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둘째 아들이 반수에 들어갔다. 반 학기 동안 시립도서관에서 재수를 한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봤더니 학과 수업도 마음에 안 들고 졸업해도 취업을 보장받을 길이 없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자기 나름대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반학기 동안 재수를 하겠다는데 묵묵히 응원할 뿐이다.
그런데 반수를 해 좀 더 나은 성적이 나왔다고 해서 그걸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일까? 또 다른 경쟁은 없는 걸까? 분명 아들이 가고자 하는 길에 준비된 경쟁은 더욱 치열할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구조가 그렇고 취업도 바늘구멍 같아서 어쩔 수가 없다. 남다른 길을 가지 않는 이상 모두가 제한된 곳에 줄을 서야 하니 현실이니 어쩌겠는가?
이런 상황이니 우리나라 청년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갈수록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도 공감이 된다. 2018년도 우리나라 출산합계율이 0.98이라고 한다. 그런 모습은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다. 청년층이 살기가 팍팍한데 어떻게 결혼과 출산율이 오를 수 있겠는가?
"더 근본적인 조건인 밀도와 경쟁이 해소되지 않으면 아무리 양육과 보육 환경이 개선되어도 출산율이 상승하기는 어렵다고 말한 것이 핵심입니다. 근본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융합적인 관점이 필요하며, 그래서 이 책 집필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해 인간 내면에서부터 사회 시스템까지 우리가 맞닥뜨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찰할 것이고요."(9쪽)
조영태 외 6인의 〈초저출산은 왜 생겼을까?〉의 서문에 나온 말이다. 서울과 대도시로 몰려드는 청년층의 밀도와 경쟁을 해소해 주지 않으면 자식을 낳아 양육하는 보육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출산율이 줄어든 원인을 종합적으로 논의하고 그에 다른 해결책도 저마다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 우리나라 정부는 2006년부터 저출산 고령사회기본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매년 10조 이상의 예산을 들여 저출산 문제를 해결코자 노력했다고 한다. 그런데 저출산 관련 예산 가운데 70%가 보육환경 개선에 집중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청년들의 복지제도 확충 방향으로 그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도무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진화학자 장대익은 저출산의 원인을 진화의 결과로 보고 있다. 사람이 많고 경쟁이 치열하다고 청년들이 지각하면 과연 자녀를 낳겠냐는 것이다. 청년들이 도시로 몰려드는 것도 일종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짝짓기 차원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경쟁이 심화되다 보니까 결혼을 해도 아이는 적게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년복지 예산도 경쟁에 대한 지각을 줄여주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을 한다. 청년복지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지출가능 항목을 정해주고 그 항목에 대한 복지비를 사용한다면 비록 복지비는 투입됐을지라도 경쟁 지각은 오히려 더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서울대 수의대 장구 교수는 저출산의 원인을 생물학적인 원인에서 찾고 있다. 동물도 환경호르몬에 노출되면 노출될수록 생식세포가 형성되지 않는데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더욱이 미세플라스틱의 영향을 받는 것도 그렇고 지속적이고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로 대사성의 변화가 생겨 출산율 저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금의 청년부부에게 불임부부가 많은 이유가 이런 모습들 때문이라는 뜻이다.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 혹은 콩퀴비나주Concubinage라고 하는 방식은 결혼과 비혼/미혼의 중간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종 신청서 등 프랑스의 공문서에는 결혼 상태를 묻는 난에 '기혼' '미혼' '이혼' 외에 '동거'가 추가되어 있어요. 이때 '동거'는 함께 사는 정도를 넘어선, 말하자면 절반 정도는 결혼한 상태를 이룹니다"(174쪽)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 주경철의 이야기다. 프랑스는 1999년도에 시민연대계약을 도입해 동거 가구의 출산을 촉진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비혼 상태로 동거하는 커플의 독신 지위를 인정해 주고 그에 따른 가족 수당과 사회보장급여와 소득세까지도 결혼가정처럼 제도적인 혜택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주경철은 결혼이 좋다든지 비혼이나 미혼이 좋다든지 혹은 법적인 동거 상태가 낫다든지 하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다만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시대 상황에 맞게 우리나라도 새로운 관습과 도덕과 제도를 성찰하고 대비할 때이지 않나 하는 것이다. 그래야 청년층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나마 줄어드는 출산율도 제고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임상심리학자 허지원이 말하는 비혼과 비출산의 이유를 읽을 수 있고, 행복심리학자 서은국이 말하는 '행복감'에 대한 이야기도 귀 기울일 수 있고, 송길영이 말하는 빅데이터가 알려주는 '청년세대의 속마음'도 엿볼 수 있다. 더욱이 마지막 부분에는 초저출산의 원인과 대안에 대한 토론도 담겨 있어서 많은 것들을 공감할 수 있다.
우리 집 둘째 아들이 언젠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빠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거야? 안 해도 되잖아?" 부모인 내 삶이 넉넉지 않게 보여서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그렇게 말했다. "너는 아빠보다 잘 살아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아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무심코 한 말이었지만 그것 자체가 경쟁에서 뜨겁게 담금질하며 살라는 말밖에 되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그만큼 힘들다. 이 책에도 나와 있듯이 물리적인 밀도는 높고 심리적인 안정감은 그만큼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너나 나나 경쟁을 위해 서울로 향하고 있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이런 때에 매년 10조 이상의 예산을 들여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는데 제발 헛다리 짚지 말고 이 책에 나온 내용이라도 꼼꼼히 읽어보고 제대로 된 정책을 추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