 본 그의 눈동자 너머에서, 나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반짝이는 눈빛을 엿봤다. 그는 작고 사소한 것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주의 깊게 살펴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의 '가능성'을 발굴해 낸다.

"만들기를 하다 보면 '이걸 써야겠다' 하고 딱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래서 일단 보관해 두면, 나중에 어떻게든 창의력을 발휘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뭔가를 버릴 때, 아직 쓸 만한 데가 있는지 곰곰이 들여다봐요. 해체해서 남겨두면 언젠가 요긴하게 쓰이거든요."

그가 사용하는 책상 아래에는 작은 서랍이 붙어 있다. 이곳에는 어딘가에서 떨어진 각종 고리나 단추, 전자제품에서 꺼내온 스프링이나 본체가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금속 부품들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고 한다.

바람막이의 지퍼로 모자의 끈을 고정하는 아이디어도 '버리지 않는 것'에서부터 온 것이었다. 이런 성격은 평소 절약이 몸에 밴 어머니와 외할머니에게서 받은 유산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몇 년 전 뉴스레터에 연재하던 글의 제목도 <버리지 못했습니다>였다.

"처음에는 버리지 못하는 성미를 스스로 타박하는 의미로 쓰기 시작했는데, 막상 쓰다 보니 이 모든 것들이 나한테 너무 소중한 거예요. 소중해서 못 버린 거였어요. 그런 작은 물건의 쓸모 같은 거에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제가 '나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에 약간의 강박관념이 있는 편이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우산을 안고 있는 호연 씨
우산을 안고 있는 호연 씨 ⓒ 전윤서

옷이나 우산을 수선할 때 일부러 다른 색깔의 실을 쓰거나 아예 눈에 띄는 자수를 놓아서 고친 흔적을 남겨두는 이유도, '쓸모를 되찾은', '새로 태어난' 흔적들을 볼 때마다 어쩐지 위안을 얻기 때문이었다.  

"물건을 고쳐 쓰면 쓰레기도 줄고 자원도 아끼지만, 무엇보다 고쳐 쓸 때 느끼는 자기 효능감이 큽니다. 이 물건의 쓸모를 내가 되찾아주면서, 동시에 나도 그만큼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이 정말 큰 위로가 되거든요."

'산다'와 '버린다' 사이에 있는 존재들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는 호연씨는, '고치기'를 통해 자기 자신에게 다정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분명 자기 바깥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따뜻한 온기를 나눠주고 있었다. '나'를 중심으로 꾸려가는 삶을 강조하면서도, 항상 그 주변까지 관심을 기울였다.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을 요청하자, 그는 창고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 큰 꾸러미를 품에 안고 돌아왔다. 폐현수막에 둘둘 쌓여 있는 수많은 우산들은, 곧 그의 손을 거쳐 '쓸모'를 되찾을 것이다. 녹슬고 부러져 그늘진 곳에서도 호연씨는 어떤 빛을 찾아줄 것이다.

#모호연#반려공구#호우호우#수리상점곰손#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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