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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농성장 앞 바닥보호공에 풀들이 많이 자랐다.
▲ 비 내린 뒤 천막농성장 앞 천막농성장 앞 바닥보호공에 풀들이 많이 자랐다.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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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기분이야."

며칠 비 소식에 제방 위쪽에 재난안전본부를 차렸다. 본격 장마까지 잠시 날이 맑다는 예보가 있어 다시 천막농성장으로 내려왔다. 사실 천막농성장은 바로 지척에 있었지만, 며칠 여행을 갔다가 집에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눈앞에 여전히 흐르고 있는 금강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재난안전본부의 짐을 들고 녹색 천막문을 열었다. 젖어있던 돗자리를 말리고 원래 우리가 익숙하게 이용하던 모양으로 의자, 테이블을 배치했다. 천막농성장의 유일한 전력공급원인 태양광을 햇빛에 내놓고, 접어뒀던 현수막을 다시 깔았다. 침구들과 돗자리들을 차곡차곡 개고 털어내며 말끔히 정리했다.  

그 사이 천막농성장 앞 달뿌리풀은 키가 훌쩍 자랐고 바닥보호공은 새로 자라난 풀들로 가득 메워져 있다. 소리쟁이, 기린초, 여뀌, 도꼬마리, 가시박, 물냉이 등 비록 외래종이지만 바닥보호공을 정원으로 바꾸고 있다. 한시도 자연은 가만히 있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자연의 놀이터 강 모래톱 … 모든 생명의 집 
 
금강 합강 모래톱에서 발견된 수달발자국. 모래톱은 생명들의 집이다.
▲ 모래톱에 즐비한 수달발자국 금강 합강 모래톱에서 발견된 수달발자국. 모래톱은 생명들의 집이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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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비가 지나가자 건너편 하중도에 모래가 드러났다. 세종에 오래 산 분들은 천막농성장에 오시면 '원래 이곳은 모래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세종보 수문개방 6년이 지나자 이제 그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는 모양이다. 혹시나 어떤 친구들이 여기에서 생활하는지 궁금해 활동가들은 맨발로 살살 걸어 들어가 보기도 한다. 

수달 발자국과 너구리, 오소리의 발자국까지 역시나 많은 친구들이 오가고 있었다. 모래톱은 물이 흐르지 못하고 정체되면 사라지는데 금강은 보를 개방하면서 모래톱을 많이 회복한 상황이다. 흰수마자(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표범장지뱀(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과 같은 멸종위기 생물들은 이 모래톱에 의지해 살아가는 친구들이다.
 
모래와 자갈로 형성된 하중도는 물떼새들의 집이자 놀이터다.
▲ 물떼새의 집, 모래와 자갈 모래와 자갈로 형성된 하중도는 물떼새들의 집이자 놀이터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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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톱은 겉으로 보기에 섬처럼 떠있는 듯 하지만, 무려 7~10m 두께의 층으로 이뤄졌다. 모래알갱이 사이의 여백은 물로 채워져 있다. 총 부피의 40%가 물 저장 공간인 셈이다. 또 작은 모래 알갱이들은 자연필터로 수질정화 능력이 탁월하다. 우리나라가 하천과 강 주변으로 농업이 발달한 것도 모래톱의 이런 기능이 한 몫을 했다.

모래톱은 강이 살아있다는 증거지만 환경부는 세종보 수문을 닫아 모래톱을 없애고 강을 다시 죽음에 빠트리려고 한다. 환경부가 '물 이용'을 내세우며 하는 '담수'는 '모든 생명의 집'인 강을 해치는 살인 행위이다. 모래톱이 품고 있는 40%의 물은 초절정 정수물이지만, 보에 담수된 물은 공업용수로 쓰기에도 부적절한 오염수일 뿐이다.

강은 공존의 땅… 우선되는 생명은 없다
 
낙동강 해평습지 표범장지뱀
▲ 표범장지뱀 낙동강 해평습지 표범장지뱀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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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낙동강 해평습지에 사는 표범장지뱀들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표범장지뱀은 해평습지에 살고 있는 멸종위기종인데 구미시가 흑두루미 도래할 모래톱을 더 키운다고 표범장지뱀을 강제 이주시키고 있는 것이다(관련기사 : '100개 눈 은둔자' 표범장지뱀, 사는 곳에서 쫓겨난다 https://omn.kr/2913i).

낙동강 해평습지 주변은 원래도 넓은 모래톱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4대강사업 당시 6m의 수심을 만든다고 모래를 마구 퍼낸 곳이기도 하다. 그 곳에 자리잡고 사는 표범장지뱀을 쫓아내고 흑두루미를 오게 한다는 지자체의 발상이 기가 막힌다. 

구미시가 자기 입맛에 맞게 생명의 터를 옮기고 복원한다며 난리법석을 떠는 것은 '물 이용' 한다며 근거도 없이 세종보를 열고 닫으려는 환경부가 하는 짓과 그 맥락이 다르지 않다. 멸종위기종을 지정해 놓고 행정 편의에 따라 이주를 시키는 이런 짓들이 어떤 영향을 줄지 그 곳에 사는 야생동물들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강은 공존의 땅이다. 모래톱을 복원하려고 표범장지뱀을 옮길 게 아니라 수문을 열고 자연의 회복에 맡기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더 나은 방법 아닐까.  
 
세종보가 개방되고 형성된 넓은 모래톱. 멀리 학나래교가 보인다.
▲ 세종보 앞 모래톱  세종보가 개방되고 형성된 넓은 모래톱. 멀리 학나래교가 보인다.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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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우리 모래놀이 하던 데 아직 있어?"

둘째가 어렸을 적 고마나루에서 모래놀이 하던 기억이 났는지 물었다. 아이들과 보낸 일상들을 인스타그램에 차근차근 업로드 해놓는데 해마다 금강 고마나루 모래사장에서 놀던 사진들이 있었다. 4살이었던 둘째는 금강 모래톱에서 놀았던 때를 '엄청 넓었고, 부드러웠던 느낌'으로 기억한다.

천막농성장 주변 금강 모래톱은 세종보가 개방되고 지금보다 훨씬 넓고 많은 모래와 자갈이 형성되어 있었다. 강 모래톱이 돌아오면서 흰수마자와 물떼새가 돌아왔다. 모래톱이 다양한 생명들의 쉼터이자, 집이다. 다시 잃을 수가 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하게 된다. 다만 그 질문들로 고민스럽지는 않다. 너무나 명확히 지금 해야 할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도 눈앞에 보이는 저 하중도와 그 안의 생명들을 보고 있다. 

자라나는 풀들처럼 쉼 없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질문을 던지며, 그렇게 흘러갈 뿐이다. 금강이 흘러야만 하는 것처럼 오늘도 시간을 바람에 실어 지켜나갈 뿐이다.

태그:#금강, #세종보,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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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글쓰는 사람. 남편 포함 아들 셋 키우느라 목소리가 매우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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