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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화로 달려가는 이 시대의 노인 문제를 알기 쉽게 이해하고 생각해보기 위해 다양한 노년 관련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기자말]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플랜75> 중
영화 <플랜75> 중 ⓒ 찬란


노년에 대한 '속 편한' 생각들

코로나 시기, 일본에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떠돈다는 한 일러스트를 보고 경악한 적이 있었다. 노인들이 천사의 모습으로 하늘로 올라가고 그 아래 땅에서는 젊은이들이 모여 만세를 부르고 있는 그림이었다. 건강이 약한 노인들이 지독한 전염병에 가장 취약한 피해자가 되는 것을 안타까워하기는커녕, 노인 인구가 줄어 다행이라고, 아니 그 일러스트 속 젊은이들의 표정에 의하면 다행도 아니고 아주 잘된 일이라고 외치는 모습이어서 소름이 끼쳤다.

오래 사는 것을 재앙이라 말하는 시대다. 의료의 발전으로 수명이 늘었지만 이제 주변에서 건강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어도 오래 살고 싶어하는 이는 별로 없는 듯하다. '특정 나이가 되면 그냥 모든 사람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좋겠어'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파서건 형편이 어려워서건 생보다 사가 더 낫다고 생각되면, 물론 너무 젊어서는 안 되겠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중년들 사이에서도 이런 대화는 매우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하는 게, 가족들에게 부담도 안 주고 '속 편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죽음을 약속하면 혜택을 드립니다

하지만 이런 '속 편할 것 같은' 상황에 자신이 직접 놓인다면 어떨까? 영화 <플랜 75>가 그런 시뮬레이션을 미리 가동해주었다. 일본 감독이 만들고 2022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특별 언급' 부문을 수상한 이 작품은 노인들을 무차별 살해한 뒤 '노인들로 인해 많은 청년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 또한 자살을 택하는 한 청년의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후 정부가 '플랜 75'라는 노인 정책을 발표하는데 이는 75세 이상 노인이 세상을 떠날 결심을 하면 정부가 그에 대한 금전적, 의료적인 지원을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망설이며 상담을 받으러 가면 매우 친절한 시청 공무원이 이 정책을 설명한다. 이 플랜에 가입하면 실제 실행을 해서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용돈도 제공해주고 장례비까지 무료이며 자식에게도 일정 금액을 제공한다. 죽음 직전까지 심리 상담을 해줄 콜센터도 운영해서 마음까지 살펴 준다. 이런 서비스는 모두 '나는 곧 죽을 것이오'라고 약속한다는 전제하에 제공되는 것들이다. 정부가 노인들의 죽음을 적극 장려하는 셈이다.

일터에서 명예퇴직을 (당)한 후 이 '플랜75'를 신청하려 하는 78세의 노인 미치(바이쇼 치에코 분), 이 정책을 안내하는 공무원 히로무, 죽음을 선택한 노인과 상담을 해주는 청년 콜센터 직원 요코, 그리고 떠날 이의 유품을 정리해주는 외국인 노동자 마리아. '플랜 75'라는 정책 앞에 이 네 명이 마주하는 상황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통해 노인 문제는 비단 노인에게만 관련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따라서 노인 정책이란 '노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가 아닌 생명을, 인간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남긴 감상평들이 인상적이다. 대부분 힘없이 스러져가는 노년이 슬프고 안타까우며 그런 노년을 방치하던 국가가 죽음을 결정하고 나서야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참으로 비인간적이라는 내용이지만 때로 영화의 내용을 매우 현실 가능성 있는, 타당한 상상이라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있을 수 있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75세는 너무 빠른 느낌이다. 85세나 90세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라는 식이다.

진정 그럴까? 정말 85세가 된 사람은 자신이 충분히 살았고 죽어도 된다는 확신이 들까?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몸이 아프다고 해서,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 그리도 쉬울까? 그 처지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이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문제일 것이다.

영화를 만든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75세가 되면 후기 고령자로 '분류'해서 아예 정책에서 소외시켜버리는 것을 보며 영화 속에서도 나이의 기준선을 그렇게 적용했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은 세상을 떠날 것을 결정할 정도로, 가족에게마저 폐를 끼치거나 짐이 되기 싫어하는 일본인의 특성이 영화에 녹아있다고도 설명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며 우리나라도, 아니 전세계적으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 입안이 씁쓸해진다.
 
   영화 <플랜75> 중
영화 <플랜75> 중 ⓒ 찬란
 
나이듦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자연불변의, 너무도 당연한 현상인 나이듦, 즉 에이징(aging)에는 왜 그렇게 부정적인 의미가 덧씌워지는걸까. 그 단어를 부정하는 '안티(anti)'를 앞에 넣고 나서야 비로소 긍정의 언어가 된다는 사실은 그저 젊고, 생산력있는 것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대한 적나라한 방증일 뿐이다. 이 세상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나이듦을 자연스럽지 않게 받아들이고 막거나 끊어버리려는 것, 그것이 더 이상한 것이 아닌가.

영화는 그 이상한 행위가 당연하게 느껴지도록, 그리고 정말 '플랜75'의 신청자가 큰 혜택이라도 누리는 것으로 보이도록 플랜의 겉모습을 매우 친절하고 우아하게 포장해 놓았다. 따라서 웃으며 살인하는 사이코패스처럼, 그 친절함에 가려진 잔인함에 더욱 소름끼치고 공포를 느끼게[ 된다. 마치 코로나로 인해 노인들이 죽어가는 것이 정말 즐거운 일인 양 그려놓은 일러스트와도 같이.

생각할수록 두려운 것은 나이듦 자체가 아니라 어느 누구나 예외없이 맞이할 그 순간을 부정해 버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인간을 생산 능력이나 사회에 대한 효용성 여하의 잣대로만 구분하여 노인을 혐오하는 이 사회 속에서 고령화 정책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담담하지만 냉엄한 어조로 영화는 말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 이번 기사를 끝으로 시리즈 ‘영화로운 노년생활’의 연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플랫폼 alookso와 브런치스토리에도 게재됩니다.


#노인#영화#플랜75#일본#고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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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엄마가 있었다> 작가. 문화, 육아, 교육 분야의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결혼 후 힘든 육아와 부모의 질병을 겪으며 돌봄과 나이듦에 관심 갖고 사회복지를 공부한다. 소중한 일상, 인생, 나이듦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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