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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입니다. 그만큼 각종 정보가 넘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유명한 관광지를 이미 방문했다면 이번엔 '도쿄 말고, 근교'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이 연재에서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도쿄 도내와 도쿄 근교 여행지를 소개합니다. 색다른 일본 여행지를 찾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자말]
- 이전 기사 '올 여름 도쿄 어때? 400엔으로 느린 여행 하세요' https://omn.kr/2985l에서 이어집니다.

벚꽃과 장미를 따라 달리는 느린 여행

도덴 아라카와선(都電荒川線)은 도쿄 북서쪽을 지나는 한 량짜리 노면 전차다. 전기를 사용하기에 친환경적이지만, 속도로 보면 결코 효율적인 교통수단은 아니다. 전체 구간 총 12.2km의 이동에 약 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이 전차의 매력은 바로 그 느림에 있다. 주택가 골목 사이를 천천히 지나며 계절에 따라 변하는 풍경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활짝 핀 벚꽃을 따라 달리기 때문에 도덴 아라카와선의 또 다른 이름은 '사쿠라(벚꽃) 트램'이다. 하지만 초여름과 가을이면 선로 옆에 핀 장미로도 유명하다. 장미꽃 사이를 달리는 전차는 마치 순정 만화의 한 장면처럼 낭만적이다.
 
봄장미가 사이를 달리는 도덴아라카와선 전차  매년 5~6월과 9~10월에는 선로옆에 피어난 장미를 볼 수 있다.
▲ 봄장미가 사이를 달리는 도덴아라카와선 전차  매년 5~6월과 9~10월에는 선로옆에 피어난 장미를 볼 수 있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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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의 벚나무와 계란말이 – 오지에키마에(王子駅前)역

주택가를 달리던 전차가 이번에는 넓은 차로에서 차와 나란히 달린다. 오지 역 바로 앞에 위치한 오지에키마에 역이다. 이 지역에는 벚꽃 명소로 유명한 아스카야마공원(飛鳥山公園)이 있다.

'야마(山)'는 일본어로 산이라는 뜻이지만, 사실 이곳은 해발 25.4m로, 지형 분류상으로는 언덕에 속한다. 에도 시절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이곳에 벚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지금도 650여 그루의 벚나무가 봄을 반긴다.

이곳을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걸어가는 것이고, 두 번째는 JR 오지 역 중앙개찰구 앞에 있는 달팽이처럼 생긴 귀여운 모노레일을 타는 것이다. 공원 입구에서 정상까지 고저 차 약 18m를 연결해 주는 노선인데, '일본에서 가장 짧은' 모노레일로 손꼽힌다. 2분 정도면 허무하게 정상에 도착한다. 물론 걸어가도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공원 안에는 어린이를 위한 놀이시설과 1978년까지 운행되었던 도덴 아라카와선 전차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시부사와 사료관>, <기타구 아스카야마 미술관>, <종이 박물관>이 있어 가볍게 들러보기 좋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2024년 7월부터 바뀐 새 1만엔 권의 초상 모델이기도 하다. 
 
아스카 야마를 오르는 일본에서 제일 짧은 모노레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행한다
▲ 아스카 야마를 오르는 일본에서 제일 짧은 모노레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행한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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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 오지 역 바로 뒤에는 1648년부터 영업 중인 계란말이 가게인 오기야(扇屋)가 있다. 현재 14대 째 주인이 운영하고 있다. 큰 계란말이가 1,300엔, 절반 사이즈가 650엔인데, 점 내에는 자리가 없어서 구매만 가능하다.

가다랑이 국물 맛이 진하게 나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계란말이다. 계란말이를 하나 들고 향하는 곳은 바로 앞에 있는 오토나시 친수공원(音無親水公園)이다. 역에서 1분만 걸었을 뿐인데 마치 깊은 계곡에 들어선 것처럼 조용하고 아늑한 느낌이 든다.

원래 이 지역에는 샤쿠지이가와(石神井川)라는 강이 흘렀지만, 개수공사로 인해 물길이 사라졌다. 그 후 인공적으로 정수된 물을 흘려보내며 옛 물길을 재현한 공원이 바로 이 오토나시 친수공원이다. 100미터 남짓한 작은 공원이지만 일본 도시 정원 100선에 실릴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수심이 낮은 개울과 납작한 돌이 깔린 오솔길, 돌다리 등이 있고, 봄에는 벚꽃 명소로도 유명하다. 개울가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면서 방금 사 온 계란말이를 먹고 있으면, 낯선 곳에서의 오후가 또 평화롭게 흘러간다.
 
오토나시친수공원 사라진 물길을 복원해 정수된 물을 흘려보내는 인공 하천이다
▲ 오토나시친수공원 사라진 물길을 복원해 정수된 물을 흘려보내는 인공 하천이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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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의 어린 시절을 찾아 – 아라카와유엔치마에(荒川遊園地前)역

오지 역을 벗어난 전차는 다시 '땡땡-' 소리를 내며 주택가를 따라 달린다. 이번에 내리는 역은 아라카와유엔치마에 역이다. 이곳에는 레트로 감성 그 자체인 아라카와 유원지가 있다. 가끔 전차 안에서부터 잔뜩 신나 있는 어린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이 전차에 타는 것부터가 이미 유원지 나들이의 시작인 것이다.

전차에서 내리면 일단 역 근처에 있는 후쿠시마야(福嶋屋)라는 작은 가게에 들른다. 여기에 100엔짜리 튀김 빵이 있다. 주문을 하면 과거 급식 아저씨 출신이라는 할아버지가 바로 튀겨서 주시는데, 토핑은 콩가루, 코코아, 계피, 검은깨 중에서 원하는 토핑을 고를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토핑은 콩가루라고 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튀김 빵을 먹으며 걷다 보면, 저 멀리 주택가 너머로 알록달록한 아라카와 유원지의 대관람차가 보인다.
  
아라카와 유원지 도쿄의 공영 유원지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기자기한 탈 것이 많다
▲ 아라카와 유원지 도쿄의 공영 유원지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기자기한 탈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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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카와 유원지는 1922년 개원한 도쿄의 유일한 공영 유원지다. 오래된 역사답게 내부는 소박하고 빈티지한 매력이 넘쳐난다. 주로 3~7세 아동들이 좋아할 만한 놀이 기구와 미니 동물원, 실내 놀이공간, 야외 공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에서 가장 느린 롤러코스터가 있는 유원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주말과 공휴일에 야간 개장을 하는데 아기자기한 조명이 마치 동화 속 나라처럼 예쁘다.

어린아이들과 가족들이 행복한 이 공간에서 어른 여행자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의외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특히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가면 재미있는 사진을 찍으며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 홀로 조용히 보낼 시간이 필요하다면 대관람차를 권한다. 유명 관광지에 비하면 크기가 큰 관람차는 아니지만,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다보니 시원하게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날씨가 좋으면 이 관람차에서 후지산을 볼 수도 있다.

우리가 레트로를 좋아하는 이유- 미노와바시(三ノ輪橋)역

마지막 종착역은 미노와바시 역이다. 역에서 내리고 나니 가뜩이나 느리게 흐르던 시간이 더욱 과거로 돌아간 듯하다. 1950년대 레트로 느낌을 구현하기 위해 일부러 목재로 역을 짓고, 옛날 영화 포스터를 붙였기 때문이다.

역 바로 앞에 '미노와바시 추억관'이라는 관광안내소가 있다. 이곳에는 옛 전차 사진이나 전차 디오라마 등이 자세하게 전시되어 있다. 정기 승차권이나 1일 승차권, 전차 관련 기념품 등도 구매할 수 있고, 한국어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의 관광안내지도를 무료로 배포중이기도 하다. 일본에는 철도 마니아가 많다. 내가 방문한 날도 잔뜩 흥분한 얼굴로 관광 안내소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미노와바시 추억관  아라카와구에서 도덴아라카와선과 지역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홍보관이다
▲ 미노와바시 추억관  아라카와구에서 도덴아라카와선과 지역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홍보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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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이 지역은 에도의 가장 끝자락으로 고즈카하라 처형장(小塚原刑場)과 신요시와라(新吉原) 유곽이 있던 지역었다. 에도의 북쪽 현관이기도 했다. 당시의 5대 가도 중 오슈가도(奥州街道)와 닛코가도(日光街道)가 지났다.  메이지 시대에 전철이 개통되면서 이 지역이 개발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도 도쿄의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조금 낙후된 느낌이지만,  오히려 그 살짝 빛바랜 느낌이 레트로 열풍을 타고 방송에 소개되면서 이 지역이 유명해졌다. 매년 봄, 가을에 피는 장미꽃과 옛 추억을 소환시키는 노면 전차도 인기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역 바로 근처에 있는 '조이풀 미노와(ジョイフル三ノ輪)'라는 아케이드 상점가다. 

이 상점가는 특유의 레트로 분위기도 정겹고, 무엇보다 싸고 맛있는 가게들이 많다. 토리후지(とりふじ)라는 반찬가게에서는 140엔에 닭꼬치나 닭튀김 등을 살 수 있고 1957년 개점한 빵집 포에씨(ポエシー)에서는 40엔부터 180엔 사이에서 웬만한 빵을 다 살 수 있을 정도다. 
  
조이플 미노와 상점가  400미터 남짓한 아케이드 상점가로 싸고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 조이플 미노와 상점가  400미터 남짓한 아케이드 상점가로 싸고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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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가 중심에 있는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은 스나바(砂場)라는 소바 가게다. 이 가게는 에도의 삼대 소바인 스나바(砂場), 사라시나(更科), 야부(藪) 중 하나로 현재 14대 째의 점주가 운영 중이다. 당대에 이 소바가게들은 체인점처럼 에도 전역에 있었다고 한다. 
   
이 가게의 소바면은 메밀의 겉껍질을 최대한 깎아내고 만들었기에 면이 희고 가늘다. 화려하고 풍미 깊은 음식을 좋아하던 에도의 무사들이 즐겨 먹은 맛이라고 알려져 있다. 과연 에도의 무사들은 어떤 맛을 좋아했을까?

에도 삼대 소바의 맛을 기대하며, 배운 대로 후루룩 소리까지 내며 먹어봤다. 하지만 소바면이 끊기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간다는 거 외에는 내 입맛에는 그저 소바 맛이었다. 쯔유도 진하지 않고 꽤 담백한 편이다. 소바유가 걸쭉하고 감칠맛이 나는 것이 오히려 인상 깊었다.
 
에도 3대 소바 노포인 스나바 (砂場) 총 본점  이 건물은 1954년 건축된 것으로 현재 아라카와구 문화재로 지정돼있다
▲ 에도 3대 소바 노포인 스나바 (砂場) 총 본점  이 건물은 1954년 건축된 것으로 현재 아라카와구 문화재로 지정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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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긴 한데, 뭐가 특별한지 모르겠다'가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오랜 세월 이어온 노포에는 굉장히 특별한 맛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먹고 있는데, 반대편 자리에서 한 가족이 일어섰다. 주인아저씨가 얼른 달려 나가서 배웅을 했다.

손녀의 부축을 받은 할머니는 가게를 나서기 전에 '어릴 때 먹었던 맛 그대로'라며 아저씨에게 감사를 표했다. 지켜보던 나는 '아, 이게 노포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노포의 가치는 대단하고 화려한 비법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변치 않는 것에 있었다. 지금 먹고 있는 소바는 과거로부터 지켜온 약속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추억이기도 한 것이다.
 
스나바(砂場) 14대 주인 아저씨  에도 시대부터 내려오는 소바 노포 스나바를(砂場) 운영중이다
▲ 스나바(砂場) 14대 주인 아저씨  에도 시대부터 내려오는 소바 노포 스나바를(砂場) 운영중이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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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레트로 열풍이다. 레트로는 '지금의 자신이 닿을 수 없는 언젠가의 행복'을 상징한다. 그래서 스나바에서 만난 할머니는 어릴 적 소바의 맛을 다시 맛볼 수 있음에 기뻤던 것 아닐까.

언젠가의 어린 날, 언젠가의 사랑, 언젠가의 소바 맛... 결국 우리는 '언젠가의 지난 날'을 모으며 살아간다. 이건 내가 가진 것, 저건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건 미래의 내가 그리워할 것, 저건 그리워하지 않을 것... 이렇게 나누다 보니 내게도 모을 수 있는 지난 날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도덴아라카와선을 타고 떠난 레트로 여행은 언젠가 그리워 할 작고 소박한 기쁨으로 가득했다. 

▶여행정보
-아라카와 유원지 あらかわ遊園
1923년에 개원한 도쿄의 공영 유원지로 온가족이 함께 이용할만한 놀이기구가 많다. 야간개관시의 일루미네이션이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주소】 東京都荒川区西尾久六丁目35番11号
【개관시간】 9:00~17:00 (금요일·토요일·일요일·공휴일·공휴일 전날 야간 개관 오후 8시까지)
【휴관일】 매주 화요일
【전화 번호】 03-3204-4614
【입장료】 어른 800엔, 초등학생 200엔, 미취학 아동 무료 (어트렉션 별도)
프리패스 어른 1800엔, 초등학생 700엔, 미취학 아동 500엔
【홈페이지】 https://www.city.arakawa.tokyo.jp/yuuen/index.html
【가는 법】 도덴 아라카와선 「아라카와 유원지 앞」 하차 도보 5분

-미노와바시 오모이데칸 (三ノ輪橋おもいで館)
도에이 교통 안내소로 2018년에 오픈했다. 도덴 아라카와선의 미노와바시 역 바로 앞에 있다. 전차의 디오라마나 과거 사진 등을 볼 수 있고, 승차권이나 기념품 등을 구매할 수도 있다. 무료 배포하는 한국어 관광지도가 있는데 내용이 꽤 충실하다. 
【주소】 東京都荒川区南千住1-12-6
【개관시간】10:00~18:00
【휴관일】 매주 화, 수요일. 12/29~1/3
【가는 법】 도덴 아라카와선 「미노와바시 역」 하차 후 바로 앞

-조이플 미노와 (ジョイフル三の輪)
1920년대 창업한 아케이드 상첨가로 400m 거리에 청과점, 정육점, 반찬가게, 카페 등이 있다.  TV프로그램에도 여러 번 소개 된 바 있다. 매월 11일에는 상점가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벤텐 세일이 있고, 절기에 따라 다양한 이벤트가 있다.
【주소】 東京都荒川区南千住1-19-1
【휴관일】 매주 수요일 (점포에 따라 상이)
【전화 번호】 03-3801-1633
【홈페이지】 http://www.joyfulminowa.com/
【가는 법】 도덴 아라카와선 「미노와바시 역」 하차 후 도보 3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도쿄말고근교#도쿄여행#도덴아라카와선#미노와바시#조이플미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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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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