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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원도심 주택가에 숲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현존하는 도시 숲은 지방자치단체가 오래전부터 형성된 숲을 공원으로 지정하거나 택지 개발 후에 나무를 식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농로(典農路)는 제주시 삼도1동을 관통하며 이도1동과 삼도2동을 연결하는 원도심 도로로 제주농업학교(1940)가 이사하기 전에 자라던 왕벚나무 62그루와 서사라 토지구획정리사업(1976)이 끝나고 식재한 왕벚나무를 40여 년 동안 가꿔 주택가 내 왕복 2차선 1.2㎞ 도로에 왕벚나무 숲(174그루)을 조성했다.
 
주민들에 의해 가꿔진 왕벚나무 도시 숲 전농로에 만개한 왕벚꽃
▲ 만개한 왕벚나무 도시 숲 전농로 주민들에 의해 가꿔진 왕벚나무 도시 숲 전농로에 만개한 왕벚꽃
ⓒ 삼도1동주민자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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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는 '분권과 자율'이라는 국정 원리와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라는 국정 목표를 세우고,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을 통해 주민참여형 예산편성제도를 권장(2003)했고, 지방재정법 개정을 '지방예산 편성 과정의 주민 참여'가 의무화(2011)하였다.

삼도1동 주민자치위원회(1999)와 주민들은 관 주도의 벚꽃축제가 있었던 서사라(西紗羅, 곡식이 비단을 깔아 놓은 것처럼 보이는 서쪽 마을) 전농로를 걷고 싶은 왕벚나무 숲 문화거리로 조성하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2012년부터 삼도1동 주민자치위원회 활동을 한 윤용팔 위원장은 "전농로는 문화와 역사, 환경이 숨쉬는 곳임에도 먹거리 중심의 벚꽃축제이고 지속적이지도 않아 아쉬움이 많았는데 주민자치위위원회와 참여예산제도가 시행되자 마을을 가꾸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전농로를 왕벚나무 숲 문화거리로 만들어 걷고 싶은 길, 지속가능한 마을을 만들기 위한 예산을 신청하여 숲을 가꾸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주민들이 가꾸고 있는 왕벚나무 도시 숲 전농로 화단
▲ 왕벚나무 도시 숲 전농로 주민들이 가꾸고 있는 왕벚나무 도시 숲 전농로 화단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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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까지는 전농로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시기였다. 제주교육청도 1976년에 건립된 교육감관사를 시민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주민들과 함께 '미래세대인 아이들이 머물 수 있는 곳, 전농로의 역사성과 주민들과도 소통 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도출했다.

2016년부터는 논의된 계획을 집행하는 1차년도 해다. 수명이 다한 인도를 걷어내고 왕벚꽃을 형성화한 바닥재로 교체하기 위해 실시설계를 하는데 판석의 색상과 크기, 모양 등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으로 세 번이나 설명회를 진행하였고, 판석도 한 번에 다 걷어내 교체한 것이 아니라 구간 별로 4년에 걸쳐 교체하였다.

2017년도에는 인도 판석 교체 외에 인도와 차도의 중간에 화단을 조성했는데 올해까지 하면 8년 사업이 마무리 될 예정이다. 화단에는 제주 향토식물인 산철쭉을 비롯해 키 작은 관목과 털머위처럼 여러해살이 식물을 식재하여 보행자 보호 및 큰 나무인 왕벚나무와 조화를 이루며 경관적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고 화단에는 보행자들이 쉴 수 있도록 거친 제주 흙으로 빚어낸 도자기 조명 의자를 설치해 보행도 분위기 있게 바꿨다.

보행자 휴식을 위한 쉼터와 식수대, 긴 의자 설치 등 편의시설과 벚꽃 가로등, 바닥에 친환경조명(LED) 지중등과 그림자 조명등이 설치되었으며, 삼도1동 전체를 대상으로 주택 벽면 사업도 병행하여 전농로 왕벚나무 숲과 어우러져 분위기를 더했다.
 
주민들이 가꾸고 있는 왕벚나무 도시 숲 전농로 화단과 담벼락 벽화
▲ 왕벚나무 도시 숲 전농로 주민들이 가꾸고 있는 왕벚나무 도시 숲 전농로 화단과 담벼락 벽화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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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부터는 '전농로 왕벚꽃 축제'로 명칭을 정하고 삼도1동축제위원회에서 매년 축제를 주관하고 있으며, 2022년부터는 주민들이 신청한 참여 예산에 대해 '삼도1동 주민참여예산 지역회의(21명)'에서 논의를 거쳐 사업 순위를 정하고 나면 주민자치센터에서 10일 동안 주민 투표를 통해 재차 의견을 수렴한 후 제주시 주민참여위원회로 이송한다.

실시설계 및 공사 진행 과정에서도 주민자치위원과 제안자 등 관심 있는 동네 주민들이 공사 현장을 다니며 감독자 역할을 하는 등 주민들에 의해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되고 있다.

강병삼 제주시장은 "왕벚나무 숲 문화거리로 조성된 전농로는 주민들이 나무만이 아니라 보행 약자 등 모두가 걷기 편하도록 횡단보도 경계석 턱을 조정하여 무장애 보행자 도로를 만들고 있고, 지난해부터 추진 중인 보행자 우선도로 정책을 전농로도 주민들과 협의해 추진할 예정"이다. 그리고 제주시는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파리협약을 실천하기 위해 숲 가꾸기와 걷고 싶은 거리 등의 정책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제주왕벚나무 숲인 전농로에서는 제주 근현대 역사 현장을 걸으며 접할 수 있다.
정조시해 사건과 연루되어 제주에 유배 온 조정철이 사랑했으나 유배객의 정적인 김시구 목사에게 가혹한 고문을 받다 자살한 홍윤애를 기리는 시비가 조정철에 의해 세워졌다.

1940년에 자리 잡은 제주농업학교(1907년 설립된 제주의신학교) 터로 일제 강점기시 항일 교육의 산실로 서훈을 받은 항일 애국지사 38명을 포함해 약 70여 명의 항일독립투사를 배출한 곳이다.
 
전농로 학교 옛터에 항일투쟁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제주고(구 제주농업학교) 총동문회에서 세운 표지석
▲ 왕벚나무 도시 숲 전농로에 세워진 표지석 전농로 학교 옛터에 항일투쟁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제주고(구 제주농업학교) 총동문회에서 세운 표지석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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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는 일본군의 항복절차가 진행되었으며, 미군정기는 미 제59군정 중대본부가 설치되었다.

제주4.3항쟁기에는 대한민국 국군 제9연대와 제2연대 사령부가 머물려 제주민을 고문한 후 처형하거나 육지 형무소로 끌려가기 전까지 가두었다.

한국전쟁과 1955년까지는 피난민 고아 1059명을 돌보았으며, 군부독재시절에는 안전기획부 분실이 있던 곳으로 20세기 한반도의 역사가 머물었던 현장이다.

서사라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진행(1976)되면서 제주도교육감 관사(김희수 건축가, 1977)가 청소년 열린 문화 공간인 '놀래올래'로 개관(2016)한 후 22년에는 제주도서관으로 이관(2022)하여 작은도서관으로써 독서공간, 독서토론, 동화구연, 생활 공예 공작소 등 독서 및 문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왕벚나무 도시 숲 전농로 입구에 전 제주도교육감 관사가 놀래올래 도서관으로 개관
▲ 왕벚나무 도시 숲 전농로의 구 제주도교육감 관사 왕벚나무 도시 숲 전농로 입구에 전 제주도교육감 관사가 놀래올래 도서관으로 개관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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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래올래는 2023년 전농로 마을 축제와 연계하여 "모두 다 꽃이야"라는 문화 행사로 주민들과 협조를 맞추었고, 문화 행사 기간에는 어린이와 청소년,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향후 운영 방안도 수렴하였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제주도서관 김수범 문헌정보부장은 "교육감 관사가 가정집으로 설계된데다 건축적 가치로 시설물을 보호하는 관점과 시민들이 방문을 통해 활용하는 관점에서의 고민이 있다. 놀래올래는 청소년 참여 사업 중심에서 22년부터는 전농로의 역사와 문화거리를 이어주는 도서관으로 전환하기 위해 주민들과 소통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전농로에는 제주교육청 직속 기관인 제주국제교육원과 제주융합과학연구원(제주수학체험관) 등의 건물들도 담장을 허물고 역사와 관련한 표지석과 화단을 조성하며 왕벚나무 문화거리 숲 조성에 함께 하고 있다.
 
 왕벚나무 도시 숲 전농로에 교육청 직속기관 담벼락을 철거하여 도시 숲과 어울리게 조성된 화단
▲ 왕벚나무 도시 숲 전농로에 위치한 제주교육청 기관 담벼락  왕벚나무 도시 숲 전농로에 교육청 직속기관 담벼락을 철거하여 도시 숲과 어울리게 조성된 화단
ⓒ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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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와 신도시 개발로 인한 원도심 소멸 위기 속에 주민을 주체화하는 지방자치로 주택가에 숲을 가꾸어 탄소를 흡수하여 지구를 살리고, 정주하고 싶은 마을을 만들어 삶의 질을 높이는 전농로 왕벚나무 문화거리 숲 가꾸기 사업은 지방자치 시대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태그:#도시숲, #전농로, #왕벚나무, #온난화, #주민자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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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보장된 정의의 실현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실천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노력이 지속될 때 가능하리라 믿는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토대이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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