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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은 썩고, 흐르는 게 강이다. 그것을 부정하고서는 소통할 수 없다.
▲ 막힌 강물 불통 정부 고인물은 썩고, 흐르는 게 강이다. 그것을 부정하고서는 소통할 수 없다.
ⓒ 서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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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잘 흘러가야 홍수가 안 나는 거예요."

지난 6월 28일, 세종보 천막농성장을 찾은 김정욱 서울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김 교수는 잠시 '슬기로운 천막생활(김병기의 환경새뜸)'에 출연해 이명박 정부의 4대강사업이 대운하사업을 염두에 둔 사업이었음에도 거짓말로 국민들을 속였다며 이전 활동을 회고했다. 

또 강 하류를 댐과 보로 막아놓고 홍수를 대비한다는 환경부에 대해 "물이 잘 흘러가야 홍수가 안 난다"며 "다 알면서도 보나 댐 더 짓겠다는 건 멍텅구리가 아니면 못된 사람들"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처럼 농성장에 온 모든 전문가들은 생태계 파괴가 불 보듯 뻔한데도 세종보를 재가동하려는 한화진 환경부를 '확신범'으로 평가한다.
 
지난 28일, 김정욱 서울대 명예교수가 천막농성장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 김정욱 명예교수와 라이브 방송 중 지난 28일, 김정욱 서울대 명예교수가 천막농성장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 김병기의환경새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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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인물은 썩고, 흐르는 게 강이라는 상식적 주장을 '좌파', '종북'의 정치적 주장으로 매도하고 이런 주장을 하는 민간인들을 불법 사찰하고 탄압했던 이명박 정부의 망령이 윤석열 정부에서 살아나고 있다. 4대강 16개 보 중 수문이 개방된 단 한 개의 보인 세종보마저 막힌다면 12년 전, 무도하고 오만한 정권이 저질렀던 퇴행의 역사가 반복되는 셈이다.  

왜 이렇게 앞을 향해 한 발자국을 떼는 게 어려운 것인지? 아니 4대강이 단군 이래 최악의 토목사업으로 손가락질을 받던 4대강사업으로부터 언제쯤 자유로워지는 건지, 애가 탄다. 빗줄기 속에 꿋꿋이 선 천막농성장을 바라보며 든 생각이다.

새홀리기, 무자치, 고라니... 금강 품에 들어사는 생명들
 
천막농성장 주변에서 발견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새홀리기
▲ 새홀리기 천막농성장 주변에서 발견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새홀리기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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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홀리기 너무 멋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천막농성장 주변에서 정말 많은 자연의 친구들을 만난다. 첫 번 째 눈을 사로잡은 것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여름새 새홀리기. 짙은 검은색 무늬가 무채색이지만 화려하고 기세가 있다. 눈 주변은 노란 눈에 검은색 분장을 한 것처럼 보여 마치 만화캐릭터 같았다. 나는 모습도, 서 있는 모습도 맹금류다운 기세가 드러난다.

두 번째는 양지에서 몸을 따뜻이 하고 있던 무자치. 굽이굽이 흐르는 강가나 바다에서도 사는 민물뱀으로 우리나라 전국에 서식한다고 한다. 황갈색과 오렌지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아주 예쁜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햇빛에 말리는 동안 카메라를 마주하는데도 흔들림이 없었다. 본인이 원하는 때에 스르르 빠져나갔다. 뭔가 말하고 간 것 같은데 어느새 없다.
 
농성장 근처에서 만난 무자치의 모습
▲ 무자치 농성장 근처에서 만난 무자치의 모습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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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고라니.  유유히 천막 앞을 지나는 모습을 마주쳤다. 아주 건강하고 예쁜 눈을 가졌다. 부지런한 이 친구들은 물 먹으러 강을 찾는다. 지난번 하중도의 고라니는 너무 말라 안쓰러워 보였는데 이번 친구는 건강하고 또렷하다. 한참을 바라보며 분명히 무슨 생각을 잠시 하는 것 같았는데, 이내 줄행랑을 쳤다. 

금강이 살아있다는 증거는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새벽이면 그렇게 바쁘고 활기찬 것을 천막농성장에 있으면 알게 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새홀리기, 수염풍뎅이, 무자치, 고라니, 오소리 모두 바삐 하루를 시작한다. 금강이 곁을 내 준 친구들은 이렇게 존재함으로 흐르는 강을 지킨다. 이것이 진짜 금강이다.
 
농성장 주변을 거닐던 고라니와 눈이 마주쳤다
▲ 고라니와 눈을 마주치다 농성장 주변을 거닐던 고라니와 눈이 마주쳤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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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접근하는 강... 세종보가 위험요소 
 
비오는 날이지만 강변으로 놀러온 청년들. 위험하다고 소리지르자 빠져나간다.
▲ 강변은 유연한 공간이다 비오는 날이지만 강변으로 놀러온 청년들. 위험하다고 소리지르자 빠져나간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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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막 내리기 시작하고 물이 조금씩 불기 시작하는데, 천막 건너편에 강변에서 청년 둘이 웃통을 벗고 물안경까지 쓰고 여울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임도훈 활동가(보철거시민행동 상황실장)가 위험해 보여 호루라기를 불면서 얼른 나가라고 소리쳤다. 

천막농성 초기에 왔던 수석 전문가인 한 세종시민이 반려견을 데리고 다시 찾아왔다. 한참 빈 천막 앞에서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아지 친구도 강 주변을 한참을 돌아다니다 집으로 돌아갔다. 

어떤 상황이든 사람들은 여전히 강에 접근하기를 꺼리지 않는데 세종보 수문을 마음대로 운용한다는 것이 오히려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싶었다. 시민들이 장마에도 이렇게 하천에 자유롭게 드나드는데 어떻게 보를 탄력운영 할 셈인지. 하천을 조금 더 유연한 곳으로 이해하고 행정을 해야 하는데 단순히 물을 채우고 통제하는 공간으로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종시는 빈 천막을 위험시설이라면서 '강제 철거', '강제 대피' 조치를 한다고 으름장을 놓을 것이 아니라 하천현장에서 주민들의 안전부터 챙기시길 바란다. 보 같은 위험시설 수문을 닫는다, 만다 할 때도 주민들에게 안전 문자도, 안내도 계획에 없던 세종시가 우리 안전을 위해 '강제 대피' 운운하는 것이 어이가 없을 뿐이다.
 
장마가 시작된 후 천막농성장
▲ 장마를 맞는 천막농성장 장마가 시작된 후 천막농성장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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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진짜 꿋꿋하다.'

새벽에 잠에서 깨자마자 천막농성장으로 달려왔다. 물은 이미 농성장 주변에 들어차 있었지만 아직 천막이 잠길 만큼 올라오지 않았다. 천막을 칠 때만 해도 너무 작아서 제대로 견딜 수 있겠냐고 걱정했는데 비 올 때마다 저렇게 우뚝 서 있는 것을 보면 참 꿋꿋하다.

더 많은 비가 오면 우리는 더 위로 올라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진짜 천막이 물에 잠겨 안 보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어떤 상황에서도 저렇게 서 있을 것만 같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이곳을 다녀간 2000명의 마음이 저 교각 하나, 천막농성장 주변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천막의 외양은 변할지언정 그 마음은 그대로 서 있을 것만 같다.
 
맹금류 답게 당당한 기세가 아름답다
▲ 당당하게 선 새홀리기 맹금류 답게 당당한 기세가 아름답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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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천막을 바라보다가 간밤에 젖은 의자를 탁탁 털어서 말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세종시민들 몇 분이 달려왔다. 함께 물이 불어난 강을 또 바라보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바람에 주저앉은 그늘막을 재정비하고, 비에 젖은 물건들이 마르도록 펼치고 정리한다. 자기 수건을 가져와 더러워진 의자를 털어내고, 집에서 챙겨온 따뜻한 물과 커피, 뜨거운 죽을 나눠먹자고 한다.  

지난 63일 동안 이런 사람들의 발길이, 서로를 다잡는 마음들이 농성장 주변에 켜켜이 쌓이고 있다. 나누고 베풀고 함께한 시간들이 매일 축적되고 있다. 우리는 한 평 남짓의 천막 안에서 맨몸으로 4대강 16개의 철옹성 같은 장벽과 맞서고 있지만, 끝내 이길 것이다. 새홀리기, 수염풍뎅이, 무자치, 고라니, 오소리... 수많은 뭇생명들도 함께하기 때문이다.

태그:#금강, #세종보, #낙동강, #영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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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글쓰는 사람. 남편 포함 아들 셋 키우느라 목소리가 매우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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